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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동방경제포럼을 보는 서방과 비서방의 다른 시각

    전문위원 이상현

    2024.09.04 15:37
    러시아 동방경제포럼을 보는 서방과 비서방의 다른 시각

     3일(블라디보스토크 현지시간) 저녁 만찬으로 개막한 ‘2024 동방경제포럼(Eastern Economy Forum, EEF)’은 중국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을 포함한 세계 경제의 중심지가 아시아로 계속 이동하는 데 대한 러시아의 합리적인 대응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구촌이 빠르게 다극화 되는 와중에 서방 선진국클럽을 의미해온 G7 회원국들의 경제력이 급락하는 반면 세계 육지 면적의 약 22%를 차지하는 공간에 약 60%의 인구가 거주하며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40%를 차지하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러시아의 정체성을 싣는 점에서 매년 9월 열리는 연례행사의 의미를 넘어선다는 해석이다.

     베이징 소재 대외경제무역대학(University of International Business and Economics) 존 공 교수는 ‘2024 EEF’ 개막을 앞두고 이번 대회 공식 보도매체로 지정된 러시아 매체 <스푸트니크>와 가진 인터뷰에서 “러시아 극동의 경제적 발전은 여러 이유로 중국에 엄청난 관심사”라며 이 같이 말했다.

     공 교수는 4일간의 EEF 행사는 러시아가 극동개발을 계기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과 지역 협력을 확대하기 위한 이니셔티브로 여겨져온 종전 EEF를 단순히 지역 경제 중심의 모임을  넘어 ‘지역 파트너십을 위한 협력과 평등 기반 아키텍처’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모색할 계기로 본다. 이 지역이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지구촌 정세의 꾸준하지만 뚜렷한 지각변동 속에서 러시아와 그 경제 파트너들에게 어떤 경제적, 정치적 기회를 줄 수 있는 지를 확인하는 자리라는 시각이다.
     

    비서방 “서방에서 동방으로 지구촌 중심 이동…비동맹, 러시아 역할에 무게”
     러시아는 극동개발을 위해 오랜기간 공을 들여왔다. 극동개발부 장관은 부총리급이다. 하지만 의욕만으로 속도가 붙지 않아왔다. 해외자본은 물론 사람도 부족했다. 극동개발이 제시된 비전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자 국내 정치적으로 적잖은 부담이 됐다. 푸틴 대통령이 5기 집권에 성공했지만, 이 지역 투표율이 낮았던 점은 늘 부채감으로 남아있다.

     푸틴은 EEF가 분명히 활로를 모색해주리라 기대해 왔다. 그런 기대는 뜻밖의 ‘풍선효과’로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공 교수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과정에서 서방 국가들이 부과한 엄청난 제재를 피하는 차원에서 동양으로 방향을 잡는 전략을 채택, 극동 인프라 개발이 아시아, 특히 중국과의 더 많은 무역 등 경제적 상호작용을 수용하기 위한 많은 투자를 불렀다”고 설명했다. 굶주린 서쪽 맹수들이 바짝 추격해오니 진작 아시아를 향해 걷고 있던 러시아의 발걸음이 뜀박질로 바뀐 형국이라는 것이다.

     공 교수는 북해 항로 통과 회랑부터 동쪽으로 향하는 새로운 에너지 파이프라인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새로운 아시아 중심 인프라 이니셔티브를 구체적으로 지적한 뒤 “이런 수십억 달러 규모의 거대 프로젝트가 앞으로 중국과 러시아 간의 양자 경제 관계에 엄청나게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극화 시대의 중심이 아시아가 된다는 점은 비서방 국가들에게 이견이 없다는 설명이다. 공 교수는 “러시아는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세계 경제의 진원지가 아시아로 계속 이동하는 데 대응하고 있다”며 “빠르게 다극화로 진입하고 있는 지구촌은 더 이상 기존의 부자클럽 G7이 독점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 ‘2024 EEF’에 말레이시아 총리가 참석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바로 비동맹 운동의 정신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유럽 말라야 대학교 경제학 교수인 라자 라시아 교수는 <스푸트니크>와의 인터뷰에서 “EEF는 인도네시아의 초대 대통령인 수카르노가 1955년 반둥 비동맹 운동에 대한 아프리카-아시아 회의를 조직할 때 시작한 이니셔티브를 되살리는 좋은 시작”이라고 평가했다.

