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위원 이상현
2025.03.06 15:47미국 중심 서방 국가들이 ‘해양 자원을 공정하고 공평하게 배분하기 위한다’는 이유를 표방하며 최초로 국가 관할권 이외의 지역 활동에서 생기는 기후변화 등 환경 영향을 평가할 수 있는 국제법적 틀(Framework)을 만들려고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반대 의견을 냈다. 새로운 틀이 현황 조사에 필요한 예산을 미국이 대주주인 세계은행(World Bank)의 지구환경기금(GEF)에서 조달, 미국에 우호적이지 않은 개발도상국에 혜택이 주어질 리 없다는 게 반대 이유다.
바실리 네벤자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4일(현지시간) 유엔 총회 연설에서 “‘공해 및 심해저 등 국가 관할권 이원 지역의 해양생물다양성 보전 및 지속 가능 이용을 위한 협정(이하 BBNJ 협정안)’은 적절한 과학적 연구 없이 정치적 결정에 따라 지구 해양 보호 구역을 설정하는 메커니즘을 제공한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2025년 9월1일까지 60개국 서명하면 발효
한 마디로 세계은행의 최대 주주인 미국의 눈 밖에 난 나라는 공해에서 권리와 자유, 합법적 이익을 아무런 근거 없이 제한 받을 수 있고, 미국은 자신에 이로운 방향으로 이 협약을 남용할 수 있다는 취지다.
BBNJ 협정안은 지난 2023년 3월 미국 주도로 유엔 뉴욕본부에 제출돼 자구 수정을 거쳐 6개 공식 언어로 번역된 뒤 같은 해 6월 19일 공식 채택됐다.
해양 자원으로부터 발생한 이익의 공정한 배분을 목표로 개별 국가 관할권을 벗어난 지역에서의 활동이 야기하는 기후변화, 해양 산성화 등의 환경영향평가가 가능한 국제법적 프레임워크를 최초로 제공한다고 협정안에 명시됐다. ‘쿤밍-몬트리올 지구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에서 합의한 ‘30 BY 30’을 달성하는 것이 구체적인 목표다. ‘30 BY 30’은 2030년까지 전 세계 육상 및 내륙 수역과 해양 및 연안 지역의 최소 30%를 효과적으로 보전하고 관리하자는 목표다.
유엔 해양법협약과 관련 법제, 규약 틀, 부문별 기구들과의 관계 설정, 기금 및 분쟁 해결에 필요한 제도적 장치 등 법적 틀 설정 등이 논의에 포함된다.
협정안은 2025년 9월1일까지 뉴욕 유엔본부에서 각 국의 서명을 받을 예정이다. 60개국 이상이 서명하면 정식 발효된다. 한국은 지난 2023년 10월 서명을 완료했으며, 국회에 비준동의안을 제출, 비준 준비 중이다. 협정이 발효되면 유엔 사무총장은 1년 이내에 협정 당사국 첫 회의를 소집해야 한다.
“개발도상국은 개발의제, 예산, 이익배분 모두 불투명”
러시아는 네벤자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를 통해 "BBNJ 협정안이 유엔해양법협약(1982년)과 경계어류자원협정(1995년)을 비롯해, 국제해저기구, 지역어업관리기구와 해당 협정들을 포함한 바다 관련 국제기구 기반의 법적 제도와 상충된다”고 주장했다. 또 “단일 해양보호구역을 설정하기 위한 기본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 자체도 엄청난 비용이 드는데, 관리 및 보존 효과에 대한 지속적 후속 모니터링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협정안이 안정적 자금 조달 메커니즘을 제공하지 못한 채 유일한 외부 자금원으로 사실상 사적 기관인 지구환경기금(GEF)에만 의존, 협정 당사자들이 통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협약에 따른 사업의 전략적 우선순위는 협정 당사자가 아니라 자금 조달 업무 분야를 결정할 권한이 있는 GEF가 정한다는 것. 네벤자 대사는 “GEF는 이미 협정 비준 자체를 위해 많은 돈을 지출하고 있고, 유엔 회원국들 다수가 권리와 의무의 범위가 불분명한 새로운 법적 도구에 적극 유혹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령 개도국이 해양 유전 개발을 주도, 그로부터 이익을 생겼더라도 개도국이 이익을 분배 받을 가능성이 매우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공해상 심해에서 광물 자원을 개발할 경우 이익 분배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낮을 전망이다. 네벤자 대사는 “협정에는 개발 이익에 핵심적으로 기여하는 ‘지적재산권’ 문제가 제외돼 있기 때문”이라며 “BBNJ 협정이 국제해저기구의 목적 사업과 충돌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청정기술 독점한 선진국이 이익 독점 불보듯
항해, 어업, 해양과학연구 등 항행의 자유와 각종 외해 관련 기존 권리도 BBNJ 협정과 상충될 소지가 있다는 게 러시아 측 의견이다. 네벤자 대사는 “BBNJ 협정 발효 후 소수의 국가만이 기존 권리와 자유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협정 비준국들은 자신들이 깨끗한 청정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독점적 지위를 정당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정에 비준하지 않은 나라들 대부분은 청정 기술에 접근할 수 없으며, 취약하고 모호한 기술 이전 협정 조항은 개발도상국들에게 어떤 보장도 해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서두르지 말자는 게 러시아의 제안이다. 네벤자 대사는 “모든 국가에 이 협정 문서의 비준을 신중하게 고려하고 실질적 위험과 애매한 혜택을 신중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인위적으로 서두름을 조장하면 선진국과 다국적 대기업들에는 이롭지만 개발도상국에는 전혀 이롭지 않다”고 강조했다.
한편 네벤자 대사는 최근 미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국제개발처(USAID)를 통해 소위 독립적 비정부기구와 언론 매체의 정치색 짙은 활동에 대한 자금 지원 규모를 공개한 점을 지적했다. 그는 “보조금 수혜자 중 BBNJ 협정 개발에 참여한 국가에 적극 자문 서비스를 제공한 NGO들이 포함됐다”면서 “이를 보면 확실히 사심 없이 지원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사진=러시아 외무부 제공) 바실리 네벤자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가 4일(현지시간) BBNJ 협정안 서명에 대한 러시아의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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