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학생 칼럼니스트 이현솔
2024.10.30 16:17지난 28일, 한국 프로야구팀 KIA 타이거즈가 통산 12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한국 프로야구 구단 중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한 KIA 타이거즈는 이번 시즌에도 7년 만에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 모두를 석권하며 값진 영광을 거머쥐었다. 그야말로 압도했다.
하지만 이번 우승에 이르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2024년, 한국 프로야구가 누적 관중 천만 명을 돌파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폭넓은 팬층을 형성했지만, 그만큼 KIA 타이거즈를 향한 호남 혐오와 편견 또한 기승을 부린 것이다.
기존의 인터넷상에서 호남 혐오를 상징하던 ‘홍어’, ‘7시 방향 지역’, ‘전라디언’ 등의 표현이 다른 양상으로 변화돼 이제는 광주에 연고를 둔 KIA 타이거즈를 향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는 이를 두고 X(구 트위터)를 비롯한 SNS에서 구단 팬들 간의 뜨거운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 기존의 KIA 타이거즈를 향하던 호남 혐오가 다시 수면 위로 오른 것은 지난 25일 KIA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 3차전 경기에서 모 플래카드의 문구 때문이다.
▲NC 다이노스 팬이 같은 영남권 구단인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하는 모습
이날 창원에 연고를 둔 NC 다이노스의 한 팬이 ‘우리가 남이가’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대구 연고의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되며 논란이 일었다. 이에 KIA 타이거즈 팬들은 이를 ‘호남을 향한 영남의 배타적 발언’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반발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표현이 영남 지역의 지역주의에서 비롯된 역사적 맥락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표현은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부산시 남구 대연동의 ‘초원복국’ 식당에서 열린 회동에서 유명해졌다. 당시 김기춘 법무부 장관을 포함한 부산 지역 주요 기관장들이 모여 “부산, 경남, 경북만 단결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말과 함께 “고향 발전을 위해 지역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며 영남 지역의 결속을 도모했다. 여기에서 나온 “우리가 남이가”라는 표현은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구호로 자리 잡았고, 이는 대구·부산·울산·경남 대(對) 호남이라는 대립 구도를 더욱 굳히는 역할을 했다. 당시 민주자유당은 영남권 유권자를 결집시키며 호남 지역을 정치적으로 배제했고, 결국 김영삼 대통령 당선의 기반을 마련했다. KIA 타이거즈 팬들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고려할 때, 이 표현이 담긴 플래카드를 가볍게 여길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정치권에서 호남을 배제하며 타자화했던 발언을 야구 팬 문화에서는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영남권 구단의 팬들은 ‘우리가 남이가’가 단순히 영남 지역의 단결을 표현한 방언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일부는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해석하기는 어려우며, 오래전부터 경상도에서 자주 쓰이던 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같은 지역 연고 구단이라도 서로를 라이벌로 삼는 문화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유독 호남 구단을 상대할 때 영남권이 결속하는 현상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 ‘우리가 남이가’라는 표현은 현재까지도 스포츠와 지역주의 사이의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하지만 프로야구 문화 내 호남 혐오의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7일, 강남에 위치한 한 대구 문화 컨셉트의 식당이 KIA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은 손님의 입장을 거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X의 실시간 트렌드에 오르는 등 논란이 일었다. 해당 식당은 삼성 라이온즈 사진을 간판과 함께 걸어둬 야구팬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곳이었다. 논란이 확산되자, 업주는 오해가 있었다며 당시의 입장 거부는 장난에 불과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전라도에 거주 중임을 증명하는 신분증을 제시할 경우 서비스 음식을 제공한다”며 폭로 글에 직접 답글을 달기도 했다. 이에 대해 많은 네티즌은 ‘전라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초면부터 무례한 대우를 받아야 하느냐’는 반응을 보였고, ‘전라도 거주를 입증해야만 서비스를 받는다는 것이 오히려 차별적이다’라며 비판이 이어졌다.
KIA 타이거즈 팬들은 왜 ‘예민’할까
그렇다면 KIA 타이거즈 팬들은 왜 지역주의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을까. 단순히 ‘밈(meme)’이나 장난에 불과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는 단어들을 혐오의 언어로 규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렸는가. 그것은 바로 KIA 타이거즈의 연고지가 현대사의 아픔을 갖고 있는 광주라는 사실이다. 구단 창립 과정을 전후해 받아온 여러 차별과 멸시를 받은 기억들이 있기 때문이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유혈 진압 이후 대중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야구와 축구의 프로화를 지휘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프로스포츠의 도입이 제안된 시점으로부터 프로야구 출범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이 작성되기까지 걸린 시간이 불과 3개월이었고, 이후 약 6개월 만에 여섯 개의 프로야구팀의 개막 경기가 시작됐다. 광주에서 벌어진 유혈사태와 정권의 태생적 비민주성을 가리기 위한 이른바 ‘우민화 정책’ 추진은 일사천리였다.
