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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바이벌 프로그램 속 '계급' 전쟁의 실체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신지우

    2024.10.18 16:56
    서바이벌 프로그램 속 '계급' 전쟁의 실체

     "저는 방송이 ** 지겹습니다. 이 게임이 그렇게 재밌습니까? 결국에는 사람들의 악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결국에는 깨끗하게 마무리지으실 거죠?"

     

     최근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 <여왕벌 게임>에서 탈락 직후 '여왕벌' 모니카가 한 발언이다. 이날 참가자들은 제한된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진흙을 옮기는 게임을 했다. 1위를 차지한 상대 팀에게 탈락 후보로 지목된 모니카의 팀은 우두머리 '수컷'을 제외한 전원이 탈락했다. 모니카는 마지막으로 발언할 기회가 주어지자, 진흙투성이가 된 몸으로 제작진에게 깊은 분노를 표출했다. 그의 발언은 경쟁의 비인간성과 참가자들의 심리적 고통을 반영하고 있다. 서바이벌 예능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 인간의 본능과 악한 모습을 강조하며, 승리에 대한 갈망이 초래하는 비극적인 결과를 명확히 보여줬다. 그의 분노는 경쟁 사회에서 개인이 느끼는 무력함과 불만을 대변하며, 해당 프로그램이 전하는 메시지의 본질에 관해 의문을 제기한다.

     

    흑백요리사 , 계층 갈등과 경쟁 사회의 적나라한 반영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K-엔터테인먼트의 대표적인 장르로 자리 잡았고, 그 인기는 세계적으로 폭발적이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오징어게임'과 '피지컬100', 그리고 엠넷의 '스트릿 우먼 파이터' 등이 연달아 흥행에 성공하면서 콘텐츠 업계에선 발빠르게 다양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지난달 17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은 넷플릭스 비영어권 TV 시리즈 부문에서 3주 연속 1위를 차지할 만큼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흑백요리사'는 80명의 '흑수저' 셰프와 20명의 '백수저' 셰프가 경쟁하는 요리 경연 프로그램이다. 무명의 재야 셰프인 ‘흑수저’와 화려한 경력의 유명 셰프인 ‘백수저’의 대결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첫 화에서 백수저가 흑수저들을 내려다보는 구도의 연출은 계층의 간극을 의미한다. 또 백수저는 자신의 이름을 달고 등장하는 반면, 흑수저는 그들의 특징을 반영한 닉네임을 사용해야 한다. 이러한 설정은 현실 사회의 계층 구조와 불평등을 상징하면서도, 흑수저가 백수저의 권위에 도전하는 모습을 통해 '실력으로 보여주면 된다'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인식을 드러낸다.

     

     흑백요리사의 초반부에선 ‘맛’이라는 단순한 기준에 따라 경쟁이 펼쳐진다. 안대를 착용한 심사위원들이 흑수저와 백수저를 동등하게 평가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실력만 있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이 결과로 미슐랭 셰프들을 비롯한 저명한 백수저 요리사 9명이 탈락했다. 요리사의 업적과 평판, 자본, 위치, 그리고 마케팅 전략 등이 영향을 미치는 실제 요식업계와 달리 방송에선 오로지 '맛'을 중심으로 평가받는 공정한 경쟁의 장을 구현한 모양새다.

     

     그러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구성 방식은 공정함을 약속하면서도 많은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흑백요리사’의 4라운드 팀 방출 미션이 그 대표적인 예다. 팀에서 가장 도움이 되지 않는 참가자를 방출하라는 규칙의 도입은 프로그램의 공정성에 의문을 남겼다. 이러한 진행 방식은 시청자의 흥미를 끌기 위한 극적인 장치로 보이나, 개인전에서 돋보였던 공정성이 흑백 혼합 팀전에서 크게 흔들렸단 비판을 받았다. 방출된 인원 3인이 새로운 팀을 꾸리지만 다른 팀들보다 촉박한 시간에 더 적은 인원으로 불리한 조건 하에 경쟁해야 했다.


     이 레스토랑 미션은 그 결과로 인해 더 많은 공분을 사게 됐다. 방출된 3인으로 구성된 팀은 각자 잘하는 요리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했지만 매출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규칙에 의해 최하위팀으로 선정돼 전원 탈락했다. 반면 "여기는 특수한 상권"이라며 평가단에게 넉넉한 식비를 지원할 것을 예측해 고가의 메뉴를 선보인 팀이 1위를 차지했다. 해당 장면은 요리 실력만으로 생존할 수 없는 식당 운영의 현실을 부각시킨다. 이와 동시에 프로그램의 계급 경쟁을 정당화시킨 배경이 된 ‘실력만으로 승부한다’는 주장은 신뢰를 잃게 됐다. 또 애초 블라인드 심사로 흑백 구분 없이 살아남은 참가자들을 3라운드에서 억지로 흑팀대 백팀의 대결 구도를 만든 것 자체로 이미 공정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속 공정한 경쟁이란 허상

     대부분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의 극한 경쟁을 보여주며, 그 과정에서 실패와 좌절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는 시청자에게 대리 만족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 계급에 따른 대우를 정당화시키고, 상위 계급에 도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하기 때문이다. 시장이 원하는 '경쟁력 있는’ 인간상이 돼야 하며, 경쟁의 결과 또한 개인이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시스템을 내면화시킬 우려가 있다. 그럼에도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모습보다는, 그들이 처한 상황의 비극성과 경쟁의 잔혹함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점차 나아가고 있다. 과거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대부분 상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으로 이뤄졌다면, 현재는 꼴찌를 낙오시키는 시스템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서바이벌 예능의 호황은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무한 경쟁의 현실을 비추고 있단 방증이다. 동시에 그로 인해 생기는 낙오자와 정신적 고통을 간과하게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면서도, 그 이면의 불공정성과 비극적 현실을 직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결국에는 깨끗하게 마무리지으실 거죠?"라는 말처럼 결국에는 최종 승자가 명예와 영광을 누리는 공정한 경쟁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사진=연합뉴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신지우

    서강학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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