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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직이 아니어도 인생, 망하지 않습니다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김진희

    2024.03.22 13:59
    사무직이 아니어도 인생, 망하지 않습니다

     초-중-고 총 12년에 걸친 교육과정 동안, 어쩌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우리는 책상 앞에 앉았다. 소위 말하는 '인서울' 대학교나 '의치한약수'라고 불리는 학과에 진학하려면 하루 종일 앉아 공부해야 한단다. 그렇게 12년 동안 피나게 노력해 명문대학교에 진학해도 또다시 강의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일이 시작된다. 그렇게 4년을 대학에서 보내면 졸업과 동시에 취업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자격증, 인턴 활동, 어학 시험 등 소위 말하는 '스펙'을 쌓아도 합격은 하늘의 별 따기다. 치열한 서류 심사와 면접을 통과하면 하루 종일 앉아 일하는 회사원이 된다.
     
    이걸 평생 하는 건가라는 의구심과 함께,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책상 앞에만 앉아있을 생각을 하면 절망스럽기 그지없다. 최근 이 무한궤도 책상에서 벗어나려는 청년층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떠오르는 '프리터족'(자유로운 계약직 노동자)을 비롯해 사무직 대신 다른 일을 선택하는 이 흐름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사무직이 아니어도, 이런 방법으로도 살 수 있다
     유튜브 채널 '씨리얼'에는 '이렇게 사는 것도 방법이다'라는 이름으로 여러 편의 동영상이 업로드됐다. 공개된 영상 속에는 야쿠르트 프레시 매니저로 일하는 26살, 완도 한 마을에서 이장이 된 사람, 수능 공부 대신 호미를 만드는 열일곱 살 등 흔히 생각하는 화이트칼라 직종 대신 다른 일을 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시리즈 외에도 다양한 매체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뉴스에서도 대기업을 그만두고 목수, 숲해설가 등 사무직이 아닌 직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터뷰가 소개됐다.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도 취직 대신 전 세계를 여행하며 그 지역에서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와 같은 사람들도 찾아볼 수 있다. 

     안정적인 일자리의 대명사인 사무직 대신 그들은 왜 이런 삶을 택했나? 대표적인 이유는 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하는, 속칭 '워라밸'을 추구하는 청년 세대의 경향 때문이다. 2023년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MZ세대 중 36.6%가 '일과 삶의 균형'을 직장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다. 지난 18일 서울지방노동청에서는 '일•생활 균형 정책 세미나'가 개최되기도 했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를 비롯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연봉이 아무리 많아도 워라밸이 좋지 않아 퇴사한다는 글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정수기 관리원으로 일하는 추수엘 씨는 SBS와 가진 인터뷰에서 "하루에 원하는 만큼 업무 분량을 정해서 일하는 시스템이다. 만약에 다른 걸 배우고 싶거나 개인 시간을 원하는 경우 업무 일정을 조정하면 된다. 두 가지 일을 같이 할 수 있어서 좋다"라며 일과 삶 사이 균형을 자신이 조율할 수 있다는 장점을 이야기했다. 야쿠르트 프레시 매니저로 일하는 서담비 씨도 아시아경제 기사를 통해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하고, 판매를 마친 뒤엔 다른 일이나 자기 계발을 할 수 있어 정기적인 수입을 얻는 동시에 다른 것도 할 수 있다"는 직업의 장점을 꼽았다. 

