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위원 윤인모
2024.01.09 09:24 근대 복지제도의 효시는 19세기 독일 비스마르크 시절이었다. 자유시장경제를 유지하고 동시에 사회주의 견제, 신흥 부자와 왕권 견제 등 다양한 목적 속에 시작한다. 이후 복지제도는 주로 전쟁, 경제 위기, 미-소 간의 체제 갈등, 인권과 참정권의 확산 등에 의해서 강화되어 왔다.
확대를 넘어 비대해지던 복지제도는 1970년대 이후 개혁의 대상이 됐다. 개혁 배경은 저출산, 국민들이 복지의 수요 증대, 기업의 국제경쟁력 약화 등 현재 한국 상황과 유사하였다. 눈여겨볼 부분은 종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화함이 관찰됐다. 이전의 복지제도 운용은 성장이 전제가 되어 있었다. 이는 미래세대에 짐을 넘기는 복지제도이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을 체감한 후에는 저성장 시대에도 지속가능 구조 구축을 최우선 순위에 뒀다. 방법은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대표적 개혁을 살펴보면 네덜란드병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바세나르 협약 (1982), 프랑스의 쥐페 개혁(기존 조합주의 사회보험 형태에서 조세기반으로 전환. 의회의 결정권 강화 1995), 마크롱 대통령 집권 후 개혁(2017), 일본의 의료비 급증 억제 정책(1981년 이후) 및 일본의 사회 보장 국민회의(2013), 독일의 Agenda 2010 (2000년대 슈뢰더~ 메르켈까지) 등이 있다.
지속 가능한 선순환 생태계를 위한 출발점
다음과 같이 설정한 공통점이 보인다.
첫째 우선 일자리를 늘리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특징은 소득 보장과 근로 보장 중 우선 후자를 선택한다. 일자리를 우선 나눔으로써 소득으로 이어지는 선순환(근로 주도 성장)을 선택하였다. 우선 위기 상황에서 급여를 낮추고 시간제 고용자의 처우개선, 고용을 촉진하는 사용자의 지원 등이 강화된다. 동시에 사각지대는 최소화하는 정책(가족수당 지급, 교육 기회 확대 등)도 병행된다. 네덜란드는 이를 통해 임금과 사회보장 급여를 연동시키는 데 성공한다. 독일은 논란은 있지만 하르츠 개혁을 통해서 실업률 조정에 성과를 거둔다. 프랑스는 우선 모자이크식으로 쪼개진 복지 시스템을 통합하고자 사회보험을 조세기반(사회보장 목적세)으로 전환한다. 그러나 독일, 프랑스의 경우 취업알선에 응하지 않는 경우 근로 동기부여를 제공을 위해서 지원을 대폭 낮췄다.
둘째 또한 이러한 효과가 효율적으로 활용되도록 지방자치단체의 책임과 의무를 더욱 강조한다. 지방분권화는 복지 서비스의 공급, 수요 양측에서 효율성 증대를 위한 세분화를 가능하게 했다. 의료복지의 예를 들면 2, 3차 의료기관은 중앙정부에서, 1차는 지자체에서 책임지는 반(半)분권화 제도(노르웨이), 국립병원에서 완쾌한 환자를 지방자치단체가 이송하여 가지 않으면 그 추가 입원료를 해당 지자체가 납부하도록 하는 정책(스웨덴), 지방 의료의 효율화를 위한 지방 보건청 설립(프랑스), 지방 의료기관 간에 경쟁을 유도하기 위한 조합의 보험요율 통일(독일) 등이 있다.
일본의 선순환의 예
지속 가능 생태계 구축은 일본의 의료복지시스템 예에서 볼 수 있다. 일본의 혁신에도 문제점은 발견되지만 시사점은 충분하다.
