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학생 칼럼니스트 이현솔
2025.06.09 17:45국민대 여자야구부 김익 감독이 말하는 여자야구의 오늘과 내일
기회가 부족한 현실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여자들
경기도 시흥시 외곽, 국민대학교 여자야구부가 훈련에 쓰는 작은 실내 체력단련 공간. 여느 야구연습장이 떠올리게 하는 함성이나 파열음은 없다. 천장은 낮고, 바닥엔 오래된 고무 매트가 깔려 있다. 운동기구 몇 개가 벽 한쪽에 정리돼 있는 이곳은, 타격 투구 연습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선수들의 몸을 만들기 위한 장소다.
국민대 여자야구부는 2024년에 창단돼 이제 막 첫 해를 시작한 팀이다. 역사는 짧고 제도적 기반도 미비하다. 여자야구는 실업팀조차 없다. 사실 국민대학교에는 야외 훈련장도 있다. 그러나 이날, 김익 감독과 선수들은 굳이 이 시흥의 작은 공간까지 나왔다. 땀을 흘리기 위해서다. 여기엔 전광판도 응원가도 없다. 대신 숨소리와 땀방울, 그리고 ‘보이지 않는 내일을 향한 버티기’만이 쌓여간다. 그 풍경을 바라보던 김익 감독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해 자기 삶을 걸고 있다. 아무도 주지 않은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게 여자야구의 현실이다.” |
■ “기회를 못 받았던 여자들을 만났을 때, 결심했다”
김익 감독은 25년 넘게 야구만 가르쳐온 사람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수많은 남자선수가 그의 손을 거쳐갔다. “남자선수를 키우는 게 내 일이었고, 그렇게 살아왔다”는 그의 말처럼, 남성이 전유한 야구는 오랜 시간 그의 삶 그 자체였다. 그런 김익 감독이 여자야구에 발을 들이게 된 건 예상 밖의 계기였다.
– 왜 여자야구를 맡게 됐는가.
“처음엔 나도 반신반의했다. 여자야구? 굳이? 주변에서도 물었다. ‘시장성도 없고, 지원도 없고, 미래도 없다는데, 왜?’라고. 솔직히, 나도 처음엔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모든 걸 바꾼 건 단 한 마디였다. “야구를 너무 하고 싶었지만 배울 수 없었다는 여학생들의 말을 들었다. ‘우린 야구를 배울 기회조차 없었어요.’ 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평생 야구를 가르쳐왔는데 왜 여자 아이들에겐 그런 기회가 없었을까.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때 결심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이 아이들에겐 평생 그 기회가 없을 거라고.”
– 바야흐로 ‘프로야구 천만 관중’ 시대인데, 여자야구도 그 인기에 힘입었는지.
“확실히 프로야구 여성 팬들이 많아졌다. 경기장을 가보면 체감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여자야구와는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 응원하는 것과 직접 뛰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관중석의 여성 비율이 늘어났다고 해서, 여자야구를 하는 선수들에게도 기회가 돌아오는 건 아니다. 그게 지금의 현실이다.”
■ 간절함을 가르치고, 간절함에게 배우는 일상
김익 감독이 국민대 여자야구부와 인연을 맺게 된 건, 어느 날 학교 측으로부터 “팀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으면서부터였다. “처음엔 걱정이 앞섰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여자야구는 처음이었다. 경험도 없고, 시스템도 부족했고, 내가 가진 모든 기준은 남자야구에 맞춰져 있었으니까.”
그러나 마음은 아이들을 만나고 바뀌었다. “기회조차 없었던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야구를 너무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 간절함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그걸 보고 나니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내가 해줘야 했다. 이 아이들의 첫 기회를, 누군가는 만들어줘야 했으니까.”
– 팀에서 인상 깊었던 선수가 있었는가.
“서른 한 살에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야구를 하겠다고 찾아온 선수가 있었다. 야구선수가 되고 싶어 안정적인 직장도 그만둔 친구였다. 처음엔 나도 놀랐다. 그런데 그 친구가 주말마다 혼자 훈련장에 나와 묵묵히 운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걸 배웠다. 그런 순간들이 이 팀을 계속 이끌게 한다. 선수들이 보여주는 간절함 덕분에 나도 포기하지 않는다.”
