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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혐오가 침투한 교실, 공교육의 위기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이현솔

    2024.10.07 13:56
    혐오가 침투한 교실, 공교육의 위기

     ‘참된 스승은 제자들이 자신의 개인적 영향을 받지 않도록 방어한다.’ 

     19세기 미국의 교사이자 교육개혁가인 아모스 브론슨 알코트의 말이다. 교사가 특정 이념과 사상 등에 대해 혐오 발언을 한다면 교육의 공정성이 훼손된다는 사실에 대한 지적이다. 공교육은 무엇보다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 목표로 해 정치적 이념에 좌우되지 않아야 함을 역설하는 말이다. 이러한 공교육 내 정치적 중립의 중요성은 우리나라 헌법과 교육기본법 및 초·중등교육법 등에 의해 명시되고 있다. 다시 말해, 교사는 정치적 혐오 표현을 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공교육은 편향된 정치 커뮤니티의 언어와 표현에 놓여있다. 경남 지역의 한 중학교 사회과목 시험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연상케 하는 지문이 출제된 것이다. 경남도교육청에 따르면 지난 26일 경남 모 중학교의 2학년 사회과목 시험문제에서 사회화의 역할을 묻는 지문으로 '봉하마을에 살던 윤OO이'라는 문구와 '스스로 뒷산 절벽에서 뛰어내려' 등이 예문으로 삽입됐다. 노 전 대통령 및 그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며 항의 민원 수십 건이 교육청에 잇따랐다.

     

     지문을 요약하면 봉하마을에 살던 윤OO는 행방불명돼 10여 년이 지나 동네 뒷산에서 발견됐고, 사회에 돌아온 이후에도 제대로 된 언어를 구사하지 못했다는 등의 내용이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의 고인 모독성 발언과 장애인 혐오 표현이 버젓이 공교육에 침범했음을 보여줬다. 2015년에도 서울의 한 대학교수는 자신의 수업인 '미국계약법' 시험으로 '노씨는 17세이고 지능지수는 69세였다', '그는 6세 때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리며 뇌의 결함을 앓게 됐다', '김대중이 홍어 음식점을 차렸다'라는 표현을 썼던 사례의 연장선상에 있는 셈이다. 고등교육에 이어 공교육의 현장에서도 정치적 혐오 표현이 범람하고 있다.

     

    혐오 표현이 여과 없이 시험에 출제됐다

     시험 문제 출제 과정도 문제였다. 하나의 시험 문제가 출제되기 위해서는 해당 교과의 모든 소속 교원이 해당 문제를 검토하는 등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어느 교원이 고인 모독성 ‘밈(meme)’과 혐오 표현으로 점철된 문제를 만들었으나,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다른 교원이 없었기 때문에 해당 문제가 버젓이 시험 현장에 나온 것이다. 이는 교육자들 사이에서 정치적 중립성의 의무 위반이 해이해졌음을 방증하며 교육 과정에서 혐오 표현이 만연해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해당 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교원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혐오 표현은 시험장에 나와 학생들을 의아하게 만드는 일 역시 없었을 것이다.

     

     혐오 표현이 공교육을 범람한 것은 비단 최근의 일이 아니다. 공교육의 장은 혐오의 배양지가 돼 버렸다.  2021년에는 세종시의 한 초등교사가 ‘운지(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비하하는 표현)’, ‘똥팔육(운동권 586세대)’, ‘틀딱(노인을 비하하는 표현)’의 표현을 써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교단에 서 있는 자가 혐오 표현을 여과 없이 쓰는 상황에서, 청소년들 역시 혐오 표현을 일상화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2020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의 혐오 표현 양상은 과거 집단따돌림 현상이었다면, 현재는 사회적 소수자나 특정인 및 계층에 대한 차별적 ‘밈(meme)’의 양상으로 변모했다.  즉, 교사의 혐오 표현은 청소년의 혐오 표현 사용 정당화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를 야기한다.

     

     교사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다. 교사는 그저 시험을 출제하고 채점을 하는 사람을 넘어 공교육의 현장에서 정치적 혐오를 지양해야 함을 알려야 하는 숙명이 있다. 또한 교육 현장에서의 정치적 편향과 혐오 표현의 사용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한다. 정치적 혐오 표현은 정치인의 공과 오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저해하게 만들며 정치인의 행보를 단순히 ‘밈화(化)’시킨다는 점에서 올바른 정치적 참여의 의미를 가르치지 못하게 한다. 

     

    공교육의 장이 정치적 혐오 표현을 넘어서려면

     이번 사건은 평범한 시험 문제의 논란에 그치지 않고, 교육 현장에서의 혐오 표현 사용과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비판만으로는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교육자들이 학교는  학업적 성과만을 중시하는 곳이 아니라 민주 사회의 시민을 기르는 사회화 기관임을 재고하는 것이 가장 최우선 과제다.  교육계 전반이 혐오 표현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정치적 올바름을 다시금 상기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혐오 표현이 없는 교육만이 진정한 교육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교육은 학생들에게 존중과 이해 그리고 비판적 사고를 가르쳐야 하며, 이를 통해 학생이 건강한 민주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공교육의 장이라 함은 민주적 토론 문화의 기초를 다지는 곳이다. 공교육은 다양한 관점을 존중하고 학생들에게 공정하게 정치적 입장을 소개하며 도리어 혐오 표현이 그릇됨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특정한 고인을 조롱하는 교육은 민주적 가치를 훼손하고, 학생들에게 올바른 정치적 참여와 혐오 표현에 내재된 의미를 가르치지 못하게 한다. 혐오 표현이 만연한 사회에서 오히려 혐오 표현을 공교육이 부추긴다면, 학생들은 사회에 진출했을 때 혐오 표현을 문제 없이 쓰며 사회적 약자와 자신이 속하지 않은 계층을 쉬이 비방하려 들 것이다. 사회화를 묻는 문제에서 학생의 사회화를 방해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다시는 발생돼선 안 될 것이다. 혐오 표현과 정치 양극화로 갈등을 겪는 한국 사회에서 공교육이 정치 혐오 표현을 부추긴다면, 한국 사회는 더욱 갈등의 장이 될 것이다.

     

     결국 혐오 표현을 넘어서는 교육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단순히 교육 현장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 사회의 건강성을 지키는 일이다. 교육은 학생들에게 존중과 이해를 가르치는 장이어야 하며, 이를 통해 건강한 민주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러한 해결책들을 실천에 옮길 때, 우리는 진정한 교육의 목적을 달성하고, 민주적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교육계 전반의 자정 작용으로 정치 혐오의 ‘밈적 사고’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공교육은 그 본질을 되찾을 것이다.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이현솔

    前 성신여자대학교 성신학보사 편집장 및 한국방송기자클럽(BJC)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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