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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몸이 된 콘서트장과 경기장, 피해는 모두의 몫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김진희

    2024.04.08 09:50
    한 몸이 된 콘서트장과 경기장, 피해는 모두의 몫

     음악 산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바로 콘서트다. 케이팝을 비롯한 국내 음악 산업의 규모가 날로 성장하면서 콘서트가 열리는 횟수는 더 잦아졌고, 규모는 더 커졌다. 더 많은 관객을 수용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내한 콘서트를 여는 해외 가수들도 늘면서 더 크고 전문적인 공연장이 필요해졌다.
     스포츠 또한 마찬가지다. 다양한 스포츠 중 가장 리그 규모가 큰 야구와 축구는 월드컵과 아시안컵, 해외 구단의 내한 경기 등 다양한 행사를 치르면서 더욱 많은 팬을 경기로 불러들였다. 스포츠 팬들은 선수들이 최상의 환경에서 경기에 임하길 바란다. 하지만 콘서트와 운동 경기가 이런 팬들의 바람과는 정반대인 환경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서 경기할 수 있나요?
     이번 시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입단하며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한 야구선수 이정후는 지난 3월 30일 인터뷰에서 고척돔의 경기 환경에 대해 언급했다. 메이저리그 개막전 두 경기가 고척돔에서 열린 뒤였다. 그는 고척돔 환경이 이전에 비해 좋아졌다는 점을 언급하며 "하지만 그 두 경기가 아니었다면 바뀌었을까? 이전에 몇 번이나 시설 개선에 대해 말씀드렸다. 조명도, 잔디도 계속 바꿔 달라고 요청했는데 바뀌지 않았었다"고 말했다.
     이어 열악한 잔디와 조명 상태로 인해 선수들이 피로감을 느꼈고, 외야 잔디에서 못을 계속 주운 경험도 있다고 밝혔다. 인터뷰에 더해 실제로 고척돔 잔디에서 발견된 못의 사진이 인터넷에 퍼지며 화제가 됐다. 야구팬들은 입을 모아 '선수들이 다치면 어쩌냐?', '관리 주체인 서울시가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척돔은 우리나라 유일의 돔 야구장이다. 프로야구 KBO 비시즌 기간인 11월부터 3월에는 각종 콘서트로 대관 일정이 빈틈없이 짜여있다. 무대장치를 연속적으로 설치했다가 철거하는 과정에서 잔디는 손상되고, 자재들이 제대로 수거되지 않아 그라운드에 그대로 남아있기도 한다. 

     축구경기장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축구 국가대표의 홈 경기장이기도 한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지난해 잼버리 콘서트와 폐영식 이후 심각한 잔디 손상을 겪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을 홈 경기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FC서울 소속 축구선수 기성용은 지난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은 한국 축구의 성지인데 잔디 상태가 너무 실망스럽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좋지 않은 잔디 상태로 인해 공이 자꾸 튀고, 터치도 좋지 않다며 경기를 뛰는 데 불편함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2021년 10억 원을 투자해 하이브리드 잔디를 설치한 이후 내한한 해외 축구팀들로부터 '양탄자 잔디'라며 극찬을 받았지만, 이젠 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본래 동편(E석)이 수납식 좌석으로 설계되어 콘서트 진행 시 좌석이 있던 자리 위에 무대를 설치할 수 있다. 하지만 잼버리 콘서트의 경우 그라운드 바로 위에 무대를 설치했고, 관객석을 그라운드 위에 배치했다. 콘서트 당시 프로축구 K리그도 시즌 중이었기 때문에 긴급 보수가 진행됐다. 하지만 그라운드에는 잔디가 이미 뽑히거나 패였고, 특히 무대가 설치됐던 남쪽 그라운드는 지반이 완전히 내려앉아 평탄화 작업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게다가 서울 올림픽주경기장이 지난해 8월부터 리모델링에 들어가면서, 올해 서울월드컵경기장 대관 일정은 더욱 촘촘해졌다. 

    콘서트를 열 수 있는 선택지는 여기뿐
     경기장에서 열리는 콘서트가 문제라면, 다른 공연장을 사용하면 되는 일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서울 내에서 1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은 KSPO 돔(체조경기장)과 고척돔뿐이다. 지난해 말 영종도에 최대 1만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인스파이어 아레나가 문을 열었지만, 큰 규모의 공연을 진행할 수 있는 곳은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라이브네이션 코리아의 최윤순 이사는 특히 해외 유명 가수나 대형 팬덤을 동원하는 케이팝 그룹의 경우 1~2년 전부터 대관을 신청해야 하지만 공연장이 부족해 사전 대관 신청도 잘 받지 않는다고 전했다. 일명 '테일러노믹스(Taylornomics)'라고 불리는, 공연이 열릴 때마다 엄청난 경제 효과를 만들어 내는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가 한국은 오지 않는 이유도 자신의 무대 장치와 거대한 팬덤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이 없어서다. 2025년 준공 예정인 도봉구 창동의 서울아레나가 건설 중이고, 하남시가 유치를 추진 중인 '스피어', 공정률 17%에서 공사가 멈춘 'CJ 라이브시티'가 있지만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세 공연장 모두 2만 석 규모라 3만 석 이상의 슈퍼 아레나급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렇게 경기장을 대관했을 경우, 팬들은 공연 시설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유명 케이팝 그룹이라면 한 번씩 거쳐 갔을 고척돔은 열악한 음향 상태와 좌석 배치 문제로 여러 차례 비판 받았다. 고척돔 4층에서 공연을 즐기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날 때는 공연 스태프들이 '여기서 일어나면 떨어진다'라며 말릴 정도다. 6만 석 규모를 자랑하는 올림픽주경기장도 야외인 탓에 음향이 울린다는 지적이 많다. 인스파이어 아레나는 최고급 음향 시설과 시야를 강조하지만, 인천공항에서 셔틀을 타야만 하는 단점이 있다. KSPO돔 또한 원형으로 설계되어 있어 흡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가수 측에서 비용을 들여 음향 시설을 보강할 수는 있지만 경기장이라는 특성상 전문 공연장 수준의 음향을 갖추기는 어렵다. 

    뛰어난 사람에겐 걸맞는 장소가 필요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더 많은 전문 공연장을 건설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1만 명 이상 수용이 가능한 아레나가 40곳에 달하고, 이중 전문 음악 공연장으로 분류된 곳만 11곳이다. 콘서트 문화가 발달한 미국과 유럽은 5만 명을 훌쩍 넘기는 초대형 공연장도 많다.
     음악 산업 관계자들은 규제와 대관 조건이 완화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외국은 경기장에서도 콘서트가 활발하게 열린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한다. 반면 스포츠계는 공연 이후 경기장 상태를 걱정한다. 오는 5월 가수 임영웅, 아이유의 콘서트가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다는 소식이 발표되자 축구 팬들은 한마음으로 잔디 손상을 우려했다. 활발한 경기장 대관을 위해선 공연 진행 과정에서 경기장 환경을 훼손하지 않도록 공연계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외국 경기장이 공연 대관을 흔쾌히 내주는 이유는 당일에 바로 경기를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그라운드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스포츠계와 공연계가 서로를 배려하는 방향에서 경기장을 사용하고, 장기적으로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 공연을 펼칠 수 있는 전문 공연장을 건설해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 가수들은 국내 음악계를 넘어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 선수들은 유럽과 미국 등 세계 최고라고 불리는 리그에 우뚝 서있다. 이런 '스타'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는 장소가 더 많아지길 바란다. 

    (사진=연합뉴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정규시즌 개막전을 앞둔 고척돔 정문의 모습.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김진희

    前홍대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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