의사단체는 의사 숫자가 적어도 의료가 잘 유지가 되는 국가로서 일본의 사례를 들며 의사 감원을 주장하기도 한다. 행위별 수가제, 개원의가 자영업과 유사함, 전 국민 의료 보험 강제 가입, 그리고 인구 고령화 등 한국과 비슷한 점을 근거로 일본처럼 감원을 고려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표면만 이해한 결과이다. 일본의 의료 및 복지 시스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과는 거리가 멀다. 선순환 체계가 한국보다 훨씬 견고하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일본은 지방으로의 기업 분산도가 한국보다 높다. 이에 따라서 지방분권이 발달되어 있다. 의사의 수급, 의료재정, 지자체 내부의 서비스 제공을 위한 협력 등은 상당 부분이 지차제장에 위임이 되었다. 이는 일본의 의료와 복지를 안정화시키는 큰 축이다.
이러한 지방분권이 가능한 이유는 지방에도 기업, 즉 일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OECD 내에서도 지방 중소도시가 가장 잘 발달되어 있는 국가이다. 동시에 주요국 중 실업률이 가장 낮다. 최저 일자리가 있으면 지역 인구가 유지된다. 환자가 있기에 의사가 개원을 해도 수익이 된다. 유럽의 공공의사 2~3명 정도가 할 일을 일본은 의사 혼자서도 더 많은 일을 하며 효율성을 만들어낸다. 이에 비용 절감과 서비스의 고급화는 유럽보다는 유리하다. 또한 한국처럼 지방 의료 붕괴가 되지 않는다. 일본은 공공의료가 잘되어 있는 국가이지만 유럽처럼 대기시간이 길지 않다.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또한 전 국민 강제 의료보험이지만 같은 직종 기업 몇 개에서 700명 이상 조합원이 모이면 우리나라의 건강보험공단 같은 기관 설립이 가능하다. 즉 다조합주의 국가다. 이러한 조합 보험은 해당 기업의 직원에게 중앙정부의 건강보험공단보다 좀 더 나은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즉 기업에 소속이 되어 있는 것이 의료 서비스를 받기에 유리하다.
지역의 기업과 세수는 지방자치를 견고하게 한다. 결국 지방분권화와 일자리는 일본 의료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근간 중 하나이다. 의사수가 적어도 필수의료의 붕괴 없고, 대기 환자 발생이 없는,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국가를 만드는 마법을 보여준다. 이러한 복지 생태계의 유지와 보완 속에 일본의 고령인구 비중 상승 추세는 정점을 통과하며 극복 중이다. 건강한 복지 생태계의 효과이다. 이는 한국의 미래 대비에 강한 시사점을 준다.
성장률 제로 시대를 대비해야 할 때
한국은 공공사회복지지출이 GDP 14.4% (OECD 평균 23% 2023. 1월 잠정치)이다. 이를 근거로 한국은 복지부문에 9.6% 정도 더 지출할 여력이 있다는 인식이 공직사회 여기저기서 관찰된다. 이러한 안심 때문일까. 정부 지출 중 일부는 선순환 효과와 관계없는 지출이 눈에 띈다. 책임은 거의 없고, 포퓰리즘과 맞물린 현금성 살포가 일종의 업적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물론 재정 지원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이념에 기대지 않은 철저한 계획 속에서 편성되고, 제대로 사용하고, 냉정히 평가해야 급속히 다가오는 제로성장에 대비가 가능하다. 비경제활동인구는 지난해 기준 아직도 33%이며, 인구 감소시대에도 구직하지 않고 쉬는 20대는 늘어나고 있으며, 혈세가 투입되는 실업 관련 수당은 그저 안정적 공돈이 되고 있다. 돈은 많이 쓰지만 구인난을 겪는 기업체의 현장 체감은 악화 중이다. 15세의 학업성취도는 OECD 에서 1, 2위를 다투지만 성인의 경우 PIAAC(국제성인역량조사)에서는 OECD 하위권이다. 인구 감소와 더불어 인력의 질도 낮아지고 있다. 그러나 주요 국가들이 겪어보지 못한 위기가 한국을 빠르게 덮치고 있다. 마이너스 성장까지 20년 남았다고 한다. 절대로 넉넉한 시간이 아니다. 그러나 업적을 내기 위한 파편화된 정책으로 엇박자를 내고 있어 우려가 된다. 우리에게 닥쳐오는 예상된 위기에 대비하며 선순환의 출발 지점을 고민해야 할 시기이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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