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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미디어 노동자 기획➀] 외줄타기 방송노동자, 나는 여전히 불안하다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안태우

    2024.03.07 10:20
    [방송미디어 노동자 기획➀] 외줄타기 방송노동자, 나는 여전히 불안하다

    방송미디어 노동자들의 현실을 들여다보는 내용의 기획 칼럼을 세 차례에 걸쳐 준비했습니다. 다음번 기획➁에서 방송미디어 비정규직·프리랜서 노동자의 노동구조를, 마지막 기획➂에서는 현실 속 현상적이면서도 구조적인 여러 문제를 타개하려는 방송미디어 노동자의 다양한 노력들을 담을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편집자 주) 

     며칠 전 한 방송사를 퇴사한 A씨를 연남동 카페에서 만났을 때 그는 어딘가 홀가분해 보였다. 그는 “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백수”라며 웃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나 이전 직장에 대해 묻자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먼저 어떤 계약의 형태를 갖고 방송국에서 일했는지 물었다. 그는 “요즘은 달라졌지만 나의 경우에는 용역 업체에 고용이 되어 방송국에 파견을 나갔다”라며 “계약도 용역 업체와 했고 급여도 거기서 나오는 파견 계약의 형태”라고 밝혔다. 
     문제는 직무의 가변성이었다. ‘가’라는 업무를 할당받아 계약을 했으나 함께 일하는 타 정규직 구성원의 요구에 맞춰 나, 다 등으로 업무 형태가 확장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의 담당 업무는 자료조사였다. 하지만 상사의 요구에 따라 취재를 함께 나가거나, 대신 나갔다. 더불어 작가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했다. 결국 본인의 책임만 가중되는, 일종의 고립된 노동의 파편화*를 겪은 거다. 

    영원한 비정규직, 고용 불안에 놓여...젠더 의식도 부족 
     일각에서는 이러한 비정규직 형태의 고용이 무조건 나쁜 게 아니라고도 한다. 한 방송사에서 포털사이트에 영상 업로드를 담당하고 있는 B씨는 “학생 신분에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 편한 일을 구해서 괜찮다”며 “4대 보험도 가입되었고, 소득도 잡혀 대출할 때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 형태의 고용 형태가 미디어산업의 진입장벽을 낮췄던 셈이다.
     그러나 많은 방송미디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A씨는 “1년 계약을 했지만 6개월만 하다가 내팽개쳐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어야 했다”고 했다. 일례로 방송미디어 비정규직·프리랜서 노동자들은 정부나 해당 방송사의 운영지침에 따라 위치를 위협받는다. KBS 수신료 분리징수 사태가 대표적이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발간한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KBS 수신료 분리징수 이후 전체 응답자 중  84%가 고용 불안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더불어 “지역 방송국에서는 이전과 달리 기회가 되는대로 방송을 삭제(결방)시키는 경우가 많아졌으며 최근 절반 정도 방송이 삭제되어 페이 역시, 절반이 되었다”고 응답했다. 

     뿐만 아니라 해당 직무를 본업으로 삼기 어려운 상황도 고용 불안으로부터 보호받기 어렵게 만드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A씨는 “그럼에도 비정규직으로만 뽑히는 이 직무를 평생 할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때문에 불안정한 고용 형태로는 방송미디어 노동자의 파편화를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규직군으로 분류되는 기자, PD 등을 제외하면 본업과 평생 직업으로 삼기에 고용이 불안정하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조연출 및 기술 ▲조사·진행·CG·행정·미술 ▲작가 등과 같은 직무는 방송사에서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게 ‘방송지원직’과 같은 새로운 계약 형태다. 예컨대 2021년 고용노동부 근로감독 결과 363명 가운데 152명의 방송3사 방송작가 상당수의 노동자성을 확인했다. 하지만 방송3사는 ‘방송지원직’ ‘별정직’ 등의 직군을 차리며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을 부정했다. 

     채용방식에 따른 차별도 존재한다. 비정규직·프리랜서 노동자는 각 방송사의 노동조합에서도 가입이 배제되어 있다. B씨는 “우리를 보호해주는 노동조합은 없다”면서 “노동조합이 내가 다니는 방송사에 있지만 계약직은 받아주지 않는 상태”라고 전했다. 
     A씨는 젠더 의식이 부족한 현장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일례로 A씨는 상사의 요청으로 취재를 나갔다. 당시 취재원이 여성이 나체로 성상납을 하는 영상을 아무런 모자이크 없이 A씨 앞에서 틀어놓은 것이다. 문제는 동행한 상사나 취재원의 아무런 제지가 없었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이어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젠더 문제에 관심을 가진 팀·부장을 만나기 어려웠다”면서도 “취재원으로 인해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하는 사례도 접할 수 있었다”고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현장 들여다 봐야...성별과 고용형태에 따른 실태조사 필요
     그러나 A씨와 같은 경험을 했던 이들이 한 목소리를 내기엔 어려운 실정이다. 정확히 비정규직·프리랜서 형태로 여성 노동자가 얼마나 있는지 통계가 잡힌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인구경제학에 따른 성별 간 일자리 불안정성도 문제로 꼽힌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발간한 ‘디지털 전환기 일자리의 변화 분석 및 대응 방안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하여 고숙련 일자리와 저숙련 일자리로 노동 시장의 양극화가 심해질 것을 우려하면서 “특히 이직의 대상이 되는 종사자 집단의 인구경제학적 특징이 코로나19의 영향에 취약한 저학력자, 소수인종, 여성 등이 포함한다는 점에서 특정 집단은 심각한 일자리 불안정성을 경험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문제 해결의 핵심은 실태조사다. 방송미디어 노동자가 놓인 ‘진짜’ 현실에 대한 현장조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실태조사가 이뤄져야 방송미디어 비정규직·프리랜서 노동자의 어려움을 가시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4년 대법원은 프리랜서 방송제작PD의 경우 “종속적 관계에서 지상파 방송사에게 근로를 제공해 근로자로 봄이 상당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2020년 ‘고 이재학 PD 사망 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에 담긴 청주방송 비정규직 실태조사 이후로 제대로 이루어진 실태조사 하나 없다. 그나마 접할 수 있는 통계는 국가통계포털(KOSIS) 방송산업 성별 종사자 수와 방송통신위원회가 발간하는 ‘방송산업실태조사 보고서’가 전부다. 
     더불어 노동 시간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방송의 실무를 담당하는 비정규직·프리랜서 노동자들은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시즌이 다가오면 주52시간을 지키지 못할뿐더러 주 7일 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A씨는 “방송에 가까워지면 또 급격하게 업무량이 엄청 늘어났다”며 “법정 근로시간을 준수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빛미디어인권노동센터가 진단한 방송미디어 산업의 실태는 서늘하기만 하다.
     “카메라 뒤에서 벌어지는 노동은 만성적인 장시간 노동과 늘 변수가 많은 촬영 환경으로 산재는 물론이고, 언제든지 잘릴 수 있는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노출되어 있고, 사회보험 등의 안전망에서도 배제되어 있습니다.”
     범람하는 콘텐츠 뒤로 가려져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방송미디어 비정규직·프리랜서 노동자를 놓쳤던 건 아닐까. 콘텐츠보다 중요한 건 사람인데 말이다. 

    *노동의 파편화: 법으로 일의 규격이 정해져 있는 정규직의 노동이 고체라면 녹아 흘러내려 경계가 흐려진 액화 노동의 형태들을 의미한다. 
    (그래픽=연합뉴스)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안태우

    연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문화비평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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