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MEK 책임경영, 혁신성장, 중견련

    로고

    인과관계 뒤집힌 채 사라진 학생인권조례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박지우

    2024.05.07 07:51
    인과관계 뒤집힌 채 사라진 학생인권조례

     반에는 늘 말썽을 피우던 학생이 학급 회장을 괴롭히는 일이 벌어졌다. 회장의 어머니는 교사에게 전화해 "그 개XX, 내가 혼내주러 갈 테니 선생님이 좀 잡아놓고 있으라"고 말했다. 회장의 어머니 역시 교사였다. 교사가 "어머니도 교사이신데 이렇게 처리하면 곤란하지 않느냐"고 말했더니 그는 "내가 지금 교사로서 말하는 줄 아느냐. 엄마로서 말하는 거다. 선생님이 아이를 무르게 대하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며 언성을 높였다.‘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따비) 초등학교 권 교사의 증언
     
    인권이 '괴롭힐 권리'?
     당연한 학생의 권리 보장이냐, 추락한 교권의 회복이냐. 지난 12년 동안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논란이 적어도 서울에선 종지부를 찍었다. 서울시의회가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결의한 것이다. 계기는 '서이초 교사 자살 사건'으로 촉발된 교권 침해 논란 때문이다. 주로 보수 정치권과 일부 교사, 학부모 단체에선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권이 추락했다는 주장을 펼쳐왔고 그 뜻이 관철된 셈이다.
     인권조례 때문에 생활지도에 품이 더 많이 들게 된 것은 사실이다. 휴대폰만 예를 들어 보자. 예전엔 학교에 들고 오는 것 자체가 금지였다. 그래서 가방을 뒤져 핸드폰이 나오기만 하면 벌을 주었다. 그러나 인권조례는 "일괄 금지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만 걷어간다든지 하는 식으로 규제도 느슨해졌다. 자연히 빠져나갈 틈도 많아지고 교사들의 수고도 늘었다. 소지품 검사도, 체벌도 금지되다 보니 일탈을 잡아내고 교정하는 수단을 개발하는 데도 어려움이 따랐으리라.
     그런데 의아하다. 이런 인권조례 상의 '번거로움'이 서이초 교사의 죽음, 다른 교사들의 고통과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가. 교사는 학부모가 신분적 약점을 이용해 지속적이고 악의적으로 괴롭힌 탓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 다른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도 마찬가지다. 학생이 교사에게 욕하고 때리고 성추행하는 명백한 범죄 행위와 교권 추락 실태도 "인권조례 때문이다"라고 주장하려면 그에 맞는 명백한 인과관계가 규명되어야 한다.
     
    30년 넘은 문제, 12년 된 원인?
     맨 앞에 인용한 이야기를 보면서 혹시 기시감을 느끼셨다면 착각이다. 인용한 책은 2013년에 출판됐다. 그러니 위 사건들은 그보다 전에 일어난 일이란 뜻이다. 책에서 화자인 교사들은 이러한 문제들은 고착화되었다고 주장하며, 그 속에서 절망했던 경험을 토로한다. 교권 추락을 포함한 '학교 공동체의 붕괴'는 그만큼 오래되고 뿌리 깊은 문제다.
     시간 순서가 거꾸로 된 인과관계는 없다. 2004, 학생 체벌로 경찰조사를 받던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있었다. 2006년엔 청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급식 문제로 항의하는 학부모들이 교사를 무릎 꿇린 사건이 화제가 됐고 같은 해 인천에선 한 중학생이 교사를 폭행했다. 한국교총의 2009년 조사에 따르면 당시에도 교총이 집계한 교권 침해 사례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형은 '학생·학부모의 부당행위'였다. '교실 붕괴'라는 단어는 1990년대부터 쓰였다고 한다. 분명한 건, 교권 침해 문제가 학생인권조례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2010(서울은 2012) 이후에 새롭게 생겨난 게 아니란 거다.
     원인을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교육에 신자유주의 이념을 접목시켜 교사-학생의 관계를 공급자와 수요자로 바꿔버린 1990년대 교육 정책 기조 변화 때문이라거나, 공교육이 하나부터 열까지 입시 위주로만 돌아가는 탓에 교사들이 인성 교육이나 생활지도를 망설이고, 학부모와 학생도 별로 원하지 않게 된 사회 풍토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의견은 분분하지만 수십 년 동안 누적되어 온 한국 사회, 교육 전체의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고작 12년 된 인권 조례가 오늘날 교권 위기의 원인인 것처럼 호도하는 건 말도 안 된다.
     
    말로만 '당연한 권리'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육 현장이 '황폐화'됐다고까지 주장하는 서울시의원도 "조례 없이도 학생들은 천부적인 인권을 갖는다"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타인의 권리도 보장해야 한다는 책임이 따르고, 자신의 권리행사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한다면 제한될 수 있다는 원칙"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도 백번 지당하다.
     그런데 천부적 인권의 존재는 동의하면서도 인권을 적어놓은 법 때문에 학교가 '황폐화'됐다고 주장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조례에 '제멋대로 행동할 권리' 따윈 없다. 수업시간이 끝나면 쉴 권리(휴식권), 위험한 물건이 아니면 동의 없이 뺏기지 않을 권리(사생활의 자유),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조례 이전에 헌법도 보장하는 권리다. 헌법상 권리 때문에 교육이 무너진다고 말할 셈인가.
     학생들에게 권리의 균형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도 진의가 의심된다. 인권조례 폐지는 '교육'이라 할 수 없다. 몇몇 악용 사례가 있던 것도 사실이지만 가르쳐서 바로잡기 보단 이걸 빌미로 권리 자체 문제삼고 더 나아가 아예 없애버렸다. 명백히 비교육적이다. 정말로 무언가를 '가르칠' 작정이었다면 인권의 존재와 권리의 균형을 배울 수 있는 인권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하면 될 일이었다.

    '인권 조례'는 사라져도 인권은 사라지지 않는다
     12년 된 제도였다. 만들어질 때 초등학교에 입학한 05년생 아이가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반면에 학교 공동체 붕괴, 교권 추락 같은 문제는 적어도 수십 년동안 이어져 온 고질적인 한국 교육의 병폐다. 이제 겨우 한 세대의 아이들을 길러냈을 뿐인 학생인권조례가 그보다 훨씬 오래된 문제들의 책임을 뒤집어 쓰고 사라져 버렸다. 면밀한 사실확인도 없이 단기적 이슈와 여론에 휘둘리는 한국 교육의 취약성을 보여줬다. 덤으로 집권 정파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뒤집히는 교육 정책의 불안정성도 재확인됐다.
     기왕에 대체 조례도 입법된 김에 더 생산적인 논의가 진척되어야 한다. 억압이 부족해서, 권리가 너무 많아서 교육이 안 된다는 낡은 사고로는 곤란하다. 내 권리가 무엇인지 알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칠 인권 교육이 절실하다. 그 토대 위에 교사의 지도권과 노동자로서의 권리, 학부모의 참여권, 학교의 자치권이 어우러지는 학교를 만들 수 있다. 인권조례는 사라졌지만 더 많은 인권을 이야기하는 전화위복이 되길 바란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6일 중구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제323회 서울특별시의회 임시회 3차 본회의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통과되고 있다.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박지우

    前 국민대 미데아저널 기자

    소통 커뮤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