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학생 칼럼니스트 안태우
2025.05.01 16:50공론장이 위기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시민 공동체가 병들었다. 소셜미디어를 타고 전달되는 의혹은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공동체의 숙의를 방해했다. 대통령마저 대국민 담화 발표를 통해 선거가 조작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며 의혹은 커졌다. 지난 겨울, 집회 장소의 경계면에 서서 내 조국보다 각자의 역사적 정당성을 찾으려고 싸우는 모습들이 불안했다. 나는 양쪽을 모두 기웃거리며 경제적으로 ‘내’가 속할 곳은 태극기를 든 곳이 아닐는지 생각하며 헌법재판소와 광화문 광장에 들렀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가족들, 친구들은 조국이 위기라고 했다. 그 곳에서 만난 가족들과 친구들은 조국이 위기라고 했다. 그들은 ‘부정선거론’과 ‘화교설’을 중심으로 하나가 됐다. 광장에서, 술집에서 부정선거, 화교설 등은 ‘나’를 ‘우리’로 만들고, ‘우리’는 ‘국민’으로 조직했다. 정치 세력은 ‘숏츠’나 ‘릴스’ 영상 등을 통해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사실을 정치화했다. 유튜브나 소셜미디어와 같은 뉴미디어에서 퍼진 의혹을 언론도 본격적으로 중계했다. 의혹이 미디어를 통해 담론으로 격상되어 음모론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 선두에 ‘스카이데일리’라는 매체가 참전했다. ‘스카이데일리’는 지난 1월 16일 '계엄군이 미군과 공동작전으로 선거연수원에서 체포한 중국인 간첩 99명을 미국 측에 인계해 일본 오키나와 미군 기지로 이송했고, 심문 과정에서 이들이 선거 개입 혐의를 일체 자백했다'고 보도했다. 취재원은 익명의 제보자였다. 한국 사회는 들끓었다. 미군 측은 이를 부인했고, 얼굴을 드러낸 익명의 제보자는 미군을 사칭한 일개 극우 유튜버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기성 언론도 이 흐름에 탑승했다. 사법부 불신 의혹과 내란 프레임을 파헤치는 데 기성 언론은 적극적이었다. ‘조선일보’가 대표적이다. 2025년, 1월 서부지법 난동 직후엔 조선일보는 사법부가 정치를 한다고 했다. 사설 ‘법원이 법원 난입 사태에 생각해야 할 것’에서는 사법부가 어떻게 정치를 하는지 주목한다. 난동이 문제인데 다른 사건의 재판 과정과 판사 성향을 열거하며 초점을 흐렸다. 조국 조국혁신당 전 대표와 윤미향 전 의원 판결 기간이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 걸렸다며 사법부가 정치를 했다고 해석했다. 서부지법 난동에는 정치하는 판사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3월 12일 사설에서는 ‘3년간 30회 연쇄 탄핵, 이것은 내란 아닌가’라며 국회의 합법적 기능에 대해 ‘내란’ 준동이라고 정의했다. 내란 혐의가 법원의 심리 중임에도 서로 내란 세력이라고 규정하고, 사법부는 불신 대상으로 전락했다.
부정선거 의혹도 다름없다. 부정선거 의혹은 지난 2020년 4·15 총선 이후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하지만 공론장의 보루인 대법원에서 그 의혹을 뒤집는 판결이 나왔다. 정치권도 음모론의 이용 가치가 떨어져 쉬쉬했다. 음모론은 전직 대통령의 쿠데타와 함께 특정 세력으로부터 호명됐다. 부정선거 의혹은 정치권의 호명과 함께 담론화되어 공론장에 다시 개입되기 시작했다. 부정선거 의혹은 계엄령을 계몽령으로 바꾸고, 계몽령은 애국으로 변했다.
이데올로기로서 ‘애국’은 음모론을 진실이라 속삭인다. ‘애국’ 이데올로기는 시민을 특정 진영에 복무하도록 무의식에 잠입해 조종한다. 애국 이데올로기의 지배계급은 온라인에서, 교회에서, 광장에서, 거리에서 음모론을 상품화해 야당과 견해가 다른 시민을 악마화시키고, 돈을 벌었다. 이건 애국이 아니라 극단적 편향이다. 편향된 이데올로기가 여론조사에서 승승장구할 때 보수언론은 힘을 실었다.
