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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스포츠의 여성 바라보기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이현솔

    2024.04.22 10:41
    한국 스포츠의 여성 바라보기

     스포츠가 남성만의 전유물이라는 말은 옛날 말이다. 이제는 국내 스포츠 경기 관람객 중 여성이 남성보다 많은 사회다. 재작년 한국프로스포츠협회의 추산에 따르면 야구, 농구, 축구, 배구 등 프로 스포츠 경기 팬의 55%가 여성이다. 축구에서는 여성 주심이 등장했다. 과거 축구선수로 활동했던 김유정 심판은 2018년 국내 남자 심판 체력 테스트를 통과했다. 이젠 K4 리그 등 국내 주요 축구 대회에서 여자 심판을 보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야구장에서 응원을 더욱 뜨겁게 만드는 치어리더들은 오랜 시간 관중과 함께했다. 1980년대 국내 프로야구의 출범과 함께 치어리더는 야구 선수들의 등장가와 응원가에 함께 춤을 춘다. 이렇듯 스포츠 분야에서 여성은 오랜 시간 함께 했고 이제는 여자 역시 스포츠업계의 주 구성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 스포츠업계와 팬덤이 여성을 다루는 방법은 아직도 구시대적 사고에 머물러 있다.

    '뜬금' 여성 관중 얼굴 잡는 KBO 중계, 얼굴 평가하는 야구 팬덤
     여러 스포츠 분야에서 여성 팬이 증가했지만, 이중 프로야구 분야의 여성 관중은 더욱 괄목할 만하다. 한국스포츠협회의 '2023 프로스포츠 관람객 성향조사'에 따르면 프로야구 전체 구단의 고관여 팬 중 남성이 36.2%, 여성이 63.8%다. 또한 최근 5년 이내 직관 경험이 있는 야구 팬 중 직관 경험이 있는 남성이 89.1%에 머무르지만, 여성은 94.6%로 이를 상회했다. 하지만 여성 야구팬은 KBO 콘텐츠의 주변부에 머무른다. 프로야구를 중계하는 방송사들은 경기 도중 갑자기 여성 관중의 얼굴을 카메라로 잡는다. 온라인 스포츠 커뮤니티에서는 여성 팬들의 얼굴이나 몸매를 평가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커뮤니티의 이용자들은 '예쁜' 여성 팬들의 사진을 모음집으로 만들어 게시글을 올리기도 하며, 특정 지역 구단의 여성 팬이 못생겼다거나 몸매가 좋지 않다는 외모를 평가하는 글을 서슴지 않고 작성한다. KBO 콘텐츠를 독점 중계하는 티빙의 시청자 실시간 채팅 기능에도 '눈나(여성이 섹시한 모습을 보였을 때 날리는 성적 칭찬)', '(구단 이름)의 미래'라는 댓글이 몇 초 단위로 달린다. 여성 팬이 스케치북을 들어 선수를 응원하는 문화는 스포츠 커뮤니티 내에서는 이미 '*케치북(욕과 스케치북의 합성어)'이라는 멸칭으로 흔히 쓰인 지 오래다. 여성 팬은 프로야구 업계가 활성화되는 주축이지만 여전히 함부로 평가당하고 차별받는다.

    '경기 말고 치어리더 보러 왔는데요?', 치어리더 사생팬들의 등장
     프로야구 팬덤 내에서 떠오르는 또 다른 여성혐오 문제로는 치어리더 사생팬들이 있다. 한국스포츠학회의 '프로야구 치어리딩 역사와 성 상품화 재해석'이라는 연구에 따르면 1992년부터 현재까지 경기는 관람하지 않고 치어리더만 보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해당 연구에서는 응원단장 앞에서는 경기를 보지 않고 치마 속만 보고 있는 팬에 치를 떤다는 치어리더의 불만이 담겨 있으며 2016년에는 잠실구장에서 SK 와이번스 치어리더 성추행 사건이 존재했음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현재 치어리더를 성적 대상화해 소비하는 풍습은 사라졌을까? 오히려 심해졌다. 여전히 경기는 관람하지 않고 치어리더를 따라다니며 카메라로 그들의 모습을 촬영하는 '치어 팬'들의 등장은 야구 팬덤 사이에서 갑론을박을 야기했다.


