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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은 왜 계속 전쟁을 원하는가?…뿌리 깊은 제국 DNA

    전문위원 이상현

    2025.03.07 14:53
    유럽은 왜 계속 전쟁을 원하는가?…뿌리 깊은 제국 DNA

     6일 유럽 특별정상회의를 앞둔 5일(현지시간) TV 연설에 나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미국의 이탈 우려 속에 유럽 동맹국들과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유럽을 보호하기 위해 프랑스의 핵 억지력을 사용할 가능성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하자 러시아와 미국에서는 다양한 거부 반응이 속출했다. ‘프랑스의 핵이 이름 값이나 하겠느냐’는 비아냥부터 ‘미국 바이든과 민주당의 유럽 인맥들은 왜 전쟁광인가’라는 식의 반감까지, 게다가 ‘제국주의의 탐욕과 팽창주의를 지적해온 러시아에 대한 유럽의 전통적 혐오감’이라는 묵직한 비판까지 쏟아지고 있다.

     

    방위 산업에 눈독 들이는 나라들의 정치적 수사

     프랑스는 유럽연합(EU)의 유일한 핵 보유국이다. 프랑스는 러시아와의 전쟁을 위해 그 핵 무력을 사용할 수 있고,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정보 제공을 중단하면 자국이 대신 그 책무를 수행하겠다는 비장한 발언도 거침 없이 쏟아냈다. 

     마크롱 대통령이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 시절의 반러시아 적대 정책을 고수하는 단서는 6일 폴란드 총리의 말 속에서도 발견됐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이날 “유럽이 러시아와 군비 경쟁에 뛰어들어 승리해야 한다고 믿는다”며 “프랑스 무기를 활용해 공동의 '핵 우산'을 구축한다는 마크롱 대통령의 아이디어는 논의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사용하는 2만 여 대의 스타링크 단말기 비용을 지급해왔다. 같은 날 프랑스 통신업체 유텔샛은 “우크라이나에서 운용 중인 스타링크를 대체할 약 4만 대의 통신 단말기를 보낼 준비를 마쳤다”고 발표했다. 비슷한 시각, 스타링크의 주인인 일론 머스크는 “유럽 지도자들은 우크라이나에서 '영원한 전쟁'을 원한다”고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이쯤 되면 러시아와 미국은 물론 지구촌 어떤 지식인도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위협 ▲유럽연합(EU) 보호 등 프랑스가 제시한 정치적 수사(rhetoric)를 신뢰하기 어려워진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같은 날 “우리는 우크라이나 상황을 ‘대리전(Proxy War)’이라고 거듭 말해왔고,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도 방금 같은 말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파리는 아직 우리에게 전화를 안 했는데, 우크라이나 영토에 프랑스 군대를 배치할 가능성에 대한 러시아의 반응은 누구나 알고 있다”고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드골이 그렇게 쓰라고 핵 개발 했나?"

     많은 유럽의 비판적 지식인들은 그동안 유럽인들이 우크라이나에 보여 온 태도에 대해 “너희를 지원해 줄 테니, 불씨가 우리 국경을 넘어오지 않도록 한다는 점만 약속해”라는 말로 요약한다. 하지만 이런 유럽인들의 정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방향과 사뭇 다르다. 노르웨이에 이어 나토 사무총장을 배출한 네덜란드의 총리는 이날 “우크라이나에 35억 유로의 지원금을 다시 할당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프랑스는 자신의 앙증맞지만 치명적인 발톱을 꺼내면서 동시대 유럽인들의 보편적 정서 대신 ‘숭고한 유럽 방위 공약’을 명분으로 꺼냈다.

     

     러시아는 이런 유럽의 강성 기류를 걱정하며 날 선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러시아 최서단 칼리닌그라드 상원의원인 알렉산드르 센데류크-지드코프는 “프랑스의 억지력은 기껏해야 프랑스 자체 방어만을 보장할 수 있을 뿐”이라며 “위대한 드골은 자국의 주권을 위해 만든 핵폭탄이 미친 상속자들의 손에 장난감이 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라고 개탄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러시아가 유럽에 대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비난은 말도 안 된다”며 “우크라이나에 외국 평화유지군을 배치하는 것은 하이브리드 전쟁이 아니라 나토의 직접 개입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서방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키이우에 휴식을 가져다주고 전선의 붕괴를 막으려 하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 갈등의 일시적 중단은 용납할 수 없으며, 최종 해결책에 대한 확실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핵무기 회의론…“미국 없이는 못 뭉쳐”

     미 백악관과 서방 언론들도 프랑스 대통령의 말을 조롱하듯 논평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는 “프랑스의 핵무기는 미국의 핵무기에 비해 훨씬 작아서 유럽에 미국과 같은 수준의 안보를 제공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 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마크롱은 의회에서 다수당을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출과 세금 문제에 대한 결정을 내릴 권한이 거의 없다”고 논평했다. <뉴욕타임스>는 “마크롱은 EU 방위력 강화와 미국으로부터 더 큰 전략적 자율권을 주장해왔지만 지금껏 동맹국들로부터 거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스페인 신문 <파이(Pais)>는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 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파견하는 연합에 참여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시각 기자들과 만나 마크롱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과 관련해 제안한 것과 반대되는 내용, 즉 “비핵화를 원한다”고 밝혔다.

     

    “EU 집행위원장은 루소포비아의 계승자”

     알렉세이 파라모노프 이탈리아 주재 러시아 대사는 지난 3일 현지 방송 <비죠네(Visione) TV>와의 인터뷰에서 “유럽의 러시아 혐오증의 기원은 반유대주의와 많은 공통점을 지닌 비이성적인 감정”이라고 지적했다. 파라모노프 대사는 특히 “수세기 동안 유럽의 팽창주의적 열망, 식민지 침략 및 기타 탐욕의 표현에 한계를 설정해 온 러시아와 슬라브 문명에 대한 유럽 엘리트들의 깊이 자리 잡은 두려움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역사를 통틀어 존재의 기본 이념에 충실했는데, 이는 국제적 힘의 균형 체제에서 견제 세력 역할을 하고, 어떤 형태로도 일방적 패권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파라모노프 대사는 유럽이 러시아의 존재를 이유로 뭉쳐온 전통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오스트리아 학자 쿠덴호베-칼레르기를 인용, “러시아와 대조해 유럽을 통합하려는 욕구는 더 이상 현대 세계의 현실과 완벽하게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늘날의 EU를 공격적이고 군사화된 실체로 만들고 그 존재 의미가 러시아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정의한 독일 출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주장을 떠올리게 한다”고 덧붙였다.

     

    (사진=AFP 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6일 브뤼셀 EU 본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와 유럽 방위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논의하기 위한 특별 유럽위원회’ 마지막 기자 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전문위원 이상현

    스푸트니크 한국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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