– 훈련 중 기억에 남는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한 선수가 내게 물었다. ‘감독님, 저는 어디까지 열심히 해야 하나요?’라고. 기량은 있는데 미래가 안 보이니, 자기가 어디까지 해봐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해야 한다. 네가 가는 길이 결국 다른 아이들의 길이 된다.’ 하지만 그 말을 하면서도 속으론 참 미안했다. 그런 길을 열어줘야 할 책임이 나한테도 있기 때문이다.”
■ “기회가 없는데, 무슨 결과를 말하나”
– 한국에서 여자야구가 주류가 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남자야구는 엘리트 코스가 잘 정비돼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그리고 프로까지 이어지는 경로가 탄탄하다. 야구를 시작한 순간부터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 모든 단계가 보장돼 있다. 선수는 그 안에서 실력만 키우면 된다.”
남자야구에 존재하는 ‘성장의 사다리’는 여자야구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김익 감독은 이 간극을 구조적 문제로 짚었다. “엘리트 코스 시스템이 정비된 남자야구와 달리, 여자야구는 아예 그 사다리 자체가 없다. 초중고 과정에서 여자야구부는커녕 방과 후 수업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 시작이 없으니 도달점도 없다. 결과가 없으니 당연히 지원도 끊긴다. 그렇게 여자야구는 항상 뒤로 밀려나게 된다. 이건 단순한 성별 간 스포츠 환경 차이가 아니라 시스템 설계 단계에서부터 배제돼 있던 구조적 문제다.”
기회의 사다리를 어떻게 놓을 것인가. 김 감독은 이 질문에 있어 야구계 전체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KBO나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의 지원은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협회나 KBO도 관심을 두고 노력해 주는 부분이 있다. 매년 여자야구 대회를 열고, 일부 지원도 하고 있다는 건 분명히 고마운 일이다. 실제로 ‘선덕여왕배 전국여자야구대회’나 ‘프로야구선수협회장기 전국여자야구대회’ 같은 대회가 꾸준히 운영되고 있다.”
그는 말을 이었다. “다만, 이러한 지원이 이벤트에 머무르지 않고 더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제도 개선으로 이어졌으면 한다. 예를 들어 실업팀 창단, 국가대표 육성 프로그램 설계, 엘리트 체계 도입 같은 방향 말이다. 지금은 선수들이 일단 뭔가를 이뤄낸 뒤에야 ‘도움이 가는 구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시스템이 선행돼야 한다. 선수들의 의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의 말은 현재 존재하는 노력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더 확장돼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결국 여자야구를 ‘주체적 선수들의 영역’으로 바라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동호회나 일회성 이벤트의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그래야 이 아이들이 오랜 시간 버티고 쌓아온 간절함에 사회가 응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자야구는 지금, 어딘가 정식 종목도 아니고, 동호회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경계에 머물고 있다. 야구를 향한 선수들의 진심과 노력은 분명한데, 이를 뒷받침하는 구조는 여전히 부족하다.
- 여자야구부를 운영하며 제도적, 행정적으로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사회 전반의 인식이 여자야구를 아직은 '비주류'로 본다. 협회나 교육부에서도 결과를 먼저 요구하는데, 사실 그 결과를 만들어낼 기반이 부족하다. 학교 체육 안에 여자야구가 아예 없으니까. 방과 후 수업으로도 운영되지 않는다. 야구를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결과를 요구하는 건, 사실상 모순이다.”
김익 감독은 특정 기관의 책임을 단정하기보다는 그 구조를 함께 바꾸어 나가야 한다는 문제 의식을 드러냈다.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그동안 체계가 한쪽 방향으로만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여자야구도 조금 더 일찍부터 접하고,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된다면 상황은 분명 달라질 수 있다.”
▲김익 감독과 국민대 여자야구부 임은지, 김가현 선수의 모습. 열심히 훈련을 해 손가락을 다쳤다.
■ 도전은 남자만의 특권이 아니다
– 선수들이 마주하는 차별이나 편견에는 어떤 양상이 있었는가.
“우리 야구부 관련 기사가 나가면, 어김없이 ‘여자가 무슨 야구냐’는 댓글이 달린다. 그런 말들을 접한 선수들이 상처를 입고, 결국 여러 방송 출연 제안을 고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혹시라도 또다시 조롱의 대상이 되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여자야구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기회임에도, 그걸 스스로 접게 되는 것이다.”
