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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미디어 노동자 기획②] 그림의 떡과 같은 근로기준법...노조도, 회사도 외면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안태우

    2024.09.24 09:28
    [방송미디어 노동자 기획②] 그림의 떡과 같은 근로기준법...노조도, 회사도 외면

    방송미디어 노동자들의 현실을 들여다보는 내용의 기획 칼럼을 세 차례에 걸쳐 준비했습니다. 시리즈 첫 번째 기획(외줄타기 방송노동자, 나는 여전히 불안하다)에 이어 마지막 세 번째 기획에서는 현실 속 현상적이면서도 구조적인 여러 문제를 타개하려는 방송미디어 노동자의 다양한 노력들을 담을 예정입니다.(편집자 주

     

     

     지하철 역사 혹은 광장엔 커다란 티브이(TV)를 보러 온 사람들로 붐빈다그들 사이로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순간의 장면을 담으려는 사람장면에 효과를 입히는 사람들이 숨어있다문제는 그들이 처한 상황에 있다바로 방송 비정규직이다

     

     방송산업은 유난히 비정규직 의존도가 높다방송통신위원회 보고서인 방송사 비정규직 근로여건 개선방안 연구’(비정규직 연구)에 따르면 방송 제작 인력의 64%가 비정규직이라 밝혔다

     

     방송산업의 비정규직화는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 영국 텔레비전 산업부터 내부 조직 대신 프로젝트 기반 외부 인력 활용이 대표적인 노동 조직 형태로 부상하기 시작했다해외 언론학자들도 이러한 맥락에 주목했다네프위싱어와 주킨 등은 방송 비정규직이 불안정한 노동 환경에서 스스로 불확실한 커리어를 관리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분석했다방송 비정규직이 자영업적 노동(entrepreneurial labor)’ 형태를 더더욱 추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주장이다국내도 마찬가지다. 1991년 외주 제작 프로그램 편성 의무화 조치, 1997년 이후 방송 유관 시장의 위축과 외주 제작 활성화 등의 환경 변화가 문제됐다이후 외부 용역과 프리랜서와 같은 비정규직 확대는 눈덩이가 돼 현재에 이르렀다

     

     종사자수 분석이 이를 증명한다지난 2021년 비정규직 실태조사( 13개 사업자)에 따르면지상파 방송사 종사자 수는 전체 1만 3827명인데 반해 비정규직 종사자는 9199명에 이른다이 중 프리랜서는 약 2953명으로 32.1%, 파견직은 1769(19.2%), 용역업체 소속 1406(15.3%), 자회사 1333명(14.5%), 계약직은 1154명으로 12.5%를 차지하고 있다방송산업에서 비정규직은 하나의 계급이 된 셈이다

     

     근로계약서 미작성, 구두 계약, 갑질 계약… 문제는 ‘관례상의 계약서’에 있다. 방송사엔 유능한 콘텐츠 제작자가 아닌 근로기준법을 회피하는 ‘계약서 편집자’가 있다현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게끔 정부에서 안내하는 표준계약서가 있지만 권고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방송프로그램 제작 스태프 표준근로계약서가 대표적인 예다비정규직 연구에 따르면 “(정부에서 권고하고 있는 표준계약서의핵심 조항 일부가 포함되어 있으나 표준근로계약서의 핵심 조항 전부를 준용하고 있는 방송사는 없었다며 방송작가 집필 표준계약서 핵심 조항을 제외한 계약서에서 대부분 핵심 조항을 누락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익명을 요청한 현장 노동자 A씨에 따르면 방송업계 관례상 방송 현장 계약서에서 근로자의 권리를 요구할 수 없다거나 도급 업무로 계약해 고용 관계를 주장할 수 없게끔 한다고 전했다근로계약서를 작성해도 문제다. UBC울산방송 비정규직 근로계약서(2022)를 확인한 결과 3 2항에 사업주는 근로자가 사원으로서의 적격성이 부족하다고 인정될 때 본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근로자의 귀책사유로 인해 사업주에게 손해를 준 경우에 사업주는 근로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등이 담겨 있었다

     

     근로자성 판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관례상의 계약서’는 이에 대해 방송사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계약 당사자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일방적 책임으로 둔갑시킨다지난 1 UBC울산방송은 법정 공방 끝 근로자성을 인정받은 아나운서를 복직 시켰다하지만 근로계약서를 1년 짜리로 제시하거나 원래 하던 업무에서 배제하는 등 피해자가 법적 대응에 나서기 어려운 점을 악용했다경남CBS는 중앙노동위원회 판정 이후 해고된 아나운서를 정규직이 아닌 프리랜서로 복직 시켰다광주MBC도 지방노동위원회와 지방고용노동청에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판단한 아나운서의 근속 연수를 인정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여전히 방송노동자는 방송사 바깥에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방송 비정규직이 정규직 노동조합에도 보호받지 못하고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지금방송산업은 관례상의 계약서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정부의 표준계약서가 방송산업에 강제되지 않는 한 계약서의 편집자는 뒷문으로 빠져나간다문제는 비정규직을 원하는 사람이 아니다표준근로계약서의 핵심 조항이 계속해서 누락되는 순간 대등한 관계는 몰락한다진짜 칼을 쥔 자와 목검을 쥔 자의 싸움은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저널리스트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이 쓴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은 기자와 편집자가 실무를 이행하는 동안에도 독자와 교감하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가까이 있다고 말한다그러나 민주주의에 복무하는 언론(특히 방송산업)의 노동 구조는 정작 퇴행적이다언론이 자신의 쓸모를 직시하려 할수록 스스로 산업 구조를 되돌아봐야 할 테다

     

    사진 = 연합뉴스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안태우

    연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문화비평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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