역설적으로 프로야구의 출범과 함께 KIA 타이거즈의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는 호남 지역이 겪어온 아픔과 설움을 대변하는 상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쿠데타로 정치권력을 장악한 영남 출신의 정치 군인들은 민주적 정당성이 부족했기에 자신들의 연고지에서 원초적 지지를 끌어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영남권의 결속을 강화하고자 호남을 스포츠에서조차 ‘상대’로 타자화했다. 정치와 더불어 사회·문화 영역에서도 호남을 배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호남 사람들을 무고한 시민이 아닌, ‘북한의 사주를 받은 빨갱이’로 몰아갔고, 이로 인해 호남은 타 지역으로부터 외면받는 처지가 되었다.
당시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도 낙후되고 소외된 지역이었던 호남은 구단 창단과 선수 영입 과정에서도 어려움을 겪었고, 후원을 자처할 기업조차 찾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러한 차별적 시선 속에서도 광주와 호남 시민들은 해태 타이거즈 경기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표현하며 억울함을 풀었다. 해태 타이거즈는 단순한 구단을 넘어, 호남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그들의 피해와 설움을 세상에 알리는 자존심의 상징이 되었다. 타 구단 팬들이 해태 타이거즈의 뛰어난 경기력에 경계하는 순간만큼은 국가 차원의 차별을 받던 호남이 야구장에서만큼은 강자로 설 수 있었다. 프로야구는 호남의 저항 의식을 대변하는 무대가 되었고, 사회로부터 배제된 호남의 저력을 보여주는 수단이 되었다. 그리하여 호남에게 야구는 역사적 상징이자 지역 차별에 맞설 수 있는 힘을 상징하게 되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이 40여 년이나 지난 현재, 해태 타이거즈의 설움을 이어받은 KIA 타이거즈는 호남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 독재정권이 남긴 주홍 글씨는 여전하며, 호남에 대한 차별은 현재진행형이다. 80년대와 현재의 호남 차별은 양상이 다르다. 그러나 여전히 호남이 민주화 운동의 시작지라는 이유로 들어야 했던 여러 혐오 표현은 KIA 타이거즈 팬들을 향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타 구단 팬들이 KIA 타이거즈 팬들을 향해 혐오 표현을 일삼고 있다.
KIA 타이거즈의 캐치프레이즈는 ‘압도하라’지만, 경기에서의 압도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감내해야 하는 지역 차별은 결코 압도할 수 없었다. 그들이 짊어진 편견은 한국 현대사의 아픈 상흔을 상징한다. 지워지지 않는 호남 혐오와 그로 인한 차별의 역사를 고려할 때, 무심코 내뱉는 지역주의적 발언은 KIA 타이거즈 팬들에게 단순한 응원감을 넘어서 차별과 혐오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굳이 ‘홍어’나 ‘7시 방향 지역’ 같은 원색적인 표현이 아니더라도, 호남을 은연중에 배제하는 말 한마디는 그들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는 일이 된다. 따라서 KIA 타이거즈 팬들은 프로야구 창단부터 이어져 온 지역주의적 표현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혐오를 ‘압도’하는 건강한 스포츠 문화 형성을 위해
‘우리가 남이가?’라는 표현은 다원화된 사회에서 구시대적일 뿐만 아니라, 강제로 남이 ‘되어 버린’ 이들을 더욱 타자화한다. 스포츠는 다양한 사람들이 팀을 응원하며 서로 연결되고 소통하는 공동체적 장이다. 하지만 지역차별적 발언은 이러한 스포츠의 순 목적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아픈 흑역사를 그저 조롱거리로만 소비하게끔 만든다. 더군다나 현대 한국의 민주주의를 수립한 광주와 호남 지역에 대한 혐오 표현이 스포츠 팬 문화에 일상화되면, 이는 스포츠의 본질인 공정성과 존중을 훼손하게 한다.
▲'우리가 남이가'는 여전히 영남권 스포츠 문화의 지역주의를 나타내고 있으며 미디어 시장에서 콘텐츠로서 아무렇지도 않게 유통되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 프로스포츠가 도입된 배경에는 권위주의의 역사적 맥락이 존재했지만, 이제 우리는 이를 넘어 스포츠 본연의 가치인 상호 존중과 화합을 지향해야 한다. 아픈 역사 속 상처와 지역주의를 단순한 밈으로 소비하지 않는 스포츠 팬들의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미디어 시장 내에서 지역주의적 표현에 대한 자정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현재 미디어 콘텐츠는 지역주의적 표현을 영남권의 응원 문화 고취를 위한 도구처럼 오용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대중 역시 특정 지역을 타자화하는 데 익숙해지고 있다. 스포츠 콘텐츠에서 특정 지역을 배제하고 적대시하는 표현을 일삼는 한, 이러한 지역주의는 더욱 고착될 수밖에 없다.
호남은 물론 어느 지역도 더 이상 ‘남’으로 여기거나 혐오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공존에 대한 존중의 문화가 혐오 표현을 ‘압도’하는 날이 오면, 한국 사회는 한층 성숙한 민주주의와 건강한 스포츠 문화를 향해 한 발짝 더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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