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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전 필요 없는 지방, 원전 없이 못사는 지방①] 지방으로 모든 걸 '외주 주는' 나라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김현주

    2024.09.19 10:02
    [원전 필요 없는 지방, 원전 없이 못사는 지방①] 지방으로 모든 걸 '외주 주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원자력 발전소란 '지방 격차' 문제와 떼려야 떼어 놓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지방에 원전을 짓는 행위는 얼핏 불합리해 보이면서도 동시에 합리적이기도 합니다. 또한 지방에 피해가 되는 듯 하면서 이득이 되기도 합니다. 고향집에서는 약 1시간 반, 방학마다 내려가 지내는 시골집에서는 고작 20분 거리에 있는 한울 1·2호기. 학창시절 내내 나의 고향에 '원전 유치'를 하냐 마냐를 두고 옥신각신 논의가 오갔습니다. 대한민국의 원자력 발전소와 전기 문제에 대해 추상적인 수치와 공허한 논의를 넘어 원전과 지방 격차의 역설을 다룹니다. 지방민 청년으로서 나름의 생활밀착형 '원전 생활권'에 살고 있는 이 경험에 비추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적습니다. 함께 머리 맞대고 가장 지혜로운 방안을 찾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上 : 지방으로 모든 걸 '외주 주는' 나라

    下 : 원전 없으면 먹고 살 수 없는 지방

     원자력 발전소.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로 상징되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지닌 기피 시설인 동시에,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오늘날 사회 안에 없어서는 안 될 시설이다. 대체로 지금껏 원전과 관련해 오간 담론을 살펴보면 늘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지곤 했다. 하나는 탈핵 및 신재생에너지의 효용(전력 소모의 안정) 문제, 하나는 핵발전과 원전의 안정성(환경 오염 우려) 문제다. 이렇듯 거시적인 담론이 오가는 가운데, 실제 원전을 품게 될 그 지역의 이야기는 쉽사리 묻히곤 한다.
     
     자신의 지역에 원자력 발전소가 생긴다고 하면 반기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필자 역시 그러했으며, 필자가 살아온 지역의 주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원자력 발전소’라는 존재가 피부 가까이 다가온 것은 삼척시 원자력 발전소 건립이 제대로 논의되기 시작한 2010년대 중반, 중학생 시절의 일이다. 삼척시에 원전을 세우자는 논의는 (그 이전부터 나오기 시작했으나) 대략 2012년쯤 확정됐다. 일본에서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부터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은 때다. 그 덕에 한동안 영동지방은 탈핵과 탈원전, 신재생에너지와 관련된 외침으로 떠들썩했다. 
     그 시절의 기억은 길거리마다 내걸린 빨간 결사 반대 현수막으로 대표된다.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왜 하필 이곳에 원전을 지어야 하는 걸까? 그 고민이, 단순히 혐오 시설을 기피하는 심리에 가깝다는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아마 그다지 깊은 숙고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은 질문은, 대학생이 되고도 머리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고민을 안겨 주었다.
     
    ‘한강에 원전을 지어라’ 화끈한 슬로건
     2020년 무렵,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강남에 원전을 짓자’는 농담 같은 슬로건이 유행했다. 한강 근교에 원전을 지어서 한강을 통해 냉각수를 확보하고, 전력 수급 문제를 해결하며 집값 안정까지 동시에 도모하자는 것이다. 비싼 송전 및 송전설비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주장은 말 그대로 농담처럼 소비됐다. 
     하지만 서울에 원자력 발전소를 짓자는 제안은 의외로 오래됐다. 약 10여년 전부터 환경계에서 일종의 ‘미러링’처럼 꺼내든 이야기다. 삼척 원전 반핵 집회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나왔다. “나라에서는 백날 깨끗하고 안전하다고만 선전하는데 그러면 서울에 지을 것이지 왜 삼척에 지으려고 하나.”
     
     의외로 이 제안은 현실성이 있기까지 하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관련 문의에 ‘한강을 이용한 원전을 계획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으며,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나 ‘국민들의 안전 관련 우려가 현실적 장애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짓는 행위 자체는 어렵지 않으며, 부지나 지반상의 문제도 크게 없다는 뜻이다. 원전이 충분히 안전하다면, 서울에 지어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원전이 충분히 수익성이 있고 지방 경제에 도움이 된다면, 서울에 지어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 서울에 실제로 원전을 짓는다는 것은 전혀 현실적이지 못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서울은 왜 안 되고’ 그와 동시에 ‘지방은 왜 되는가’라는 질문이 필연적으로 던져진다.

