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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론조사 싫어" 전화를 차단하는 이유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임예영

    2024.02.21 16:47
    "여론조사 싫어" 전화를 차단하는 이유

     ‘02’, ‘070’으로 시작되는 전화가 오면 바로 받는 대신 구글을 켠다. 여론조사 번호라는 결과를 확인하면 전화 거부 버튼을 누른다.
    포털에 여론조사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여론조사 전화 차단이 가장 먼저 뜬다. SNS에선 통신사별 여론조사 전화 차단 방법이 꿀팁으로 돌아다닌다. 발신자를 알려주는 사이트 댓글 창엔 오늘만 3번째’, ‘9시 넘어서도 전화가 온다는 불만이 넘쳐난다.

    국제기준 응답률 3%, 원인은
     여론조사기관은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아낼까. 여론조사기관은 공직선거법상 이동통신사에게 성·연령·지역별 가상 번호를 받을 수 있다. 알뜰폰 가입자 1000만여 명의 전화번호는 제공되지 않는다. 알뜰폰인데도 전화가 왔다면 기관이 번호를 무작위로 조합했기 때문이다.
    기관은 전화면접·전화자동응답(ARS) 등으로 여론을 수집하는데, 전화를 받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따르면 2017년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 조사방법별 응답률 평균은 11.4%였고,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9.3%에 불과했다. 국제기준을 적용하면 10% 미만 응답률이 3%까지 내려간다는 분석도 있다.
     응답률이 저조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째, 전화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짧은 시간에 적은 비용으로 응답을 모아야 하는 선거 여론조사는 대부분 전화로 이뤄진다. 그러나 각종 전화 마케팅 등에 시달려온 사람들은 모르는 전화번호가 뜨면 의심부터 한다.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만 4472억 원이고, ‘모르는 번호로 오는 전화를 받지 말라가 예방책인 사회다. 국내 여론조사 업체 34곳이 가입한 한국조사협회는 응답률을 높이기 위해 부재중·통화 중인 대상자에게 최소 3회 이상 재접촉을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문제는 전화를 한 번만 걸고 끊는 근성 부족이 아니다. 전화를 여러 번 걸면 시민들도 근성 있게 여러 번 끊을 뿐이다.
     둘째, 조사기관별로 천차만별인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 한 기관은 A 후보가 B 후보를 압승한다고 하고, 다른 기관은 A 후보와 B 후보가 초박빙이라고 하고, 또 다른 기관은 B 후보가 A 후보를 근소하게 앞선단다. 같은 선거를 다룬 조사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다. 심지어 제20대 대통령선거 당시엔 한 기관이 같은 날 다른 조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여론조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어려운 환경이다. 시민은 여론조사 이용자이면서 여론 제공자이기도 하다. 정보 이용자로서 여론조사 결과를 신뢰하기 어려운데, 정보 제공자로서 선뜻 여론조사에 응할 리 없다.
     셋째, 조사에 들이는 시간에 비해 효능감이 적다. 선거 여론조사 평균 조사시간은 122초다. 일과 시간엔 2분 동안 전화를 받을 시간이 없고 퇴근 시간엔 받을 의지가 없다. 끝까지 조사에 참여해도 해당 여론조사 결과가 어떤지, 이 결과가 어디에 반영될지 알 길이 없다. 이렇듯 여론조사 참여자를 주체로 존중하지 않고 정치적·상업적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현실 속에서 모르는 번호의 전화를 흔쾌히 받고 2분 동안 참여한 다음 뿌듯함을 느끼는 사람을 찾긴 어렵다

     
    여전히 대체 수단 없는 여론조사
     이런 한계에도 여론조사의 위상은 여전하다. 대선 후보를 정할 땐 물론이고 적합한 총선 후보자를 뽑을 때, 정책의 정당성을 논할 때, 대통령 행위의 적절성을 판단할 때, 심지어 사소한 이슈를 다룰 때도 여론조사는 빠짐없이 등장한다. 어떤 사안을 판단해야 할 땐 같은 사회 구성원의 생각이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본인 의견이 다수에 속하면 안도하고, 소수에 속하면 스스로 검열하며 다른 선택지를 모색하거나 의견을 쭉 고수한다. 정치권 입장에서야 정당 후보자 지지, 정책·제도에 대한 찬반 등 여론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실적 수단이 여론조사 외엔 마땅히 없긴 하다
     문제는 여론조사가 여론 자체를 잘못된 방식으로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4월 제22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등록된 여론조사 기관은 60개다. 2022년부터 지금까지 벌써 954건이 시행됐고, 위법 행위 37건이 적발됐다. 조사기관별로 결과가 다르고 응답률이 저조한 여론조사가 남발한다. 정치인은 이 중 본인 견해에 유리한 여론조사를 근거로 활용하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여론조사가 여론을 드러내는 자료가 아니라 정치인의 영향력을 키우는 수단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게다가 언론은 오차 범위 내 수치를 엄청난 차이인 듯 부풀리며 여론조사 결과를 왜곡하고 맹신을 부추겼다. 20대 대통령선거 당시, 11일부터 38일까지 올라온 여론조사 결과 인용 보도 기사는 총 1179(전국 일간지 기준)이었다. 이 무수한 보도들이 유권자들의 민심을 얼마나 혼탁하게 했을지 생각하면 안타깝다.
     여론조사는 민심을 반영하는 통로라기엔 아직 문제가 많다. 지금부터라도 정치권·언론계·여론조사기관이 손을 잡아야 한다. 정치권은 시민의 목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해, 언론계는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여론조사기관은 믿을 만한 결과를 내기 위해 여론조사의 조사방법·인식·신뢰도·기회비용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혹시 알까, 투표가 내 삶을 바꾸는 소중한 한 표가 됐듯 여론조사도 내 삶을 바꾸는 소중한 전화가 될지.

    (사진=연합뉴스)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임예영

    前 고대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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