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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당 부활은 ‘정치 개악’, 양당 기득권 내려놓는 ‘정치 개혁’ 필요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안치윤

    2024.09.24 10:45
    지구당 부활은 ‘정치 개악’, 양당 기득권 내려놓는 ‘정치 개혁’ 필요

     무한 힘겨루기에 공회전을 반복하는 국회에서 간만에 ‘거대 양당’ 의견이 합치하는 사안이 나왔다. 바로 ‘지구당 부활’이다. 민생 법안 앞에서도 한 치 양보 없는 양당이 조금의 이견도 없이 같은 목소리를 내는 사안이라니, 벌써 불안하다. 국민을 위한 초당적 결의보단 양당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일일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지구당 부활에 뜻 모인 이유는

     ‘지구당’이라는 단어는 생소하다. 2004년 정당법 개정으로 폐지된 후 20년간 정치계에서 자취를 감춘 제도기 때문이다. 지구당은 지금의 시・도당에 대응하는 중앙당 하부의 조직으로, 국회의원 선거구를 기준으로 설치됐다. 지구당은 비대한 구조로 인한 ‘고비용 저효율’의 정치조직이라는 지적과 함께 불법 정치자금 유통의 경로로 지목되는 등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을 계기로 불거진 정치개혁의 파도에 지구당은 폐지됐고, 광역지자체를 기준으로 하는 시・도당과 당협(지역)위원회로 재편됐다.

     

     지구당 폐지 이후 정계에서는 수년간 ‘풀뿌리 민주주의’를 되살린다는 명목으로 지구당을 부활시키자는 목소리가 이어져 왔다. 22대 국회에서도 지구당을 살리자는 주장이 양당 대표에게서 나왔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지구당 부활이 정치개혁”이라 말하며 정치 신인과 청년이 현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지구당을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역시 “중요한 과제”라며 공감했다.

     

     양당이 지구당 부활에 뜻을 모으는 이유는 뭘까. 말보단 실제 효과를 살펴야 한다. 현재의 당협(지역)위원회 체제에서는 후원금 모금, 지역구 단위 사무소 설치, 직원 고용이 불가해 원외 정치인들의 활동 보폭이 좁다. 지구당이 살아나면 이 모두가 가능해진다. 한동훈 대표가 지구당 부활을 ‘공정한 경쟁’이라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내 정치인과 원외 정치인의 격차를 줄인다는 것이다.

     

    청년・신인 키운다고? 양당-3당 격차 키울 뿐

     그러나 한 대표의 말대로 지구당이 정말 정치 신인과 청년들에게 공정한 관문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구당의 주요 문제점 가운데 하나로 ‘사당화(私黨化)’가 꼽히기 때문이다. 지구당위원장에게 지구당의 의사결정 권한이 집중되면서 토호 세력과 유착하는 등 부패가 있었다. 이러한 문제에 관한 충분한 숙의 없이 부활한 지구당이 정치 신인과 청년에게 공정한 무대가 될 수는 없다.

     

     양당 인사들은 과거 문제가 됐던 지구당의 행태를 두고 ‘투명하게 운영하면 해결될 일’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거대 양당이 정치 자원을 과점하고 있는 한국 정계의 구조다. 지구당 부활은 거대 양당 구조 내의 격차를 줄일 뿐, 양당과 그 밖 정당 사이의 격차는 오히려 늘린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확대라고 말하지만, 결국은 ‘양당 안의’ 풀뿌리 민주주의다. 지역 정당을 비롯해 다양성을 가진 제3정당이 설 자리는 없다.

     

     지구당이 부활해 원외 정치인의 보폭이 넓어지면, 더불어민주당은 부울경 지역에서 영향력 확대를 꾀할 수 있고, 이번 총선 수도권에서 참패한 국민의힘은 수도권에서 영향력 확대를 꾀할 수 있게 된다. 양당의 이익이 만나는 지점이다. 그러나 양당 원외 정치인의 활동이 활발해질수록, 제3당의 영향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데일리 보도에서 한 개혁신당 관계자는 거대 양당에 들어오는 기본적인 후원금과 지지율을 언급하며 “이름도 알리기 어려운 제3정당과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양당, 기득권 말고 정치 다양성 키우는 결단 필요

     지금 한국 정치에 필요한 것은 거대 양당의 과점을 고착시키는 ‘정치 개악’이 아니라, ‘판’ 자체를 바꾸고 다양성을 키우는 ‘정치 개혁’이다.

     

     필자는 일전 칼럼(양당 구조 해체, ‘지방’에서 시작하자)에서 중앙 정당과 지역 정당의 제도적 분리를 주장했다. 지역민의 의사를 더 가깝게 반영할 수 있는 정당을 비롯해 중앙 원내에서도 더 다양한 정치적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제3정당이 늘어나야 한다. 그럴 때, ‘양당 기득권이 선택적으로 허락한’ 청년・신인 정치인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주체적으로 펼치는 청년・신인 정치인이 나타날 수 있다.

     

     제3정당의 참여가 확대되려면, 제도 개혁이 뒷받침돼야 한다. 양당 과점을 가속하는 소선거구제에서 벗어나 비례대표제를 강화하고, 다양한 정당이 원내에 진입할 통로를 확보해야 한다. 행정 권력을 독점하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해체해 다양한 목소리가 행정부 운영에 반영될 수 있는 개혁도 필요하다. 모두 꾸준히 나오는 이야기지만 현실은 제자리걸음이다. 양당이 결단하지 않으면 이뤄지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지구당 부활과 같이 몸집을 키우는 시도가 아니라,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정치에 온전하게 담을 수 있도록 기득권을 내려놓는 대승적 결단에 양당이 뜻을 모아야 할 시점이다.

     

    (사진=연합뉴스)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지역당 부활과 정당정치 활성화를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토론 주최자인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오른쪽)과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의원이 대화하고 있다.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안치윤

    서울권대학언론연합회 회장·성공회대학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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