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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이 장난감? AI 딥페이크, 놀이 아닌 범죄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김진희

    2024.09.20 08:16
    여성이 장난감? AI 딥페이크, 놀이 아닌 범죄

     여학생과 여학우의 사진을 AI 딥페이크로 합성해  음란물을 만들고, 서로 돌려보며 조롱하는 텔레그램 그룹채팅방이 수천 개나 있다는 소식이 지난달 하순 급속히 퍼지기 시작했다. 이를 파헤치고자 직접 텔레그램에 들어갔던 사람들에 따르면 전국 중•고•대학교별로 ‘지인 능욕방’이라는 이름의 채팅방이 있었고, 합성 사진을 많이 올린 사람은 ‘상위방’으로 초대된다고 했다. 인터넷에 공개된 학교명을 확인해보니 필자의 대학교부터 남동생이 다니는 대학교, 친구들의 학교와 심지어 여자고등학교였던 모교와 그 옆 학교도 능욕방이 존재했다. 학교 뿐만 아니라 여군과 언론사 기자들, 여자 형제 등 가족의 사진을 합성하는 채팅방까지 있었다.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상위방’에만 가입자가 약 16만 명이다. 여성들은 혹시 본인도 합성의 대상이 되었을까 불안에 떠는 한편 분노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놀이가 아니라, 명백한 범죄다

     소셜미디어 ‘X’(구 트위터)를 중심으로 각 학교별 채팅방의 범죄내용과 채팅 내용이 공유되기 시작했다.  주로 중•고등학생이 저지른 범죄인 만큼 학교 내 대처 방식을 전하는 글도 업로드되기 시작했다. 대처는 여성들의 분노에 더 불을 지폈다. 여학생들만 강당으로 불러 ‘SNS에 사진 올리지 말라’라며 오히려 피해자를 단속시키고, 학교폭력위원회에 이 사건을 회부하겠다고 하니 수능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조용히 넘어가자며 쉬쉬했던 학교도 있다.  대학교 또한 교내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으나 학교 차원의 대처는 확인하기 어려웠다. 이런 행태가 알려지며 국가 차원의 강경한 대처를 요구하는 여론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강력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와 국회가 나서기 시작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딥페이크 성범죄물 삭제 신고만 대략 6000여 건을 접수했다고 밝혔으며, 운영중인 디지털 성범죄 콜센터 1377의 신고 절차를 간소화했다. 가패자들이 플랫폼으로 이용한 텔레그램 측과의 회동도 추진 중이다.  국회는 모처럼 여야가 한목소리로 강력 처벌을 위한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발의된 관련 법안만 35건에 달하고, 이중 15건이 현행법인 성폭력방지법 제14조 2항의 개정안이다. 현행 법조항으로는 딥페이크 성범죄물과 같은 허위 영상물을 유포하거나 유포 목적으로 제작한 자만 처벌이 가능한 반면 개정안은 허위 영상물을 소지, 시청만 해도 처벌이 가능하게끔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외에도 청소년 성범죄에 한해서만 이루어지던 잠입 수사를 성인까지 확대하는 법안, 디지털 성범죄로 얻은 수익을 몰수하는 법안 등도 발의됐다. 

     

     특히 가해자와 피해자 대부분이 10대 학생인 만큼 교육부와 각 시도 교육청도 사건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대처하고 있다. 교육부가 경찰과 협조해 딥페이크 성범죄 규모를 파악한 결과, 지난 6일까지 각 시도 교육청에 접수된 성범죄 건수만 400건이 넘는다. 불특정 다수가 피해자인 만큼 피해자는 사건 수 보다 많고, 학생 뿐만 아니라 교사와 직원까지 그 표적이 됐다. 각 시도 교육청은 이번 사건에 대한 TF(테스크포스)를 구성해 피해자 회복을 돕는 한편, 학생들에게 특별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런 대처는 ‘그저 놀이’라는 가해자들의 채팅과는 다르게, 정부를 비롯한 현실 사회가 그들의 행동을 ‘범죄’로 규정했다는 걸 보여준다. 