     러시아에 본부를 둔 유라시아경제연합(Eurasian Economic Union, EEU)이 최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및 아태경제협력체(APEC)과 협력을 시작했지만 미국 중심 파트너십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러시아가 EEF를 매개로 비동맹운동을 주도한 아세안 국가들과 같은 가치를 공유하면서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라시아 교수는 “ASEAN과 관련된 EEU 수준의 이니셔티브와 결합, 모든 국가가 하나 이상의 초강대국으로부터 강압 없이 자신의 이익을 해결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갖게 될 것”이라며 이번 동방경제포럼(EFF)이 중앙아시아가 주축인 EEU를 아시아와 새로 연결하는 중요한 전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부총리를 포함한 러시아 공무원들의 최근 말레이시아 방문은 브릭스(BRICS) 그룹에 가입하려는 일부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관심을 촉발한 한 가지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막대한 석유와 가스를 보유한 러시아는 인도와 중국을 넘어 ASEAN 국가를 아울러 ‘경제협력 프로젝트’를 확대하려 한다”며 “러시아가 아시아태평양 지역개발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은 엄청나다”고 강조했다. 라시아 교수는 “오는 2040년까지 브릭스의 세계 경제 점유율은 G7보다 2배 이상 증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브라힘 안와르 말레이시아 총리와 한정 중국 국가부주석, 알렉산다르 불린 세르비아 부총리가 이번 ‘2024 EEF’에 참석한다. 존 공 교수는 “글로벌사우스 개발도상국들은 러시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러시아를 정치적, 경제적으로 고립시키고 질식시키려 부심해온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실패한 증거”라고 해석했다.
     

    정부차원 불참 한국, 저무는 G7에 집착…일, 9월 자민당 대표선거에 온통 쏠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4~5일 이틀간 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물며 ‘2024 EEF’를 직접 챙긴다. 2024 EEF의 주제는 ‘극동 2030. 함께 힘을 모아 기회를 만들어 보자’이다. 한국과 북한, 일본은 각각 다른 이유로 이번 2024 EEF에 정부 고위직 인사가 참여하지 않는다. 한국은 정부 차원에서 대표단, 방문단을 구성조차 하지 않았다. 현지 영사관이 마지못해 참석, 눈도장을 찍는 수준이다. 콘텐츠진흥원 러시아 대표와 한국외대 교수, 포항에 사무국을 둔 동북아자치단체연합 사무총장 등이 참석한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지난 1일 임기 내 가장 중요한 목표는 G7+ 가입이라고 했다.

     북한도 정부 고위직 인사가 공식 참석하지는 않았다. 러시아의 북한 전문가들은 다른 국제포럼과 마찬가지로 동방경제포럼은 연설이나 언론 접촉, 전시 등 홍보가 중요하다. 비전을 밝히고 공유하며, 협력의지를 밝히는 포럼이기 때문에 홍보에 적극적일 경우에만 참석할 의미가 있다는 것.

     북한은 이런 스타일이 아니다. 실무 협의는 비공개로, 별도로 한다. 악수와 어깨동무한 사진을 찍는 이벤트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실제로 지난주 러시아 경제개발부 차관이 평양에 다녀왔다. ‘2024 EEF’에서 다뤄질 의제로, 북러간 필요한 협의는 이미 마친 것으로 관측된다. 북러간 공개 가능한 합의나 의제는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도 정부 고위 인사가 참여할 형편은 아니다. 기시다 총리는 다리를 절다 못해 휠체어를 탈 지경의 레임덕 상황. 9월27일 자민당 총재선거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동방경제포럼에 고위급이 가는 건 힘들 것 같고, 블라디보스토크 현지 영사관에서 눈도장을 찍는 정도로 전해졌다. 일본은 한국의 G7 가입에 부정적이었다. 게다가 이미 회원국이기 때문에 지금의 한국처럼 딱히 G7에 집착할 이유도 없다.
     

    사진=타스/ 연합뉴스 4일(브라디보스토크 현지 시간) 새벽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24 동방경제포럼이 열리는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도착,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전문위원 이상현

    스푸트니크 한국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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