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세대담론 속 청년, 시혜를 거부하라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최진형
2024.05.13 14:30시혜성 정책과 정치만 난무
청년기본소득, 청년 월세지원, 청년취업사관학교... 각종 행정 사이트와 대학가, SNS에는 온갖 청년 정책이 난립하고 있다. 대한민국 법률에서 청년은 만 19세에서 만 34세를 의미하지만 각종 기관에서 내놓은 청년정책의 대상자들은 ‘만 15세 이상’인 기준부터 ‘만 39세 미만’까지 이름에 ‘청년’이라는 글자가 무색할 만큼 기준이 제멋대로다. 각 정당에서는 ‘청년정치’라는 이름하에 당 지도부에 청년최고위원이 따로 선출되고, 어떤 정당의 혁신위원회는 국회의원 비례대표 공천에 청년을 50% 배정해야 한다는 혁신안을 던지기도 했다.
우리의 정책과 그것의 책임자인 정치권은 청년을 시혜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청년기본소득과 같이 신체와 환경의 불우함이 아닌, 오직 만 24세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연간 100만원에 달하는 기본소득을 지원해줘야 한다는 정책은 청년을 약자이자 배려의 대상으로 보는 인식에서 출발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또한, 청년을 위시한 취업이나 주거지원 정책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소득 △재산 △업종 △부동산 소유 여부와 같은 기준으로 정책 대상을 심사하도록 되어 있다. 이미 실질적인 기준이 존재한다면 청년을 구분 짓는 연령 기준은 왜 필요한 것인가. 애초에 정책마다 다른 청년의 연령 기준은 이름 앞에 ‘청년’이라는 단어를 집어넣기 위한 수단일 뿐이며 젊은 세대의 환심을 사기 위한 정치권의 공작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치의 주류에서 벗어난 ‘청년’ 글자가 들어간 직위를 발탁하는 방식은 오히려 청년들의 자생력을 좀 먹는 방식이다. 칸막이를 나눠 선출된 청년최고위원이나 청년비례대표가 △등록금 △취업 △결혼 △부동산 같은 소위 청년문제를 해결하리라 기대하는 유권자는 없기 때문이다. 각종 선거철마다 청년 몫의 정치를 할당하는 것은 그 취지보다 정도의 과함으로 인해 오히려 실력 있는 청년 개인이 폄하 당할 수 밖에 없는 ‘소모품 정치’에 다름 아니다.
'세대'아닌 정당한 경쟁과 기준이 필요해
정치권은 특혜를 주면 젊은 세대의 표심이 쏠릴 것이라는 오만한 인식을 버려야한다. 오히려 정책과 정치의 일선에서 고민해야 할 것은 ‘세대’라는 거대한 기준 속에 개인을 몰아넣는 것이 아닌 세분화된 층위로 개인을 돕는 것과 더불어 공정한 경쟁의 장(場)을 확보하는 것이다. 청년 문제를 위해 일할 ‘국회의원’이 필요하다면 청년비례대표가 아닌 청년, 장년, 노년 할 것 없이 모두가 공정하게 경쟁해 선출된 ‘비례대표’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청년이 아닌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가, ‘무주택자’들을 위한 부동산 정책이, ‘미취업자’를 위한 취업지원책이 필요하다. 이 거대한 합집합 속 젊은 사람이 다수라는 이유만으로 청년이라는 글자를 붙여 모든 정책을 ‘물타기’ 해버리는 것은 세대라는 기준을 왜곡하고 있는 무책임한 정치일 뿐이다.
왜곡된 세대담론은 결국 계층화된 한국사회를 반영한다. 청년들은 기득권을 가진 집단이 생물학적으로 젊은 세대에게 시혜를 배푸는 구조를 거부해야 한다. 만 19세부터 만 34세에 해당하는 인구는 약 1000만 명이다. ‘청년세대’라는 거대하면서도 모호한 기준은 정책과 정치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청년에 대한 배려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의 논리적 허점을 지적하는 젊은 세대의 목소리도 필요하다. 정치권뿐 아니라 청년들에게도 각성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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