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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의 가치’ 잃어버린 사회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양현서

    2024.02.26 11:22
    ‘같이의 가치’ 잃어버린 사회

    지난 19일 프랑스 언론 르몽드가 우리나라의 노키즈존(no-kids zones)’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르몽드는 한국 사회의 집단 간 배제 및 낙인찍기 현상이 증가하는 추세라며 해당 문제가 저출생 현상과도 연관이 있음을 지적했다. 미국 CNN 역시 사회적 태도 변화를 위한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며 노키즈존을 부정적으로 조명했다. 또한 최근 어린이뿐만 아니라 '노시니어존' '노커플존' '노유튜버존' '노프로페서존' 등 특정 계층을 배제하는 공간이 늘어나는 현상 역시 주목했다.

     ‘00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양적·질적으로 기이하게 변화 중이다. 이제는 어린이에서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특정 연령군 및 직업군을 기준으로 그 범위가 확장되고 있으며 관련 매장의 숫자 역시 증가하고 있다. 제주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의 노키즈존은 무려 542곳에 달한다최근에는 이에 대한 법적 논의까지 불거졌다. 제주도의회는 지난해 4아동출입제한업소 지정 금지 조례안까지 발의했다. 제주도는 노키즈존이 약 80곳으로 국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업소를 보유 중이라는 점, 국내 최초로 관련 조례를 추진한 경우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였다.

     본래 해당 조례안의 목표는 영유아 및 아동의 매장 이용 제한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종 가결된 조례명과 내용은 이전과 사뭇 달랐다. 제주도의회 보건복지위원회는 금지확산 방지, ‘처벌 및 불이익아동친화업소 활성화로 대체했다. 현재까지 운영 중인 아동출입제한업소에 대한 구체적인 단속 방안이나 앞으로 생겨날 노키즈존 시설에 대한 대책은 언급된 바 없다. 과연 이런 구체적인 대안에 대한 논의 없이 아동 인식 개선 캠페인이나, 예스키즈존 활성화 사업만으로 사회에 깊게 뿌리 내린 아동 혐오를 개선할 수 있을까. 조례안이 강제성도, 실효성 있는 대책도 갖추지 못한다면 이는 그저 허명무실한 규정일 뿐이다.

     아동친화사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단지 아이들을 이해해달라는 상투적인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예스키즈존과 관련한 각종 캠페인이나 홍보도 좋지만, 해당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위한 실질적 변화 노력 역시 장기간에 걸쳐 병행돼야 한다.
     
    그 해결책 중 하나가 아이들을 위한 공간 마련이 될 수 있다. 공간은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공간이든 각자만의 다양성을 가진 이들이 제약 없이 모여 소통하고 연결돼 공존하는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위의 문제들을 통해 보듯, 현재 한국은 외국에 비해 아이들이 주체가 된 공간이 현저히 부족하다. 다소 지루하고 삭막하게 느껴질 어른들의 장소에서 얌전히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아이들이 몇이나 될까.

     아동 친화 도시로 유명한 프랑스 파리에는 카페, 식당, 도서관, 미술관, 역사 유적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시설들에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참여 가능한 공간이 충분히 마련돼 있다. 파리의 대표 관광지에는 대부분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가 있으며, 축제나 플리마켓이 열리는 장소 역시 아이들을 위한 놀이시설이 설치돼 있다. 식당에서도 아이들을 별도의 손님으로 인식한다. 아이들 역시 다른 손님들과 마찬가지로 메뉴판을 제공받고, 본인이 직접 메뉴를 고르며 해당 공간에서의 경험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인다.
     사회학자 가브리엘 타르드는 인간 사회를 모방의 공동체라고 표현했다. 인간은 서로를 모방하기 위해 모여 살며, 이를 토대로 대부분의 행동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른을 통해 좋고 나쁜 것을 구별하고, 학생이 선생님을 통해 배움을 얻듯이 말이다. 이렇게 모방을 통해 누적된 지식으로 인해 사회 혁신은 꽃을 피울 수 있다. 이는 결국 서로 다른 연령, 직업, 성격, 특징을 가진 다양한 존재가 서로 연대할 때 가능한 일이다. 비슷한 부류의 집단끼리 격리돼 모방할 새로움이라고는 없는 공간을 안온하다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 소통도, 모방할 기회도 차단된 사회에서는 어떤 혁신도 도래하기 어렵다.


    (그래픽=연합뉴스) 노키즈존 관련 입장 차이에 대한 제주연구원 조사 및 주요 판결 사례.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양현서

    前서울여대학보 사진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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