한국 사회에서 음모론은 정치 성향을 가리지 않았다. 2010년대에도 가짜뉴스를 음모론으로 둔갑한 편향된 이데올로기가 언론을 매개로 작동됐다. 진보 일부 매체와 언론인도 자유롭지 못했다. 천안함 피격 사건과 세월호 침몰에 대한 음모론이 대표적이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침몰한 후 5월 20일 민군 합동조사단은 북한 어뢰의 강력한 수중폭발에 의한 선체 절단 및 침몰이라 발표했다. 언론인 김어준씨는 ‘김어준의 뉴욕타임즈’라는 인터넷 방송 프로그램에서 합동조사단이 산수를 잘못해서 어뢰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허위 정보였다. ‘한겨레’는 2012년까지도 ‘미 잠수함 전문가 ‘천안함 어뢰 피격 확률 0%’’에서 천안함 어뢰설을 전면 부정하는 재미 과학자의 주장을 담은 기사를 내보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세월호가 앵커(닻)를 내리고 최고 속도를 내고 운항하며 고의로 침몰시켰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 정부가 밝혀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국가는 공식 조사기구인 선체조사위원회 등 10년 동안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11주기가 지났음에도 ‘한겨에21’은 4월 30일 기사 ‘왜 세월호 침몰 ‘외력설’은 사그라들지 않을까’에서 세월호 탐사취재와 보도를 이어온 ‘뉴스타파’ 김성수 기자를 인터뷰해 내인설(조타장치 고장 등 배의 이상으로 인한 침몰이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의 한계를 짚었다. 한겨레21은 세월호 침몰 원인을 둘러싼 여러 주장들에 대해 부정선거론처럼 ‘음모론의 특성이 고스란해 보인다’고 적었다.
음모론의 특징은 분명하다. 진영 다툼이 아니라 구조적 병리 현상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에 따르면 음모론은 문제 상황의 책임을 용이하게 전가하고 회피하도록 기능한다. 음모론은 진실에 합당한 대답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핵심은 음모론이 공론장의 질서를 해친다는 사실이다. 언론도 책임이 있다. 2020년대 유튜브, 소셜미디어 등 뉴미디어가 음모론을 퍼뜨리며 공론장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언론이 확성기 역할을 했다. 이야기의 껍데기를 쓴 음모론은 엄밀한 논리를 갖추거나 과학적 근거를 바탕에 두고 있지 않다. 음모론은 공론장을 마비시키고, 공동체를 분열시킨다. 음모론은 사회적 연대를 붕괴시키는 의제다.
다시 2025년, 음모론의 대두로 공동체의 대오가 흔들리며 공론장이 흐려졌다. 음모론으로 인해 공론장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시민들의 숙의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대학생 동생과 사업가 삼촌을 만날 때마다 숏츠나 특정 매체의 기사를 근거로 삼아 실체 없는 주장이 진실이 되어가는 과정을 관찰했다. ‘부정선거는 사실이다’, ‘의혹을 부정하는 세력은 화교다’ 등의 말하기만 남고, 듣기가 사라졌다. 덕분에 정파성을 강하게 띤 이데올로기가 음모론을 도구화하고, 언론이 스피커가 될 때 공동체에 어떤 파장을 낳는지 4개월간 시민들은 목격했다. 음모론이 공론장을 잠식할 때, 독자는 예민한 촉수로 언론을 감시해야 한다.
4월 18일,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는 “계엄과 탄핵이라는 한국 정치사의 비극을 만든 윤 전 대통령이 반성이나 사죄 없이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언론이 마이크를 주고 스피커를 내주는 것은 갈등을 더욱 조장할 뿐”이라고 지적했다.('계엄·헌재 비판에 탄핵 기각설까지… 혼란스러운 보도에 설명 있어야') 조선일보에서 계엄령의 실체를 폭로했던 1면 취재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단독] "대북 작전으로 알고 나섰는데... 내려보니 국회였다"’ 기자들은 비상계엄 사태로 당일 내용도 모르고 현장으로 갔다가 상처받은 군인의 모습을 조명한 취재기사로 군인의 명예만이 아니라 헌법적 질서를 보호하는 자신의 존재도 증명했다.
여전히 공론장에 언론이 유효하다는 증거다. 공론장은 신문의 발달로 여론을 형성하며 특정 계층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언론의 역사는 숙의 민주주의의 궤와 함께했다. 최선의 기록이 정당한 역사를 만든다.
언론 외에도 중요한 존재가 있다. 시민이다. 음모론은 진실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편향성을 호소할 뿐이다. 위태로운 비상계엄 사태 앞에서 용감한 시민들의 기억이 역사의 기록이 됐다. 국회 앞에서 저항한 시민들, 장갑차를 막은 청년, 국회의사당 안에서 특수부대원을 따라다니며 영상으로 기록한 기자까지. 진실은 이런 기록에서 나온다. 또 다른 진실, 음모론은 품격을 잃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음모론에도 품격이 있다 이거야.’(김희선 「어느 멋진 날」중)
(서울=연합뉴스) 지난 7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4.15 부정선거’ 등을 주장하며 집회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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