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MEK 책임경영, 혁신성장, 중견련

    로고

    디지털 기기 과의존 부추길 디지털 교과서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양진서

    2024.09.11 13:32
    디지털 기기 과의존 부추길 디지털 교과서

    디지털 교과서를 향한 거센 반발

     지난 6월 교육부는 디지털 혁신을 위해 내년부터 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디지털 교과서는 초등학교 3, 4학년과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수학, 영어, 정보, 국어(특수교육) 교과에 도입될 예정이다. 대상 학년 및 교과는 2028년까지 점차 확대된다. 교육부는 “초저출산 시대에 에듀 테크를 활용해 교육 격차를 완화하고 모두를 인재로 키우는 맞춤 교육을 실현하겠다”며 추진 배경을 밝혔다.

     

     그러나 디지털 교과서의 갑작스러운 등장을 반기는 이는 많지 않다. 지난 5월 28일 국회전자청원시스템에 제출된 ‘교육부의 2025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 유보에 대한 청원’은 30일 이내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교육계 종사자들의 반응 역시 부정적이다.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국 시도교육청 초·중·고교 교원 1만 9667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3∼31일 실시한 온라인 설문에 의하면 해당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은 무려 73.6%에 달했다.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반대하는 이들은 대부분 ‘디지털 기기에 대한 과의존’과 ‘문해력 저하’를 이유로 꼽았다. 신경 과학자인 사카이 구니요시 교수는 디지털 교과서를 반대하며, 교육의 디지털화가 아이들의 능동적 사고력을 저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디지털 기기가 떠먹여 주는 ‘검색’에 익숙해지면 자신만의 논리를 짤 수 없게 된다고도 경고했다.

     

     실제로 일찍이 디지털 교육을 도입했던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문해력 저하 등의 이유로 다시 종이책을 사용하고 있다. 스웨덴 교사들은 디지털 교육을 실시하며 학생들의 독해력이 저하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외에도 프랑스, 핀란드,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에서 디지털 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작년 한국 청소년(만 10~19세)의 40.1%가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이었다. 디지털 교과서는 이들이 전자기기에 노출되는 시간을 더욱 늘려 결국 약이 아닌 독으로 작용할 것이다.

     

    정부의 무리한 정책 추진

     이렇듯 디지털 교과서를 향한 우려의 목소리는 점차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내년부터 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해서 맞춤형 학습, 자기주도적 학습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히며 교육 개혁을 향한 의지를 강조했다. 정부가 말하는 디지털 혁신은 과연 누구를 위한 혁신인가. 학부모와 학생, 학교 교육 현장의 의견을 도외시한 채 그저 교육 개혁만을 부르짖는 정부의 모습은 누가 봐도 바람직하지 않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정작 교과서를 사용하게 될 학생과 교사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 또한 의문을 자아낸다.

     

     해당 정책의 문제점은 지나치게 빠른 진행 속도에 있다. 무리한 추진으로 정부는 국민들의 반응을 섬세히 살피지 못했으며 정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문제점을 마주하고 있다. 이를테면 디지털 교과서와 관련한 학습 데이터 관리 및 개인정보 보호 등을 위한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을 예로 들 수 있다. 디지털 교과서 발행사들이 성취 현황, 학습 패턴 등 학생의 민감한 데이터 관리를 소홀히 할 경우 이는 곧 대형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문제 발생 시 책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개인정보의 악용 우려가 제기된다.

     

     이 외에도 예산 및 인력 부족으로 특수교육 교과 AI 디지털 교과서의 제작이 지연되고 있는 문제점이 있다. 영어, 수학, 정보 등의 디지털 교과서는 과목별 프로토타입(시제품)이 공개돼 본격적인 검정 심사에 돌입했다. 반면 특수교육에 사용되는 국어 교과서의 경우 아직 별도의 프로토타입 공개 계획조차 없어 학생이나 교사들은 대략적인 형태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처럼 정부는 정책과 관련한 문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그저 ‘세계 최초 디지털 교과서 적용’이라는 타이틀 쟁취에만 신경 쓰고 있는 모양새다.

     

    장기적인 대안의 필요성
     디지털 교과서의 ‘일괄 도입’을 향한 정부의 과도한 집착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해당 정책을 향한 반발이 거세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정부는 디지털 교과서의 일률적인 도입만을 주장한다.

     

     이와 달리 국회 입법조사처는 ‘AI 디지털 교과서의 법적 성격과 입법 과제’ 보고서에서 “교과용 도서가 아닌 교육 자료로서 도입하고 사회적 논의를 거친 뒤 현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중장기적인 대안이 강구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모든 학교에 의무적으로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개인정보 유출, 청소년의 전자기기 과의존 등 디지털 사회의 위험성이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서 디지털 교과서를 일괄 도입하는 모순된 행동을 보인다.

     

     디지털 교과서는 교육부가 발표한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맞춰 모두를 위한 맞춤형 교육’ 정책 중 하나다. 물론 지금이 디지털 시대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디지털 기기와 공존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전자기기 중독으로 인한 문해력 저하 및 독서 문화 감소 등이 보여주듯, 디지털 시대에 태어난 일부 청소년들은 전자기기의 노예로 전락했다. 이런 상황에서의 섣부른 디지털 교과서 도입은 교육의 혁신이 아닌 퇴보에 기여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일차원적인 시대 해석을 멈추고, 정책이 가져올 사회의 변화를 더욱 세밀히 파악해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대구엑스코에서 열린 '2024 교실혁명 콘퍼런스'에서 초등 영어, 중등 수학 등 3개 과목의 디지털교과서 시제품 활용 시연이 이뤄졌다. 이와 달리 특수교육 교과 AI 디지털 교과서는 프로토타입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다.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양진서

    前 서울여대학보 대학부 차장

    소통 커뮤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