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학생 칼럼니스트 양진서
2024.03.04 09:16 지난 1년 동안 지역아동센터에서 근로하며 초등학생들과 소통하고 이들의 학습 태도를 관찰할 기회가 많았다. 단연 눈에 띄었던 점은 유튜브, 틱톡 등 각종 미디어가 초등학생들의 생활 전반에 침투해 있다는 것이었다. 친구와 대화할 때는 인터넷 밈(meme)을 사용했으며, 쉬는 시간에는 요즘 유행하는 틱톡 챌린지라며 대뜸 춤을 추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은 스마트폰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학령 전환기 학생을 대상으로 한 스마트폰 이용 실태 조사에 의하면, 초등학생 중 스마트폰 과의존 사용 군은 무려 16.3%에 달한다.
이렇듯 스마트폰 SNS에 중독된 초등학생이 증가하면서 ‘문해력 감소’ 현상 역시 대두되고 있다. 실제로 지역아동센터에서 만난 아이들은 어휘력이 현저히 부족했다. 이들은 비슷한 상황에서 전부 같은 밈을 사용했다. 가령 무언가 있었다가 사라진 상황에서는 십중팔구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라는 밈으로 심정을 표현했다. 다른 문장을 사용할 수 있음에도 아이들은 언제나 해당 표현만을 고집했다. 단체 생활에서 초등학생들은 대화를 통해 서로가 사용하는 표현을 배우며 어휘력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모두가 똑같은 밈만을 사용하는 오늘날의 교실에서 이런 바람직한 학습이 나타날 리 만무하다.
소설가 김영하는 한 프로그램에서 학생들에게 ‘짜증 난다’는 말을 금지했다고 말한 바 있다. 서운함, 분노 등의 다양한 감정이 짜증 난다는 말로만 표현되는 것을 우려한 것이다. 아직 어휘력이 부족한 초등학생이 머릿속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고르는 데는 많은 시간과 고통이 뒤따른다. 그러나 밈은 이러한 생각의 과정으로부터 아이들을 해방했다. 비슷한 상황에서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만능 단어’가 이들의 뇌 속에 저장돼 버렸다.
미디어에 잠식된 뇌는 복잡한 사고를 거부한다. 초등학생들의 일상 속 언어 사용을 관찰한 결과, 이들은 짧고 단순한 표현을 선호하는 특징이 있었다. 다섯 글자가 넘어가는 단어는 전부 줄임말로 만들고, 친구와의 갈등 상황에서는 언제나 ‘어쩌라고’라는 말로 대응했다. 길거나 복잡하지 않은 표현만을 사용하는 게 온라인에서는 편리할 수 있으나, 현실에선 이와는 다른 소통 방식이 적합하다. 현실에서 친구와 대화할 때는 상황에 따라 길고 상세한 설명이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숏폼 등 짧은 길이로 제작된 콘텐츠에 익숙해진 초등학생이 ‘어쩌라고’라는 표현 뒤에 숨겨진 자신의 심정을 서너 문장으로 나타내는 것은 엄청난 어려움이 뒤따르는 일이다.
27일 국제학업성취도(PISA) 지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 학생들의 ‘읽기’ 분야 평균 점수는 515점으로 2009년 이후로 하락세를 보인다. 이는 전혀 놀라운 결과가 아니다. 초등학생에게 핸드폰을 쥐여주었음에도 이들의 문해력이 향상됐다면 오히려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광양시, 안성시 등 심각성을 인지한 지자체는 스마트폰 중독 예방 교육을 진행했다. 그러나 아직 자제력이 부족한 초등학생에게 중독성이 강한 스마트폰을 건네고 이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결국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다.
초등학생에게 스마트폰을 자제력 있게 사용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애초에 자기 조절 능력이 성인보다 부족한 것은 당연하거니와, 유해하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분별하는 능력 역시 아직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부터 아이들을 격리하고 이들이 미디어 대신 책으로 눈을 돌리도록 하는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 올해부터 연차적으로 적용되는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따르면 초등학교는 기초 문해력 교육이 강화되면서 국어 수업 시간이 34시간 늘어날 예정이다. 그러나 단순히 국어 수업 시간을 늘리는 것이 문해력 부족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 초등학생의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효과적인 규제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문해력 감소를 해결할 희망은 영영 사라질 것이다. 능숙하게 스마트폰을 조작하던 손으로 어색하게 책장을 넘기는 초등학생들을 바라보며 오늘도 이들의 탈(脫) 스마트폰을 염원한다.
(그래픽=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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