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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가스 파이프 끊어 제 발등 찍은 유럽

    전문위원 이상현

    2024.09.26 14:15
    러시아 가스 파이프 끊어 제 발등 찍은 유럽

     탄소배출권과 청정개발체제(CDM) 등 새로운 금융시스템을 통해 지구촌 탄소중립 주도권을 쥐려 했던 유럽연합(EU)의 계획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완벽하게 무산된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미국은 유럽의 탄소중립 주도권을 지탱해온 ‘파리협약’을 무력화 시켰고, 전쟁을 통해 유럽이 저렴한 러시아산 파이프 라인 천연가스(PNG) 대신 자국의 액화천연가스(LNG)인 셰일 가스를 비싸게 수입하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그 탓에 유럽 경제는 거덜났고, 생산비용이 높은 미국 셰일 에너지는 안정적인 판로를 찾았다.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23일(모스크바 현지시간) 기자간담회에서 EU집행위원회가 지난 11일 발표한 ‘EU 에너지 상황 관련 차기 연례보고서’(이하 EU 에너지 보고서)를 언급하며 “지난 8월 EU의 가스 수입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18%였는데, 미국은 거의 같은 양의 LNG를 훨씬 비싼 값에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또한 유럽중앙은행 전 총재이자 전 이탈리아 총리인 드라기 역시 이달 초 “2023년 EU가 화석연료 수입에 지출한 돈은 3900억 유로이며, 천연가스 가격은 미국보다 거의 3.5배(345%), 전기 요금은 1.5배 이상(158%) 높다”고 밝혔다. 직전 5년(2017~2021년)보다 연평균 90% 더 많은 금액이다. 

     

    유럽 가계, 미국산 LNG로 가스 소비…소비 줄이는 내핍 뚜렷

     EU는 일찍이 녹색경제를 주창하며 개발도상국들에게 “기후를 파괴하는 석탄 사용을 중단하라”며 압박해왔다. 그러나 개발도상국들이 주축이 된 지구촌 남반구(Global South)는 EU 회원국들을 바라보며 조소를 금치 못하고 있다. EU 회원국들은 마치 동화 속 ‘벌거 벗은 임금님’처럼 자가당착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EU 회원국 가계와 기업들은 천연가스 소비를 줄이고 있다. EU 에너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몇 년 동안 거의 모든 EU 회원국들이 천연가스 비중을 줄인 게 뚜렷하다. 회원국들에게 부과된 러시아 가스 강제 수입 금지 조치의 결과 산업 생산은 감소해왔다. 가계 부문에서 에너지 빈곤 문제가 지속 악화돼 왔다. EU 공식 통계에 따르면, 회원국의 10% 이상이 가정 난방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에너지 소외 가구 수가 2021년 이후에만 5% 증가했다. 프랑스에서는 6% 증가했다. 리투아니아와 불가리아에서는 5명 중 1명이, 에스토니아 등은 4명 중 1명이 에너지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유럽 가계 부문에서는 석유와 석탄 같은 고체 화석연료, 에너지 효율이 낮아 땔감으로나 쓰는 이탄(peat), 미국의 셰일 오일 등을 더 찾게 됐다. 그럼에도 유럽 관료들과 EU 회원국 지배 엘리트들은 러시아 가스 공급을 더 줄여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에스토니아 경제 및 인프라 장관 출신으로 유럽에너지위원회 집행위원을 맡고 있는 카드리 심슨은 최근 “EU는 더 이상 푸틴의 가스 파이프 라인에 좌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EU가 연내 우크라이나 영토를 통해 파이프 라인으로 수입해오던 러시아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공언했다.

     

    러시아 약화 위해 제 살 깎아먹기식 에너지 정책 펼쳐

     이에 대해 자하로바 대변인은 “EU가 추진하는 에너지 전략의 주요 목표는 러시아 에너지 자원을 거부, 러시아 연료 및 에너지 시설들의 잠재력을 약화시켜 경제적 피해를 입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EU 에너지 보고서는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아닌, 다른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연막으로 사용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EU 회원국들이 비싸고 환경 친화적이지 않은 LNG를 쓰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미국 입장을 고려하면 이처럼 유럽 내 러시아 가스 비중이 높은 것은 (EU로서는) 수치스러운 성과”라며 논평했다. 그러면서 “유럽에서 LNG를 쓰는 것은 경쟁력이 없지만, 미국이 생산해서 공급하는 가스를 강제로 쓰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만들어져야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를 앞세워 러시아와 전쟁을 벌인 미국의 의도 중 하나가 자국의 셰일 가스 판로 개척 차원이며, 노력에 견줘 그다지 높은 성과를 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EU는 러시아 이외의 지역으로부터 에너지 수입을 늘리는 한편 가스 소비를 더욱 줄이는 것이 러시아 가스 의존도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본다. EU는 이미 2022년부터 2024년 사이에 이런 노력의 결과들을 수치로 보고했다. EU는 우선 신규 LNG 터미널 건설과 기존 터미널 확장 프로젝트들을 통해 올해 말까지 막대한 LNG 수입 물량 수용 인프라를 25%까지 늘릴 방침이다. 

     다만 EU 에너지 보고서는 이 모든 것이 유럽 납세자와 기업에 얼마나 많은 비용을 초래하는지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자하로바 대변인은 “EU의 경우, 러시아와의 에너지 협력 중단 비용 문제는 통상 ‘비밀’이며, 실상이 공개되면 12명 이상의 유럽 정치인들이 옷을 벗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세일혁명 10년만에 판로 개척 성공

     러시아 천연가스를 국제 시세보다 최고 60%나 저렴하게 사용하며 러시아와 알콩달콩 지내는 유럽 국가들을 잔뜩 흘겨보던 나라가 있다.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2010년대 셰일 가스 혁명에 힘입어 러시아와 사우디를 제치고 2018년에 오일(가스) 생산량 1위 국가로 도약했다. 셰일 에너지는 그러나 국제시세가 단위당 50달러 미만이면 생산을 멈춰야 할 정도로 생산비용이 높다. 국제시세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이고 안정적 판로가 절실했다. 

     미국에 가장 안정적인 화석 연료 시장은 유럽이었다. 유럽 화석 연료 시장을 러시아로부터 빼앗기 위한 큰 그림이 그려진 것도 이맘 때쯤이다. 2014년 우크라이나를 반러시아 정부로 만든 유로마이단 색깔혁명으로 밑그림은 완성됐다. 유럽에서 미국 셰일 에너지 수요를 극대화 하려면 유럽의 탄소 중립 이니셔티브를 꺾어 놓는 것도 중요했다. 마침 2016년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적임자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직후 곧바로 파리협약에서 탈퇴했다. 파리협약은 이후 동력을 크게 잃었다. 이후 미국의 셰일 에너지 유럽 진출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놀음을 벌인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사진=러시아 외무부 텔레그램)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이 24일(모스크바 현지시간) 언론인들에게 현안을 브리핑하고 있다. 

    전문위원 이상현

    스푸트니크 한국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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