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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우전 종결, 미국의 패배 재촉하는 계기

    전문위원 이상현

    2024.11.01 14:43
    러-우전 종결, 미국의 패배 재촉하는 계기

     우크라이나 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러시아가 아닌 것 같다. 뿌리부터 부패해 자국민 수십 만명의 목숨을 팔아 사익을 챙긴 우크라이나의 승리일 리도 없다. 이 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다름 아닌 미국이다. 왜 그런가. 

     벨라루스계 아버지와 영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국의 빅토리아 눌런드 전 국무부 부장관 대행은 지난 2014년 당시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을 지낸 앤서니 블링컨 현 미 국무장관과 환상의 호흡으로 우크라이나의 유로마이단 쿠데타를 성사시킨다. 블링컨은 그 공로로 2015년 국무부 부장관에 임명된다.

     

     러시아군은 그로부터 7년 뒤인 2022년 2월24일 특별군사작전을 개시,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지구인들은 이 때부터 전쟁이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전쟁은 2014년 유로마이단보다도 4년이나 더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텍사스 석유 중소기업인의 ‘수압 파쇄법’ 기술로 셰일 오일과 가스 생산이 가능해진 2010년 ‘셰일 혁명’ 때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것으로 봐야 한다. 

     

    러 PNG 끊고, 미 LNG 유럽에 공급하겠다는 의도 일단 성공

     탈냉전 이후 독일은 노르트스트림 등 러시아 파이프라인천연가스(PNG)를 통해 국제 시세보다 최고 60% 이상 싸게 러시아 천연가스를 공급받아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독일 뿐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 대부분이 가스관을 이어 러시아 PNG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았다. 

     같은 시기 한국은 카타르와 이란,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액화천연가스(LNG) 형태로 들여와 썼다. LNG는 가스전에서 추출한 천연가스를 액화, LNG수송선에 싣고 수입국에 도착해 다시 가스로 기화시켜 사용해야 한다. 그만큼 원가가 비싸다. 저렴한 러시아 PNG를 쓰는 유럽 기업들의 생산 원가 경쟁력이 LNG를 쓰는 한국이나 일본에 견줘 높은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한국이나 일본도 러시아 극동 사할린이나 연해주 가스전을 파이프 라인으로 끌어다 쓰려고 골몰했다. 한일은 러시아와 극동 러시아 가스전 공동 개발에 나섰고, 특히 한국은 남북을 잇는 천연가스 파이프 라인을 러시아와 연결하려고 공공연히 시도했다.

     

     당시 독일과 한국, 일본을 잠자코 바라보던 미국의 마음이 어땠을까. 아마도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눌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 조야에서는 막대한 군비 지출을 통해 동맹국가들의 군사외교안보를 보장하느라 천문학적 재정적자를 감수해왔는데, 정작 동맹국가들은 자기네가 잘 나서 잘 살게 된 것처럼 득의양양 한 게 아닌가. 물론 초고가 무기를 팔아 군사비를 벌충하고 투자까지 회수하려는 속셈이야 다들 눈치 챘겠지만, 그마저도 방위비 분담에 소극적인 동맹들 탓에 녹록지 않았다. 심지어 약속을 어기고도 ‘배째라’ 식의 태도로 버티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도 있었다.

     

     해법 마련에 궁싯거리던 미국 전략가들에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2010년대 초 성공한 ‘셰일 혁명’을 승부 역전의 계기로 만드는 기가 막힌 프로젝트였다. 희대의 지도층 부패로 국가 정체성 자체를 의심받고 있었던 우크라이나를 앞세워 러시아를 곤경에 빠트리는 동시에 그 작전의 일환으로 유럽행 러시아 PNG를 끊어 자신들의 셰일가스(LNG)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작전이었다. 

     

     미국의 전략은 대체로 성공했다. 이런 이야기는 음모론이 아니다. 각종 에너지 경제 수치들이 여실히 입증해주고 있다. 그러니 우크라이나 전쟁의 승자는 단연 미국이라 할 수 있겠다.

     

    러 역시 PNG 공급 다변화로 피해 크지 않아

     물론 러시아 역시 유럽에 에너지 공급을 완전히 끊지 않고 있고, 튀르키예와 아제르바이잔 등을 통해 PNG를 중국 등 에너지 다수요국으로 대거 팔고 있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싸고 미러의 교감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추측도 나온다.

     그러나 러시아가 이런 수동적 결과를 위해 미국의 장기 전략에 말려들어 줬을까. 현실은 러시아가 단기 이익에 집착할 상황이 아님을 보여준다. 우선 에너지 무역을 주도해왔던 페트로 달러 시대가 저물고 있다. 기축통화를 주축으로 한 다극화 패권으로 재편할 전환점이 임박했다는 의미다. 물론 미국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페트로 달러, 달러 기축 시스템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독일은 물론 한국, 일본도 각종 군사・안보 플랫폼에 엮어 셰일 에너지와 미국 우라늄의 에너지 생태계에 묶어둬야 한다. 

