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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되는 '학교 정치화' 뉴스, 거기 10대 학생들이 있다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이휘경

    2025.04.20 13:43
    양산되는 '학교 정치화' 뉴스, 거기 10대 학생들이 있다

    한국기자협회가 제정한 언론윤리헌장 제1원칙은 ‘진실 추구’다. 여기엔 정확한 사실을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맥락으로 전달하고 취지가 왜곡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제3원칙은 ‘인권 존중 및 피해의 최소화’이며, 제4원칙은 ‘공정한 보도’로 특정한 가치와 정파적 이익에 부합하는 사실과 견해만을 선택하거나 과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가 다분히 양극화되었음은 모두가 느끼는 사실이다. 빈부, 젠더, 세대, 도농 등 격차 사회의 양상은 더욱 심해져 가는데, 정치적 다양성이 생소한 우리 사회에선 소속을 느낄 만한 정치 집단은 부재하다. 결국 같은 우선순위 내지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끼리 서로 뭉치고 극단으로 힘을 키우게 된다. 그래서 사회의 갈등은 심해지고 서로에 대한 몰이해, 배척감, 냉대함의 총량은 커지고 있다.

    그렇기에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여 공론장을 여는 언론의 역할이 더욱 강조된다. 언론은 ‘권력의 감시자’로 흔히 불리지만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만큼 중요한 역할이 또 있다. 뉴스의 기본적 속성은 격앙된 사회에서 최대한 이성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진실은 어떤 모습인지 숲을 보는 관점에서 전달하고, 자칫 대상화될 수 있는 인간과 사회를 보호하며, 편향과 왜곡을 최소화하는 정제된 공론장으로 대중을 초대하는 것이다.

    2025년 4월 4일. 10년이 채 되지 않아 두 번째 대통령 탄핵이 있었다. 2024년 12월 3일 계엄령이 선포된 후 4개월 동안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모범을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양극단에서 시위가 일어나고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 양극화가 빠르게 가시화되기도 했다. 

    새로운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그 동안 언론의 모습을 되돌아보자면, 시대의 격동 속에서 언론은 자주 그 본질을 잊은 채 양극화의 촉매제 역할에 충실했다. 갈라진 정치 사회에서 균형을 잡는 적극적인 축이 되기보단, 수동적인 점이 되어 정치적 이념을 같이 하는 쪽으로 이리저리 이동하는 편을 선택해오고 있다. 

    그 하나의 예가 10대 학생들이 성장하고, 미래를 꿈꾸는 공간인 ‘학교’를 손쉽게 이념을 위한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지난 4월 2일, 탄핵 심판 직전 MBC에서 보도된 ‘[단독] 세금으로 세운 학교는 왜 특정 정치 성향 인사들에게 장악됐나?’와 ‘[단독] 명문 한민고 강단에 선 극우 인사들…. 누가 이들을 불러냈다?’ 기사에서는 언론윤리헌장에 명시된 보도의 원칙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진실을 추구해야 할 뉴스가 일괄적 맥락과 비약, 왜곡으로 점철된 것이다. 학교는 학생과 교사가 중심이 되는 교육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설립자와 이사진 및 일부 연사들의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학교 밖 모습의 영상이 짜깁기된 뉴스는 자연스럽게 ‘극우 배척 프레임’을 구성하며 학생들의 미래에 대한 우려로 초점을 옮기게 했다.

    해당 기사들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첫 번째는 ‘국방부 예산으로 설립한 사립 학교’라는 문제 의식과 ‘이사진들의 편향된 정치 성향’이란 지적이 교묘히 겹쳐 있다는 것이다. 

    사립학교법 제10조 ‘학교법인을 설립하려는 자는 일정한 재산을 출연해야 한다’라는 조항으로 시작하는 지적은 국방부가 설립 후 한민학원 재단에 운영권을 이양시킨 원인과 과정이 무엇인지로 이어지지 않고, 이사회가 특정 정권으로 이어진 인사들로 구성되어 편파적 정치 성향을 가졌을 것이란 추측으로 이어진다. 군인 직업 특성상 근무지 이동이 잦아 안정적인 교육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군자녀 학생들을 위해 지어졌다는 특수한 설립 배경부터 추적하여 학교 운영 시스템상 법적 문제가 발견되었다면 이를 고발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지 이를 정치와 연결 지으려 하는 것은 대표적인 확증 편향이다.

    두 번째로, 학교에서 진행되는 비정규적 연사 초청 강연이 학생들의 의식을 좌우하고 있다는 것 또한 비약이자 일반화의 오류이다. 초청된 연사 인터뷰가 들어가 있지만 취재의 한계를 명분 삼아 실제 교내 강연 영상이 아닌, 외부의 정치 단체에서 선동적인 강연을 하는 영상을 담아 시청자가 충분히 오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또한 학생들의 의식에 영향을 끼쳤다는 결론을 전달하고 있지만 실제 재학생 인터뷰는 전무하다. 

    뉴스에서 언급된 ‘영향력 행사’, ‘학교를 좌지우지’ 내지 ‘장악’한다는 표현은 학생들, 교직원 또는 학부모들의 여론을 두루 살펴보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명백히 주관적인 표현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군인 부모를 둔 자녀들이 진학하는 학교라 상대적으로 사관학교 진학률이 높은 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수순인데도, 정치 성향이 주입된 학생들이 나라의 안보를 책임지는 인물로 자란다는 왜곡된 서사는 시청자들에게 편파적 관점을 주입할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 대한 명예 훼손이 아닐 수 없다. 즉, 언론윤리헌장을 정확하게 역행하는 뉴스인 것이다.

    마지막은 보도의 시기다. 뉴스에 보도된 사실은 모두 최근 일이 아니다. 한민고가 사립학교로 지어졌다는 사실은 설립 초기부터 알려진 사실이고, 법인 구성원들이 명시된 소개란은 줄곧 있어왔다. 역사 교과서 채택 논란도 이미 보도되어 지적된 바 있고, 근거 자료에 명시된 연사 초청 시기 또한 지난해다. 이 때문에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일 확정 직전에 한 학교를 무대로 세워 정치적 성향을 문제 삼는 기사는 학생들을 매개로 정치 토론을 일으키겠다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문제는 한민고 뉴스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중앙일보는 ‘전두환·노무현·박근혜 때는 이랬었다··· 대통령 모교 수난사’라는 제목으로 충암고를 향한 직접적인 비난과 물리적 폭력 사태를 언급하며 그동안 정계 인사들의 출신 학교가 정치적 담론과 연결 지어져 피해를 입었던 사례들을 모아 보도했다. 교육 기관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고 그 속의 학생들이 공정한 시각에서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제 3자의 선을 넘고 언론에서 오히려 외부 정치 요소를 적극적으로 개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저널리스트가 되고자 했고, 지금도 그 꿈을 좇고 있으며, 타지에서 국제 정치학을 공부하고 있다. 다양한 이념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갈등과 충돌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을 글과 사진으로 옮겨내는 과정에서 또다시 소외와 배제가 재생산될 수 있음을, 그 속에 사람이 존재하고 있음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사진=유튜브 화면 갈무리) MBC가 최근 잇따라 한민고 관련 보도를 내놓았다.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이휘경

    前 한대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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