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학생 칼럼니스트 양현서
2024.05.16 11:20 대한출판문화협회(이하 출협)는 지난달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더 나은 세상, 책 읽는 국회의원이 만듭니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외벽에 내걸었다. 출협이 도서 및 출판에 대한 정치인들의 관심을 호소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인해 OTT 등 디지털 매체 이용 비중 증가로 출판 시장이 한 차례 어려움을 겪었다. 이때도 출협 건물에서 20대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책 읽는 대통령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하지만 ‘책 생태계’의 현실은 현수막에 담긴 바람과는 정반대로 흘러가는 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올해 서점, 도서관, 출판 관련 예산을 삭감하고 이에 따라 관련 정책 역시 흐지부지됐기 때문이다. 예산 삭감에 대한 전조가 보였던 것은 작년부터였다. 정부는 출판·독서 관련 사업 및 정책에 문제를 제기했고, 결국 지난 3월 해당 분야의 지원을 대폭 줄였다. 결과적으로 시민들의 독서율 증진을 위한 핵심 사업이었던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사업’에서 정부 지원이 중단됐다. 이뿐만 아니라 작은 도서관이나 스타트업 출판사의 경우 예산이 대폭 줄어 운영 상황이 암담한 상태다. 국민의 독서문화는 물론이고, 책을 만들어내고 공유하도록 기능하던 각 지역의 문화 허브가 무너질 위기다.
일본의 유명 작가 우치다 다쓰루는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정치가들이 문화 예산을 집행하는 방식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시장원리에 따라 도서관이 민영화되는 것을 예방하고자 했다. 이렇게 되면 도서관은 유의미한 장서는 폐기하고 베스트셀러로만 가득 차 더 이상 지성의 공간이라 부를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게다가 이런 정치인의 논리로는 지역 도서관의 독서 진흥 프로그램이나 도서 축제 예산 지원이 이뤄질 리 만무하다. 우치다는 이런 지성의 생산성 저하를 우려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이미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현상이다. 문체부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성인의 종합 독서율 추이는 72.2%에서 43%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감소해 왔다. 단 한 번도 반등한 적이 없다. 그나마 독서하는 약 60%가 향유할 책 역시 다양하지 않다. 도서 유통사 예스24와 교보문고가 지난달 집계한 베스트셀러 수치에 따르면 베스트셀러의 10위권 중 외국 작가의 작품은 각각 6권, 8권이었다. 국내 출판업계의 위기 상황을 적용해 본다면 베스트셀러에 외국 작가의 작품이 월등히 많은 것은 충분히 문제가 된다. 다양한 지식과 생각의 교류가 이뤄지면서도 ‘지적 식민지’가 되지 않으려면 국내 출판업계가 활성화돼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6일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출판계 간담회를 열어 “내년 순수예술 예산 확대를 목표로 잡고 있다”며 삭감했던 예산을 복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예산 확대나 도서 및 출판 관련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언급된 바 없었다. 게다가 도서관, 출판사의 권위는 단순히 삭감한 예산을 다시 채워 넣는다고 회복되지 않는다. 문제는 해당 분야의 예산을 시장 원리의 입맛에 맞게 올렸다 줄였다 해도 되는 분야로 낙인찍어버린 데에 있다. 도서, 출판, 도서관이 자본과 시장 논리만이 작동하는 곳으로 여겨지는 건 서글픈 일이다. 진정한 독자가 해마다 줄어드는 와중에 원하는 책과 조우할 조금의 기회마저 박탈해버리는 국가가 과연 지적 강국이라 할 수 있을까.
국내 독서 및 출판문화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및 정책 수립이 필수적이다. 예컨대 중소 출판사나 신인 독립 작가들이 참여한 다양한 도서 축제를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내 최대 규모의 도서전인 ‘서울국제도서전’은 정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지 못해 문체부와 갈등을 겪은 바 있다. 그러나 해당 행사는 독자와 출판 관계자 및 작가를 오프라인으로 연결해 독서문화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독립서점, 도서 축제, 출판 관련 시상 제정처럼 출판업계 인력 육성을 위한 행사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마땅하다. 또한 국민 독서문화증진 지원사업의 지원 여부와 해당 사업의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검토 역시 이뤄져야 한다. 현재 국내 독서율이 지속해서 감소하는 상황인 만큼 독서 진흥과 관련된 기본계획 마련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우치다 다쓰루는 집필과 출판 일이 ‘전도’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설사 원하는 이가 없더라도 한 작품에 경의를 담아 길거리에서 ‘한 번만 들어달라’고 외치는 일이라는 것이다. 전도 활동만으로 힘에 부치는데 예산 삭감을 무기로 핍박까지 하는 건 전도자의 일말의 동기마저 저하하는 일이다. 건강한 출판·독서 문화를 위해서는 꾸준한 교육 및 지원을 통해 책을 원하는 독자를 한 명이라도 더 만들어야 한다. 이런 독자가 수만 명이 생겨나야 출판의 생산과 소비에 비로소 선순환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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