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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극동 개발 성패가 돈바스 사람들 손에 달렸다고?

    전문위원 이상현

    2024.09.06 14:40
    러시아 극동 개발 성패가 돈바스 사람들 손에 달렸다고?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5일(블라디보스토크 현지시간) 동방경제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타스통신

     

    “이 지역의 가장 큰 문제는 도로나 하수도 부족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며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 입니다.”

     러시아 극동연방대학교(Far Eastern Federal University, FEFU) 소속으로, 남북한 경제를 연구하고 강의하는 마리나 쿠클라(Marina Kukla) 교수는 5일(현지시간) 제 9회 동방경제포럼(EEF) ‘하산스키(Khasansky) 리조트 개발 섹션’에서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 연해주 최남단의 군(郡)에 해당하는 하산스키는 수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서쪽으로 200km 떨어져 있으며, 아름다운 풍광의 휴양지를 가진 지역이다. 도로 등 인프라 개발이 부족해 푸틴 대통령이 직접 기획한 ‘다섯 바다와 바이칼 호수’라는 극동개발 프로젝트에 포함됐다. 이미 300억 루블(한화 약 4536억원)의 투자처가 나선 상태이며, 인프라 개발을 위한 지역 예산에 수십 억 루블이 책정됐다. 4년 뒤면 관광객이 쇄도할 것으로 전망하는 프로젝트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역시 이날 한정 중국 국가부주석, 이브라힘 안와르 말레이시아 총리와 가진 공개 간담회에서 “러시아는 동부 프리모르스키(연해주) 지방에 새로운 ‘심해항(deep-water port)을 포함한 최초의 ‘국제적 선진경제특구(international ASEZ)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국이 이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벨라루스도 참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프로젝트에는 건설 노동자 등 사람이 많이 필요한데, 문제는 인력이다. 사실상 텅 빈,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이라는 점이다. 쿠클라 교수는 하산스키 지역이 중국 및 북한과 접경이라는 점에서 북한 노동자들을 많이 활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쳐왔다. 알렉산드르 갈루슈카 전 극동·북극개발부(옛 극동개발부) 장관은 앞서 이 지역을 비자와 세금 면제, 관세 특혜 등을 제공하는 ‘국제선진경제특구로 지정했다. 쿠클라 교수는 “이 지역은 원칙적으로 ASEZ 개념에 적합하기 때문에 갈루슈카 전 장관의 조치는 매우 합리적”이라고 평가했다.

     쿠클라 교수는 “지역개발에 참여할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는 논리적인 방법은 블라디보스토크보다 이곳에서 훨씬 가까운 북한 인력을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북 제재로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제재를 어떻게 극복할 지 더 적극적으로 생각할 계기이며, 더 이상 좌고우면할 때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극동 일손부족 문제…우크라이나 종전 결부한 해법 ‘눈길’

     러시아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난 3월 러시아 대통령선거 때 극동지역에서 푸틴 지지율은 전국 평균과 거의 비슷했지만 투표율이 낮았다. 일부 전문가들은 극동지역 주민들이 지역개발 속도가 더딘 데 따른 불만이 투표율에 반영돼 있다고 분석했다. 투자자도 나섰고, 예산도 책정했는데 여러 극동개발 프로젝트들이 왜 속도를 못 낼까. 바로 ‘사람 부족’ 때문이다. 쿠클라 교수가 지적한 사람(노동력) 문제는 극동개발에 가장 중요한 변수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런 고민의 와중에 한 한국 기업인의 제안은 관심을 가질 만했다. 수십 년 한국의 대기업에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사업을 해온 이로서 극동개발과 ‘우크라이나 전쟁 출구전략’을 연계한 제안이라는 점에서 더 흥미로웠다. 그는 러시아 점령 후 주민투표로 러시아 땅이 된 돈바스 2개 주(도네츠크, 루간스크)와 자포리자, 헤르손 등 4개 지역을 종전협상을 통해 우크라이나 정부에 돌려주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대신 이 지역에서 스스로 러시아인이 된 600만명의 주민들을 일손이 부족한 러시아로 이주시켜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안이다.

     물론 전제 조건은 명확하다. 민스크협정을 2차례나 어기고 친러라는 이유로 뿌리가 같은 자국 주민들을 살육해온 나치주의자를 도려내고,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항구적으로 금지하며, 향후 반러 정권이 들어서지 않는다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는 전제다. 러시아가 여전히 ‘전쟁’ 대신 ‘특별군사작전’이라고 부르는 이유 역시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발칙한 제안이다. 

     4개 지역을 돌려주는 대신 러시아는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스스럼 없이 자신의 국적을 러시아로 바꾼 최고로 건강한 애국자 600만 명을 본토로 이주시킨다. 돈과 희망은 넘치는데 일손이 부족한 극동 연해주에 훌륭한 삶터와 일자리를 제공한다. 러시아는 국토 면적이 가장 넓은 나라다. 땅이 더 있다고 나쁠 리 없지만, 점령한 땅을 포기하면 더 훌륭한 일들이 이어질 수 있다는 시각이다. 

     

    ‘특별군사작전’ 명칭 고수 이유?

     국제사회는 러시아가 굳이 ‘특별군사작전’이라는 명칭을 고수한 이유를, 그 선의를 납득할 수 있게 된다. 악당들을 물리친 약자의 편, 멋진 남성 총잡이 ‘장고’의 아우라를 연상시킬 수도 있다. 작전의 최고 전리품은 무엇보다 최고의 인적 자원이다. 산전수전 다 겪었고, 신념이 넘치며, 국적을 바꿀 정도로 (러시아에 대한) 애국심이 충만한, 건강한 경제활동인구(15~64세) 600만명이 일손 부족한 러시아 극동지역으로 이주해 조국근대화 2.0을 위해 행복하게 일하며 살아간다. 

     지구촌은 러시아에 대한 오해를 풀고, 지도자의 됨됨이와 국격을 다시 보게 된다. 이미 당당하게 친분을 과시한 나라부터 어차피 등지고 못 살기에 서방 눈치 보면서도 몰래 교분을 유지해온 나라들, “미안하다”며 뒤늦게 손을 내밀 깍쟁이 나라들까지, 러시아 재평가에 공식 비공식으로 나설 것이다. 

     하지만 ‘기상천외’하게 낙관적인 이런 상상은 외국인 기자이기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인 동료 기자에게 이런 시나리오를 소개하자 대뜸 펄쩍 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 사람들의 공분을 모르는 소리라며, 실제 그런 조치를 취한다면 푸틴이 탄핵당할 수도 있다고 눈을 크게 뜨고 손사래를 친다. 그럼에도 이 ‘발칙한 상상'을 멈출 수 없다. 러시아는 집단서방에 의해 왜곡된 앵글과 거짓 프레임으로 소개돼 있다. 민주주의 뒤에 ‘인종주의’를 숨긴 채 일방적 패권 유지를 위해 온갖 악행을 서슴지 않아온 서방의 어떤 집단과는 분명 다른 가치를 가진 나라다. 그래서 충분히 지구인들에게 기립박수를 받을 ‘파격’을 몸소 보여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

     

     

    전문위원 이상현

    스푸트니크 한국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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