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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무원의 의도된 무능은 사회악의 씨앗

    전문위원 박경종

    2023.08.21 10:02
    공무원의 의도된 무능은 사회악의 씨앗

     파행을 겪던 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11일 폐영식과 K팝 콘서트로 막을 내렸다. 부실 운영에 폭염, 태풍까지 겹치면서 위기에 처했던 잼버리는 각성한 중앙정부의 대처와 기업, 위기감을 느낀 일반 시민 등의 협조로 간신히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언론을 통해 각종 문제가 쏟아지는 것을 알게 된 국민들은 누구하나 경악하지 않았던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제기된 문제 하나하나가 입에 올리기도 창피할 정도로 사전 준비가 안되었으니 눈이 높아진 국민의 수준으로 보면 행사를 주관하고 준비를 담당한 공무원들을 향해 비판을 참을 수가 없을 것이다.

     ‘영혼없는 공무원이라는 공무원 폄하 용어도 자주 들리긴 하지만 잼버리 부실 사태로 드러난 많은 문제 중에서도 당연 공무원의 보신주의와 탁상행정의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것은 전적으로 무능과 무책임에서 기인한다. 공무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면 능력이 있을지 몰라도 전체 조직으로 평가해 보자면 이보다 더 무능할 수 없다. 보다 심각한 사실은 이것은 '의도된 무능'이라는 점이다.

    잼버리 실패는 공무원 조직 '의도된 무능'의 결과물 
     잼버리 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서 크게 두 개의 조직인 대회조직위원회와 집행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었다. 조직위원회는 전체적인 계획과 예산을 책임지는 머리에 해당하는 조직이 될 것이고, 팔과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은 집행위원회의 책임이다. 더구나 여당 중심 조직위와 야당 소속 집행위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의사소통 장애요소가 내재되어 있는 상황인 것이다.
     
    하물며 대개의 조직은 계획을 실행하는 단계에서 그 이행 과정을 면밀하게 살피지 않으면 임무수행에 빈틈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른바 '노잉 두잉 갭'(Knowing-Doing Gap. 계획과 실행사이에 발생하는 차이)이 발생하는 것이다. 계획수립 부서와 실행부서가 위치적으로 분리되어 있거나 조직문화가 다른 경우, 정책 계획과 실행 사이에서 갭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갭은 조직 내에서 역할과 책임의 모호성, 의사소통 부족, 실행과정에서의 평가와 피드백 부족으로 정책 수행에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정책의 목표 달성이 어려워질 수 있으며, 조직 내에서 협업과 조화를 이루기 위한 노력이 각별히 요구되는 것이다. 정책 계획과 실행 사이의 갭을 최소화하려면 의사소통 강화, 조직문화의 공유 및 조정, 효과적인 역할 및 책임 분배, 정보 공유와 투명성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이 중앙정부의 역할이다.


     이미 갯벌 지역에 잼버리 장소를 확정한 단계에서부터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고, 게다가 유례없는 폭염까지도 예상되었기에 시범 운영 등을 통해 현장에서의 문제점을 긴급하게 보완하는 것이 필수적인 조직 운영의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전 운영 등은 없었으며, 현장에서의 문제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조직위원장이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자신있게 말한다는 것은 참으로 무책임한 태도이고 무능력하다고 평가할 수 밖에 없다.

     참다운 리더, 책임감 있는 리더라면 부하직원들의 보고와는 별도로 한 단계 더 높게 예상되는 문제점들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철저하게 수행하도록 독려했어야 마땅하다. 그런 점에서 중앙정부의 책임이 지방정부의 과실보다 적지 않다고 본다. 잼버리 현장에서는 또 어떤가. 상부에서 지시하지 않은 일들을 자발적으로 하기보다는 그저 수동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는가. 이 중 대부분은 자신들의 이러한 수동적 업무수행이 어떤 결과를 부를지 알고,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도 알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 결과를 인식하는 데 있어 무능하지 않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모두 나쁜 의도로 행동했다고는 볼 수 없다. 단지 말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들에게 생각의 무능은 결과를 예상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 적극적 행동을 결심하지 못하는 무능이며 도덕적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의미한다.

    생각의 무능은 행동의 무능, 악의 평범성으로 이어져
     이쯤대면 미국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제시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개념을 소환하고 싶다. 악의 평범성이란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행하는 일이 악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이다선한 사람들이 스스로 악한 의도를 품지 않더라도, 당연하고 평범하다고 여기며 행하는 일들 중 무엇인가는 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이 기계적으로 행하는 일 속에서도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행동한다면 이것이 사회악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군대, 학교, 직장 등의 따돌림 괴롭힘의 문제속에서도 악의 평범성을 발견할 수 있다. 조직의 분위기가 특정인을 괴롭히고 따돌리는 방향으로 형성되면 구성원들은 기계적으로 해당 분위기에 맞는 행동들을 하게 되고, 결국 악행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아렌트의 주장은 이 사회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이해하는데 큰 의미를 가진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 생각과 판단조차도 암묵적으로 묶여있기 때문에 생각의 무능이 행동의 무능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공무원 조직과 같은 수직 권력 구조에 속한 개인은 소속장의 명령에 따라야만 한다이는 그 사회의 규범으로 개인의 행동을 제한하고 사고의 주체성을 빼앗는다. 이러한 조직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것이라는 두려움이나 집단을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얻고자 하는 이기심, 부조리를 당연하게 여기는 다른 구성원들의 태도 등이 개인의 윤리적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한다.

     
    여기에서 아렌트가 주장한 악의 평범성이 더 넓은 의미로 적용될 수 있다. 어떤 계기로 인해 사회가 구성원들을 강한 규율로 제한한다면 자유의지에 근거한 판단 능력은 쉽게 흐려진다. 아렌트는 악의가 없는 인간이 악행을 저지르는 이유이자 그 책임의 근거를 여기서 발견한다. 생각의 무능이 행동의 무능으로 연결되는 판단 불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생각의 무능은 악행을 저지르는 사회 구성원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일상이 곧 악행이 되기 때문에, 개인의 각성 없이는 이를 인지할 수 없다. 생각의 무능이 행동의 무능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명확하다. 악행이나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것이 악이라고 말하지 않고, 저항할 이유조차 없어진다. 결국, 개개인의 생각의 불능성은 부도덕하고 불공정한 사회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생각 외면하고 거부하는 개인, 악한 사회 자양분 돼
     악한 사회 또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는 생각하지 못하는 개인, 즉 생각하기 싫어하거나, 생각을 할 수 없는 개인들에 의해서 자양분을 받고 커져간다. 그렇게 완성된 악한 사회는 다시 개인에게 악영향을 주는 악순환의 길을 걷게 된다. 금번 잼버리 사태를 통해 공무원 조직의 각성의 전환이 필요할 때다. 모두가 예상하듯이 감사원의 철저한 감사를 통해 문제의 씨앗이 다시금 다른 곳에서 싹트지 않도록 제대로 밝혀내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공정한 사회, 미래가 희망적인 나라가 되려면 공무원 조직 뿐만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각성 수준도 변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연합뉴스)

    전문위원 박경종

    항공우주정책연구원장, (전)공군사관학교 부교장, (전)한국융합경영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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