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학생 칼럼니스트 신지우
2025.01.21 16:17 2023년 9월 25일부터 시행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법’은 의료 현장의 투명성을 높이고 의료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해당 법은 2016년 성형수술 중 과다출혈로 사망한 고(故) 권대희 씨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져, ‘권대희법’으로도 불린다. 수술실에서 벌어진 대리 수술, 의료사고, 성범죄 등의 사건이 반복되면서 신뢰를 잃어가는 의료 환경을 개선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법 시행 1년이 지난 지금, 국내 수술실 CCTV 설치율은 100%에 달하지만 제도의 실효성을 둘러싼 의문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투명성과 안전을 위한 노력, 그러나 부족한 실효성
수술실 CCTV 의무화의 도입 배경은 국민적 충격을 안겼던 일련의 사건들에서 시작됐다. 2014년, 서울의 한 유명 성형외과에서 수술 중 생일파티를 벌인 사진이 공개되며 의료현장의 부적절한 행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2016년에는 권대희 씨가 성형수술 도중 과다 출혈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고, 이후 당시 수술실에 설치돼 있던 CCTV 영상을 통해 담당 의사가 수술을 방치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외에도 의료기기 영업사원이나 간호조무사가 대리 수술에 관여하거나, 마취 상태의 환자를 성추행한 사건 등이 잇따르며 국민적 공분이 일었다.
이에 수술실 내 폐쇄성을 해소하고, 환자의 안전과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정부는 처음엔 자율 설치를 주장했으나 국민의 80%가 CCTV 설치를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의무화로 방향을 틀었다.
의료계의 우려와 헌법적 논란
반면 의료계는 CCTV 설치 의무화를 강하게 반발하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의사들은 자신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 받는 데 따른 직업 수행의 자유 침해, 수술 영상의 유출로 인한 환자와 의료진의 사생활 침해, 그리고 방어 진료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또 영상이 해킹되거나 범죄에 사용될 위험성도 강조하며 해당 법이 의료 현장에서 불신을 키우고 환자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CCTV 설치 의무화법으로 인해 수련의들의 수술과 기피 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앞으로 응급실, 수술실을 떠나는 의사들이 더 많아질 것이며 필수의료 공백이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헌법재판소는 현재 의료계의 헌법소원을 심리 중이지만, 의료법 개정 이후 의대 정원 확대 논란이 새로이 부각되면서 수술실 CCTV 의무화 문제는 사회적 관심에서 다소 멀어진 상태다.
여전히 남아 있는 과제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은 수술실 내부의 불법 행위를 막고 의료 현장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의 결과였다. 그러나 시민사회는 여전히 이 법이 완전한 실효성을 담보하기엔 허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우선 환자와 보호자가 사전에 촬영을 요청하지 않을 경우 수술실 촬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재로선 의료기관이 직접 수술실 CCTV 녹화 여부를 고지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의료사고의 책임을 따질 수 없게 한다. 실제로 지난해 1월, 대전에서 무릎 수술을 받은 대학생이 수술 후 몇 시간 만에 사망했으나, 수술실 CCTV 영상이 없어 정확한 수술 과정을 확인할 수 없었다. 유족은 촬영 요청에 대한 안내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으며, 병원 측은 안내문을 게시했지만 환자에게 직접 고지할 의무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같은 문제로 지난 12월 26일, 환자와 보호자에 촬영 여부 사전 고지를 의무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돼 추진 중이다.
이와 함께 수술실 CCTV 영상은 최소 30일 이상 보존되도록 하며, 수사기관이나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요청에 따라 열람할 수 있다. 병원 측에서 보존 기간 30일 이후 삭제하더라도 법적 책임을 면할 수 있다. 하지만 30일이라는 보존기간은 환자나 보호자가 분쟁 초기 단계에서 영상을 확보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사건 발생 후 초기 대응이 늦어지는 경우, 필요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는 문제가 따르게 된다. 그리고 법적 분쟁 없이 단순히 진실을 확인하려는 환자나 보호자가 영상을 직접 열람할 수 없는 점도 한계다.
수술실 CCTV 의무화는 의료 투명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첫 걸음이다. 그러나 시행 초기 단계에서 드러난 한계를 보완하지 않으면 또 다른 사각지대와 부조리를 낳을 수 있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촬영 요청 절차를 명확히 안내하는 제도를 마련하고, 영상 보존기간을 확대하며, 환자와 보호자의 영상 접근권을 향상시키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의료의 본질은 환자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데 있다. 이제는 법 시행 1년을 돌아보며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개선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사진=연합뉴스) 수술실 폐쇄회로(CC)TV 설치 의무화 시행 첫날인 25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 수술실에 CCTV가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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