김익 감독은 이 현상이 단순히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견고한 사회적 편견과 맞닿아 있다고 덧붙였다. “남자선수는 실패해도 도전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자선수는 시작부터 의심을 받는다. 시도 자체가 곧 조롱이 된다. 우리 선수들은 각자 생계를 해결하면서 훈련까지 병행한다. 숙소도, 식사도, 훈련비도 모두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남자야구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선수’로 정의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 여자야구가 성장하기 위해 가장 시급하게 바뀌어야 할 지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무엇보다 실업팀 창단이 필요하다. 지금은 여자야구 선수가 대학 졸업 이후 진로를 이어가기 어려운 구조다. 여자 스포츠 전체를 봐도, 소프트볼 외에는 실업팀이 없다. 야구 실업팀이 하나만 생겨도 다르다. ‘나도 저기까지 갈 수 있다’는 그림이 있어야 아이들도 도전할 수 있다. 그림이 있어야 꿈도 꿀 수 있다.”
그는 해외 사례도 언급했다. “일본은 여자야구 실업팀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어서, 여성 선수들이 직업적으로 야구를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이 잘 마련돼 있다. 미국은 최근 여자 프로야구리그(WPBL) 출범을 준비 중이다. 독립리그나 국가대표 출신 여성 선수들이 그 무대를 향해 다시 훈련에 돌입하고 있다. 그만큼 ‘선수로 사는 삶’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셈이다.”
김익 감독은 한국의 현실을 조심스럽게 짚었다. “반면 한국은 아직 실업팀도, 프로팀도 없는 상태다. 현재 여자야구는 협회 산하에서 운영되며 사회인 야구 리그에 기대고 있는 수준이다. 등록된 팀 수는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비정규적이고 아마추어 중심이다. 국가대표팀조차 정규리그 없이 트라이아웃 방식으로 선발된다. 합숙이나 지속적인 훈련 시스템도 없다. 이런 조건에서 실력을 유지하거나 생계를 병행하며 야구에 전념하기란 쉽지 않다.”
그는 이 문제를 단지 야구계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고 했다. “교육기관에서도 여자 아이들이 야구를 처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방과 후 수업이라도 생긴다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야구를 경험하고, 좋아하게 되고, 도전해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대학, 실업팀, 국제대회로 이어져야 한다. 지금 한국 여자야구는 그 출발점부터가 부재하다.”
김익 감독은 조용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이건 KBO나 협회만의 몫이 아니다. 교육부의 역할도 크다. 야구는 이미 국민 스포츠다. 그런데 국민의 절반에게는 교육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출발선에 설 수 있는 기회부터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만 여자야구가 진정으로 사회 안에서 자리 잡을 수 있다.
– ‘여자야구는 결국 ○○이다’라고 정의한다면?
“여자야구는 결국 간절함이다. 남자야구는 시스템 위에서 달린다. 여자야구는 시스템이 없으니, 스스로 길을 만들며 달려야 한다.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직 간절함 하나로 버티는 게 여자야구다.” 김익 감독의 말은 단호했고, 그 단어에는 수많은 장면이 실려 있었다.
“그런데 세상은 아직도 묻지 않는다. ‘왜 여자야구는 항상 출발선 밖에 있는가?’ 이건 여자야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공정한지를 되묻는 질문이다. 여자야구를 동정해 달라는 게 아니다. 다만 왜 이들은 시작조차 못 하는지, 함께 고민해 달라는 거다. 이제는 사회가 답해야 한다.”
2024년 9월 KBO가 발표한 관람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신규 관람자의 여성 비중은 48.6%에 달했다. 프로야구는 명실상부 대중 스포츠로서 여성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제 여성은 야구 산업의 ‘주요 소비자’로 자리를 잡았고 각 구단은 여성 팬을 겨냥한 마케팅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야구를 소비하는 여성’의 존재감과는 달리, ‘야구를 하는 여성’의 자리는 아직도 없다. 엘리트 육성 시스템도, 실업팀도 여성에게는 처음부터 존재한 적이 없다. ‘야구장에 입장하는 여성’은 환영받지만, ‘그라운드에 서는 여성’은 여전히 구조 밖에 있다. 김익 감독은 조용히 말했다. “여자야구는 간절함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매일을 걷고 있다. 그런데 세상은 그 간절함에 아직도 응답하지 않는다.”
수백만 여성들이 야구를 사랑하고 관중석을 채우는 시대에 정작 야구를 삶의 중심에 놓은 여성들은 제도 밖에서 버티고 있다. 이 모순의 풍경은 단지 스포츠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열정과 노력 앞에 사회가 누구에게 기회를 주고, 누구에게 침묵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김익 감독과 국민대 여자야구부는 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사회가 그 물음에 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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