    치어리더를 따라다니고 몸을 평가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도 등장했다. 해당 커뮤니티에서는 특정 치어리더의 이름을 언급하며 '몸매가 죽여준다'라며 품평하거나 어느 구단의 치어리더가 유독 성적 매력이 있다는 글들을 현재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카메라를 들고 경기 후 퇴근하는 치어리더를 쫓아다니며 말을 걸기도 한다. KIA 타이거즈의 팬 유지서(26) 씨는 "경기 후 선수들과 응원단의 퇴근 모습을 기다리다가 치어리더를 가로막는 일부 팬들을 발견했다"며 "치어리더들은 이들 때문에 어쩔 줄 모르는 모습 같았다"고 목격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박세진 선수의 저지를 무시하는 두 축구 선수(출처: 쿠팡플레이)
    ▲박 심판의 제지를 무시하는 두 축구 선수의 모습(출처: 쿠팡플레이)

    전문성 있는 여성 스포츠인도 '노룩'
     그렇다면 여성 스포츠 팬만 멸시를 받는가? 그것도 아니다. 전문성 있는 여성 스포츠인도 남성으로부터 배제당한다. 지난 14일 광양전용구장에서 열린 전남과 안산 그리너스의 K리그2 7라운드에서는 여성 주심이 남성 축구 선수로부터 거칠게 내팽겨졌다. 파울을 저지른 전남 드래곤즈 김용환 선수는 분에 못 이겨 상대 선수에게 신경질적으로 다가갔고 박세진 주심(이하 박 심판)은 두 선수의 충돌을 막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선수는 자신을 말리는 박 심판의 팔을 강하게 뿌리쳤고 그 여파로 박 심판은 선수 사이에서 휘청였다. 심판이 말리는데도 되려 심판의 제지를 무시하며 선수들은 서로 신경전을 이어갔다. 이에 대중은 '심판이 여성이라서 무시한 거 아니냐', '남성 심판이어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냐'는 비판을 가했다. 더구나 논란이 불거지는 와중에도 선수와 구단은 공식적인 사과마저 없는 실정이다. 뒤늦게 프로축구연맹이 김용환 선수의 징계 여부를 논의했으나 해당 사태는 여성이 스포츠계에서 주변부로 몰리는 안타까운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더 이상 국내 스포츠계에서 여성이 주변화되지 않으려면
     국내 프로 스포츠는 치어리더를 비롯한 응원단과 관객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으며 주된 여성 소비자를 존중하지 않는 것은 스포츠의 건전한 관람과 흥행을 저해할 수 있다.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스포츠계와 팬덤 내 자정 작용이 요구된다. 특히 성 인지 감수성을 높여야만 한다. 여성 관중과 치어리더를 카메라에 담고 품평하는 것은 여성을 성 상품화하고 있는 사고에서 기인할 것이다. 이에 최종적으로 스포츠계가 주도해 팬덤 문화를 재고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봐야 하지 않을까. 스포츠 중계 플랫폼은 경기와 상관없는 여성 관중의 모습을 담아 품평의 장을 열어주지 말고, 열정적으로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을 담아주길 바란다. 그리고 여성 역시 경기를 순수히 즐기고 싶은 열성 소비자임을 인지해야 한다. 더불어 여성 스포츠인의 저평가를 막기 위해선 성별 간 감정적 차원의 대응이 아닌 여러 인권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모두가 동등한 예체능인이자 스포츠 정신을 공유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스포츠 업계 내 인권감수성 교육이 시급하다.

     당장 공이 허공을 가르는 곳에 가보면 여성이 붐빈다. 그들은 남성 못지 않게 스포츠에 대한 지식과 사랑으로 함성을 울부짖고 응원하거나 전문인으로서 활동한다. 관중석에서 소리치는 것도, 경기장을 누비는 것도 바로 여성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스포츠를 사랑하는 여성들이 마음 편하게 그라운드를 누빌 수 있는 사회가 도래하길 바란다.

    (사진=연합뉴스) 야구 구장이 관객들로 가득찬 모습이다.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이현솔

    前 성신학보사 편집장(~2024.08.31.) / 한국방송기자클럽(BJC)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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