     

     하지만 역부족이다. 아무리 미국이 탈달러(de-dollarisation)와 단극적 패권을 유지하려고 아무리 애써도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이미 무역결제 때 달러를 쓰지 않고 자국 통화로 결제하는 관행이 확산되고 있다. 실물 부문의 무역결제에 필요한 달러 수요가 줄어들면 자본 거래에 대한 달러 수요 감소로 이어지는 것도 시간 문제다. 이미 브릭스의 신개발은행(NDB)이 자리를 잡았고, 브릭스 회원국간 주식 등 금융투자 플랫폼도 실험 단계를 넘어 실행 직전에 다다랐다. 

     

     미국은 우방국들과 힘을 합쳐 인터넷과 인공지능(AI) 분절화를 통해 중국과 러시아를 악마화 해 보려하지만 성공 가능성은 희박하다. 인터넷과 SNS의 발달은 지구촌의 ‘정보 비대칭성’을 약화시켰고, 어떤 패권자의 패악질과 꼼수도 금세 파악, 검증되기 때문이다.

     이런 여건에서 미국의 다음 수는 딱히 없다. 국제 유가를 가급적 높은 수준으로 유지해 세계 1위 산유국의 화석 연료 매출을 구가해야 그나마 숨통을 틔울 수 있다. 셰일 에너지는 한계생산비가 높아 국제 유가가 항상 일정 수준을 웃돌아야 한다. 높은 국제 유가 수준을 유지하는 데 가장 가성비가 높은 수단이 중동 정세 불안이다. 그런데 수니파(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이란)가 화해를 하고 싸우지 않기로 했다. 이슬람 맞수가 서로 싸울 수 없는 상황이 되니 이스라엘이 나서야 했다.

     

    러우전 종결은 미국의 패배 앞당기는 계기 될 것 

     아시아에서는 중국을 러시아와 갈라놓아야 하는데 그 역시 녹록지 않다. 중국이 끝내 러시아의 손을 놓지 않으면 남중국해와 대만 해협에서 어떻게든 전쟁이 일어나줘야 한다. 일본이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중국을 괴롭히고 군사 행동의 뒷배가 돼 줘야 하는데, 이 역시 일-중 사이의 경제적 이해 관계 때문에 쉽지 않다. 일본은 게다가 미국이 쿼드와 파이브 아이스, 오커스, IP4 등 자신들이 주도하는 군사 동맹과 나토를 연결짓는 방식과 사뭇 결이 다른 ‘아시아판 나토’를 거론하고 나섰다. 일본이 약화되는 미국으로부터 슬슬 원심력에 몸을 맡기려 한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전시작전권이 미국에 넘겨진 한국은 그래서 더욱 미국의 히스테리를 조심해야 할 상황이다. 잘못하면 한반도가 전쟁의 화염에 휩싸일 수 있다.

     

     독일과 러시아, 일본과 러시아,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각각 좋아지는 것은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의미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결은 미국의 패배를 앞당기는 계기다. 적어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지금까지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승전국인 이유다. 2027년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기로 예약(!)이 돼 있지만, 새 갈등을 촉발시킬 때 에너지가 많이 든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최대한 늦게 끝나줘야 한다.

     

     비즈니스맨 출신인 트럼프는 최대한 지경학(Geoeconomics)을 활용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만들겠다고 한다. 담대한 유일 패권국답게 군사적으로, 지정학(Geopolitics)을 최대한 활용해 돌파하는 방식을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 공화당은 민주당 주도의 월가 주주자본주의가 단기 이윤만 추구해 지구촌의 신뢰를 읽었다고 한탄한다. 재래식 군비 지출과 끊임없는 전쟁의 중심에 선 미국이 더 이상 존경받지 못하고 위대하지 않은 나라가 됐다는 한탄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2024년 현재 세계 구매력평가(PPP) 기준 국내총생산(GDP) 비중을 비교해보면, 브릭스(35%)가 이미 G7(30%)을 앞지르고 있다. 브릭스는 이미 2018년 G7을 앞질렀다. 독일과 일본, 한국 등 에너지 순수입국가들은 브릭스 없는 경제를 상상하기 어렵다. 물론 해리스와 트럼프 중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미국이 이들 동맹국들을 이끌고 갈 주요 엔진이 ‘지정학’일지, ‘지경학’일지 완전히 갈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최근까지 민주당이 ‘지정학’에 지나치게 기대왔고, 트럼프는 ‘지경학'을 예고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씁쓸한 세르비아 속담이 있다. “정치인은 전쟁을 시작하고, 부자는 무기를 대고, 가난한 사람은 자식을 제공한다. 전쟁이 끝나면 정치인들은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하고, 부자들은 생필품의 가격을 올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자식의 무덤을 찾아간다.” 

     

    (사진=로이터 연합) 트럼프와 해리스의 대선인 11월5일 확정될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지구촌 전쟁들을 멈출지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전문위원 이상현

    스푸트니크 한국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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