     

    범죄를 멈추려면 인식부터 고쳐야 한다

     지난 2020년 일명 ‘N번방’ 사건 이후 조주빈을 비롯한 주동자 일부가 처벌받고 관련 법안이 신설되거나 개정되긴 했지만, 디지털 성범죄와 최전선에서 맞서 싸우는 활동가들은 ‘아직 멀었다’라고 지적한다.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활동가 단체 ‘리셋’이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우선 과거에 비해 딥페이크를 만드는 일 자체가 너무 쉬워졌고, 언론에 보도돼도 운영자들은 오히려 ‘공짜 홍보’라며 좋아한다고 했다. 

     활동가들은 문제의 근원이 ‘교육의 실패’에 있다고 지적한다. ‘리셋’은 디지털 성범죄가 이젠 일상이 되어버렸다고 표현했다. 가해자들은 이 일이 범죄가 아니라 자신들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한다. 여성을 짓밟을 수 있는 대상으로 보고 자신의 우월함을 인정받고자 하는 생각이 사회 전체에 퍼져버렸다. 특히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범죄를 감싸거나 해결에 나서지 않았던 사람들이 요직을 차지하면서 그저 흐지부지하고 넘어가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사회가 보여주었다. ‘리셋’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가 더 달라지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이런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된 판결도 문제로 꼽힌다. <한국일보>가 딥페이크 성범죄로 재판에 넘겨진 77명 사례를 분석한 결과, 1심 실형 선고는 20명(26.0%)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집행유예 36명(46.7%), 벌금형 12명(15.6%)이었다. 여러 가지 사유로 양형을 감경해주는 관대한 판결이 주를 이뤘다. 한국일보가 판결문을 통해 양형 감경 및 정상 참작 사유를 분석한 결과, 반성이 약 51%를 차지했고 그 뒤로 합의, 초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 등이었다.  변호사와 여성 전문가들은 이러한 양형 감경의 관행이 범죄를 더욱 부추긴다고 설명했다.  우선 ‘반성’은 주로 가해자가 판사에게 제출한 반성문을 토대로 인정된다. 하지만 반성문의 내용은 판사만이 열람할 수 있고,  작성했다는 이유 만으로 처벌이 완화된다. 여론 또한 반성의 기준이 판사 개인 주관에 달려있다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크다. 초범 혹은 아직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 또한 문제가 된다. 주로 부모 감독이 가능한 나이거나 학업에 지장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를 참작해 양형을 적용하는데, 딥페이크를 이용한 성범죄는 부모 등 타인이 알아채기 어렵다. 판례처럼 가해자가 아직 의무교육 울타리 안에 있다는 이유로 처벌이 약해져야 한다면,  피해자의 학업과 일상을 되돌리기 위해 오히려 강력히 처벌할 필요도 있다. 지금의 사법부는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사정을 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는 듯 하다. 

     

     여성들은 이제 조용히 수사과정만을 믿기보단 행동을 택했다. 지난 2일, X에서는 딥페이크 성범죄를 강력히 처벌하라는 해시태그(#)운동이 벌어졌다. 사건에 대한 기사와 정보를 모아놓은 계정, 능욕방이 개설된 학교를 표시한 지도를 만든 계정, 해외 언론에 사건 내용을 제보해 전세계에 알리는 계정도 생겨났다. 지난 13일에는 여성 150여명이 강남역 10번 출구에 모여 ‘딥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 말하기 대회: 분노의 불길’을 개최하고 국가와 언론 또한 공범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비슷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선 여성도 하나의 인격체라는 인식을 심어야 한다. 다시 한 번 명백히 고한다. 여성은 장난감이 아니고, 그저 놀이라고 여겼던 행위는 명백한 범죄라는 사실을. 

     

    (사진=연합뉴스) 지난 13일 열린 ‘딥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 말하기 대회: 분노의 불길’ 시위 현장.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김진희

    前홍대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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