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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빼앗긴 3과 4...총선은 끝났고, 민주주의의 봄은 멀었다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박지우

    2024.04.16 11:19
    빼앗긴 3과 4...총선은 끝났고, 민주주의의 봄은 멀었다

    "우리 동네 기호는 왜 1, 2 다음이 7이야?"
     지역에 따라 정당 기호 5번도 있고, 6번도 있는데 아무튼 지난 선거 기간동안 3번과 4번이 없으니 이렇게 묻는 사람이 많았다. 집권여당이 승리는커녕 개헌선인 200석까진 안 뺏겼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정도로 압도적 여소야대로 끝난 이번 총선이다. 앞으로의 변화도 주목할 점이 많다. 그러나 선거도 끝난 마당에 잃어버린 기호 3번과 4번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도 유권자들이 빼앗긴 두 숫자에 대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선거법을 누더기로 만든 양당의 위성정당 꼼수가 이미 두 번째이기 때문이다.
     
    위성정당 꼼수, 34가 없어진 사연
     왜 34는 없었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위성정당'이란 것 때문이다. 정당의 기호는 국회의원 수를 기준으로 매겨진다. 가장 큰 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각각 1번과 2,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과 국민의미래가 3, 4번이다. 본 정당의 국회의원들이 탈당해서 위성정당에 입당하는 방법으로 앞 순위 번호를 따냈다. 이른바 '의원 꿔주기'. 모체 정당은 비례대표 선거에 참여하지 않으니 정당 투표용지엔 1, 2번 정당이 없고, 위성정당은 지역구 선거에 참여하지 않으니 지역구 후보 중 3, 4번 후보는 없었다. 하물며 위성정당은 선거운동에서도 자신들의 기호인 3, 4가 아니라 '(투표 용지에서) 첫 번째' '두 번째'를 뽑아달라는 식으로 선거운동을 했으니 정말로 이번 선거에서 34는 실종됐다.

     '위성정당'이라고 부르냐면, 정당이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독자적인 강령, 정책, 이념이 없고 총선이 끝나면 다시 원래 당과 합쳐질 껍데기만 있는 당이기 때문이다왜 이런 정당을 만들었을까. 현재 선거법에선 지역구 후보가 많으면 비례대표 당선자가 적거나 사실상 없어지기 때문이다. 소수정당은 전국적인 지지를 받아도 지역구 당선이 힘들다. 따라서 정당투표를 많이 받되 지역구 당선자가 적은 정당에 비례대표 의석을 더 주자는 게 2019년 도입된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사실상 양당제처럼 운영되는 국회의 폐단을 없애고 다당제를 강화하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곧바로 거대 양당은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위성정당은 지역구 후보를 안 냈기 때문에 겉보기엔 '소수정당인 척' 비례대표 의석을 받은 뒤 곧장 합당해 의석 수를 챙겼다. 처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치러진 총선에서 양당의 위성정당은 비례대표 47석 중 36석을 싹쓸이했다. 이번엔 조국혁신당이 12석을 얻어 크게 약진했음에도 양당의 위성정당이 32석이나 차지했다. 비례대표제도로 원내 입성한 소수정당이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2)뿐이니 취지가 완전히 무력화된 셈이다.

     이번 총선에서 꼼수는 더 뻔뻔하고 치밀했다. 2020년 총선에선 현역 의원이 많았던 민생당이 지역구, 정당투표 모두에서 3번을 가져간데다 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에 더 많은 의원을 꿔주는 바람에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위성정당이 4, 민주당 위성정당이 5번을 달았다. 그래서 민주당은 '1번과 5', 미래통합당은 '2번과 4'에 투표해 달라고 호소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번엔 양당이 합의를 했는지 더불어민주당은 14, 국민의힘은 13명의 국회의원을 위성정당에 꿔줬다. 다른 소수정당보다는 많고, 서로의 순서(1, 2)는 지키는 '깔끔한(?)' 꿔주기였다. 결과적으로 3, 4가 사라진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기호 순서가 왜 저 모양이냐"고 물었다. 물론 거대 양당은 언제나처럼 서로를 탓하며 얼버무렸지만.
     
    헷갈려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유권자들은 계속 헷갈렸다. 지난 2월 한국갤럽의 조사에서 선호하는 비례대표 배분 방식을 물은 결과 응답은 병립형 38%, 연동형 34%로 차이는 오차범위(±3.1%p) 안이었다. 그런데 이 조사에서 의견을 유보한 비율도 29%에 달했다. 선거제도 개편 논의 자체가 유권자들이 좀 더 품을 들여 이해해야 하는 어려운 주제라는 뜻이다. 그러나 거대 양당은 정권 심판이니 이조(이재명-조국) 심판이니 하는 적대감으로 유권자들의 눈만 돌리기 바빴다. 위성정당 만들기엔 꿔줄 의원 숫자까지 맞춰가며 의기투합했으면서 말이다.

     당연하게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완전무결한 한국 정치의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다만 선택지를 좁혀 둘 중 하나만 뽑게 강요하는 정치 독점, 서로만 욕하면 표가 나오는 적대적 공생을 깨보자는 시도였다. 그런데 양당은 시도를 초장부터 짓뭉개고 유권자를 의도된 무지로 내몰았다. 제도가 시행된 지 5, 두 번째 선거를 치르는데도 아직 3분의 1의 국민이 '잘 모르는' 제도이고 기호 순서마저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선택을 방해하는 제도가 됐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빼앗긴 34는 죽일 듯 서로를 미워하면서도 없으면 못 사는 영혼의 단짝 같은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을 잘 보여준다. 민주당 내에서 그나마 '위성정당 방지법' 같은 개선책을 주장하던 정치인들이 있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고 보니 사라져 버렸다. '선거법 바꾸기가 헌법 바꾸기보다 어렵다'고 하지만 선거는 끝났고, 기왕에 양쪽 모두 반칙으로 얻은 의석이다. 평소처럼 서로를 비난하면서도, 동시에 위성정당 방지법을 재추진하는 도덕성 경쟁을 볼 순 없을까. 유권자들이 3, 4가 없던 이상한 선거를 잊지 말고 양당에 촉구해야 한다.

    (사진 = 연합뉴스)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박지우

    前 국민대 미데아저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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