     홀로 생산은 요만큼, 소비는 이만큼 하는 도시 
     삼척시의 인구는 고작 6만명, 인접한 동해시의 인구는 9만명이고 울진군의 인구는 대략 채 5만명이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5000만 인구 중 이 근방 거주하는 국민이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0.4%, 전기를 써 봤자다. 반면 1000만 도시라고 불리는 서울은 어떠한가. 대한민국 인구의 1/5이 몰려 있는 이 도시의 전기 사용량은 어떠할 것인가. 전력자립률을 함께보면 의문이 더 커지는 수치다. 전력통계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강원권의 전력자립률은 182%인 반면(강원도에는 아직도 원전이 없다) 서울은 약 11.3%에 그쳤다. 즉 서울은 전력을 소비하는 양에 비해 비해 생산량이 몹시 낮고, 소비하는 전력의 대부분을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것으로 충당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렇듯 서울시를 비롯한 수도권은 지방에 원자력 발전소를 포함한 각종 기피시설을 외주화하며 살아왔다.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편리하게 전력을 소비하며 그 전기가 어디서 생산돼 어디서 흘러왔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생산과 함께 걱정과 고뇌까지 지방으로 떠넘기고 있는 셈이다. 서울이 지방에서 끌어다 쓰는 전기로 화려하게 발전하는 동안, 인구 수가 적어 안전하다는 이유로 이 도시들은 방사능의 위험을 떠안았다. 원자력 발전소만이 아니다. 이것은 화력 발전소에도, 쓰레기 소각장에도, 쓰레기 매립지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는 일이다. 흔히 말하는 '기피 시설'은 점점 지방으로, 대다수의 생활권 바깥으로 밀려나고 있다. 대도시의 안전을 위해 기피 시설이 품고 있는 불편함과 위험성을 저 멀리 지방에 떠넘기고 있다. 이 기묘한 비대칭에 대해서 서울 시민들도 고뇌할 때가 됐다. 서울에는 이제 무엇이 남아있나? 그리고 서울은 , 인구 1000만의 대도시는 무엇을 자급자족 할 수 있는 도시가 되었나? 

     지방으로 모든 것을 '외주 주는' 나라
      전기는 지나치게 사용하기 편리하다. 스위치 하나만 누르면, 콘센트에 플러그 하나만 꽂으면 우리는 익숙하게 전기를 쓴다. 아득하게 높아 보이지 않는 송전탑의 전선들은 결국 '전기'와 '발전소'의 지위를 우리 삶에서 지나치게 타자화하고야 만다. 당장 서울에 거주한지 3년이 넘어가는 나 또한, 전등 스위치를 켜면서 이 전기가 어디서 생산해서 어디서 왔는지 고뇌하지 않는다. 아마도 대다수의 서울 시민이 그럴 것이다. 그 타자화 아래에서, 우리는 수도권이 '떠넘긴' 지방의 원자력 발전소들을 곧잘 잊는다. 원자력 발전소 앞에서 투쟁하던 동네 주민들의 모습도, 환경 문제로 몸살을 앓는 그 지역도, 주민들의 '수십 년동안 피폭됐다'는 주장도 잊는다. 수도권이 지방에게 거대하게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도 잊는다. 

     

     탄핵과 정권교체의 기점에 걸치며 삼척 원전 건립은 흐지부지됐다. 근교에서 한울원전은 여전히 가동 중에 있다. 그리고 그로부터 십 년이 가깝게 흘렀다. 당시 원전 부지로 선정되었던 땅은 여전히 텅 비어있다. 동시에 삼척시는 이번 정부의 '신규 원전 추진 공식화'로 인해서, '탈핵 백지화'로 인해서, 또다시 원전 건설 후보 부지로  떠올랐다. 그런 오늘의 삼척시에서 다시 한 차례 묻는다. 이번에는 어린 마음에 생각하는 서툰 기피 심리가 아니다. 왜 하필 이곳에 원전을 지어야 하는가?


    (사진=연합뉴스) 2011년 원자력 발전소 부진 선정 축하 현수막을 내건 강원 삼척시청 건물.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김현주

    前 서강학보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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