     청년들이 사무직 대신 아르바이트, 블루칼라, 디지털 노마드를 택한 이유는 워라밸뿐만이 아니다. 안정적이고 평생직장이었던 사무직은 고용환경 악화와 취업난, 기술 발전으로 인해 불안한 일자리가 됐다. 이제 사무직 직장은 여전히 좁은 취업 문에도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게 변했다. 온갖 스펙을 쌓고 겨우 입사해도 사회생활로 인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스스로를 좀먹는다. 휴가는 사치다.
     대기업을 퇴사하고 대구에서 숲해설가를 택한 김동민 씨는 "내가 입사하기 직전, 팀 전체가 해고당한 적이 있다. 나도 여기서 열심히 일해도 그 사람들처럼 될 것 같았다. 회사를 쭉 다닌다면 내 미래가 될 상사들도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라며 퇴사를 결심한 이유를 설명했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한 20대는 인터뷰에서 "취업 원서만 200장을 쓰고 겨우 들어간 회사였지만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다. 퇴사 이후 무기력하게 있기는 싫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괜찮다"라며 프리터족이 된 이유를 설명했다.
     디지털 노마드를 택한 다른 30대도 본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대기업에서 엔지니어로 일했지만 원치 않는 야근과 매일 출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싫었다. 디지털 노마드가 되면서 내가 원하는 곳에서 일한다"라며 디지털 노마드의 삶에 만족한다고 했다. 또다른 디지털 노마드도 열심히 일을 해도 돈을 벌지 못하고, 회사는 내 미래를 책임져주지 않으며, 근무를 마치고 퇴근한 이후엔 자기 계발에 무관심해진다고 지적했다. 

    현재는 좋은데, 미래는?
     반면 사무직 대신 다른 일을 택하는 흐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석호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앞으로 프리터족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청년들 사이에 양질의 일자리를 얻지 못할 바에는 프리터족 또는 디지털 노마드가 더 낫다는 생각이 퍼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리나라보다 프리터족 문화가 먼저 시작된 일본에서는 정부가 프리터족의 고령화가 세수 감소와 비정규직 처우 문제와 연관이 있다고 본다. 프리터족의 증가를 막기 위해 정규직 전환을 독려하는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효성은 아직 낮다.
     일본 경제학자 히구치 요시오는 현재 프리터인 사람이 5년 후에도 프리터일 확율은 10~20대에서 50%지만, 30대 이상일 경우 70%가 된다는 통계를 발표했다. 또한 그는 "프리터족의 증가는 결혼율과 출생률을 낮추고 사회가 활력을 잃게 만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 시에나 대학교의 사회학자 베벌리 톰슨도 디지털 노마드와 프리터족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그는 "노마드 라이프스타일로 수익을 만들어내는 게 모두에게 적합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향후 몇 년간 사람들은 디지털 노마드를 추구하겠지만, 더 많은 사람이 디지털 노마드의 현실을 깨달을 것이라고 봤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프리터족 또는 디지털 노마드에 부정적인 의견을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의 젊음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는 전형적인 사람들", "나중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라며 프리터족을 문제로 규정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프리터족 또는 디지털 노마드로 살았던 사람들이 직접 겪었던 단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로렌 줄리프는 2011년 슈퍼마켓 일을 그만두고 여행 홈페이지를 개설해 디지털 노마드가 됐다. 그는 전 세계를 여행하며 즐겁게 지냈지만, 그런 상태로 5년이 지나자 공황 발작과 우울증, 식중독과 감염을 여러 차례 겪었다.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는 환경과 업무에는 부적합한 공간 때문에 생산성을 유지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포르투갈에 정착했다. 정착 이후 1년 수입이 세 배로 늘었고, 육체적•정신적으로 디지털 노마드로 살 당시보다 더 건강해졌다. 2002년 일본 정부가 발표한 통계에서도 프리터족 남성 90.9%와 여성 74.1%는 정규 직장을 희망한다는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사무직만이 인생의 성공이고 서비스직이나 기술직을 천시하던 사회 인식은 이제 옛말이 됐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는 표현처럼, 청년 세대는 각자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하며 프리터족, 디지털 노마드가 되길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장년 빈곤 가능성과 비정규직 처우 개선 문제, 사회안전망 부재 등 동반되는 문제는 국가에서 주도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고용 시장은 이들이 안정적인 수입을 창출할 수 있도록 변화해야 하고, 복지 차원에서는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게 사회보장제도가 변화해야 한다. 일본 정부가 실시한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독려하는 것도 문제 해결의 한 방식이 될 것이다. 모두가 하고 싶은 만큼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갈 날을 기다린다. 

    (사진=연합뉴스) 편의점에서 일하는 한 청년이 진열대 상품을 정리하고 있다.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김진희

    前홍대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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