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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무는 미국 패권…MAGA에 맞선 MEGA로 미 내부 기득권 지키기 골몰

    전문위원 이상현

    2024.11.15 12:32
    저무는 미국 패권…MAGA에 맞선 MEGA로 미 내부 기득권 지키기 골몰

     15일(현지시간) 남미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경제지도자 회의가 열린다. APEC 회원국 정상들은 해마다 11월 한 자리에 모여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비전과 그 실현 방안을 논의한다. APEC은 1989년 11월 최초 12개국이 창립 회원국으로 참여, 1993년 11월 미국 시애틀에서 제 1차 회의를 열며 공식 출범했다. 이후 매년 회의를 열고 그 결과를 공동선언문 형식으로 발표한다. 현재 회원국은 21개국이다. APEC 회원국은 ‘국가’ 차원이 아닌 ‘경제 주체’ 차원으로 참여하는 점이 특이하다. 실제 APEC 회의장에서는 가입국 국기, 국가 명을 표시하지 않는다. APEC 회원국 정상회의도 정상회의(Summit)가 아닌, ‘경제지도자회의’(Economic Leaders' Meeting)로 칭한다. APEC은 소련이 해체되고 독일이 통일된 1980년대 말 탈냉전 시대 미국이 주도하는 상징적 국제경제협력체다. APEC 출범 당시 중국이나 러시아는 미국의 패권에 감히 견줄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비유하자면 중국은 청소년기 즈음이었고, 러시아는 여전히 중환자실에서 헤매고 있는 상태에 가까웠다. 그런 상황에서 최전성기를 누리는 미국이 각 지역의 나름 우방들을 규합해 결성한 경제 의제 중심 국제기구다. 

     

     21개 APEC 회원국을 그룹별로 묶으면 유럽을 뺀 앵글로색슨 국가군이 한 축이고, 홍콩, 대만 등 범중국권(Great China), 러시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일부 회원국, 동아시아 선진국 일본과 한국, 남미의 친미 국가들로 구분지을 수 있다. 미국은 1989년 11월 군사동맹국인 일본과 한국을 필두로 같은 앵글로색슨계 국가들인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를 엮어 APEC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이후 미국과 각을 세우지 않고 다각도로 협력하는 남미 국가 멕시코(1993년 11월 제 1차 회의 때 가입)와 칠레(1994년 11월), 페루(1998년 11월) 등을 잇따라 APEC에 가입시켜 우군으로 삼는다. 페루가 가입하던 해에 러시아도 회원국이 된다. 얼추 ‘고난의 행군’이 끝나갈 무렵이었지만, 그해 8월 지불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해 바닥을 찍고 회복을 위해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갓 옮긴 상황이었다.

     중국은 최초 결성 2년만인 1991년 11월 당시 홍콩, 대만과 함께 APEC에 가입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회원국 중 라오스와 미얀마, 캄보디아를 제외한 말레이시아와 베트남, 브루나이,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등 7개국이 참여한다. 여기에 특별히 이 지역의 영연방 가맹국인 파푸아뉴기니도 참여한다.베트남을 제외한 아세안 회원국들은 모두 APEC 원년 멤버들이다.

     

     APEC 회의 직후인 17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린다. G20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계기로 1999년부터 개최됐다. G20의 회원국은 APEC에 참여하지 않는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 유럽 4개국을 포함한 G7 회원국(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이탈리아・캐나다)을 중심으로 러시아・한국・중국・인도・튀르키예・브라질・멕시코・호주・남아프리카공화국・사우디아라비아・인도네시아 등 18개국, 올해 유럽연합(EU) 의장국인 헝가리 정상과 아프리카연합(AU) 의장국인 모리타니 등 2개 나라 정상이 포함된다. 지난 2023년 의장국은 미국이었고, 2025년 의장국은 한국이다.

     

     남미 2개 나라에서 열리는 APEC과 G20를 자세히 설명한 이유는 분명하다. 두 국제 이니셔티브가 탈냉전 후 미국의 리더십에 따라 생겨났다는 공통점을 강조하려 함이다. 미국은 오랜 기간 전략적 경쟁 관계에 있던 소련의 해체와 ‘고난의 행군’을 바라보며 한껏 자애로운 시선으로 국제사회의 연단에서 청중들에게 단합을 호소했다. 거칠고 섣부르게 보이는 청소년기 중국의 패기와 에너지를 미국의 이익으로 연결시키려 애썼다. 쓰러진 러시아와는 다시는 어울리지 말라는 취지가 강했다. 이 대목에서 미국은 ‘권위주의 이념의 해체는 역사의 필연이었다’고 강조하며 사뭇 지적인 리더의 풍모를 풍겼다.

     

     그로부터 35년이 흘렀다. 미국의 단일 패권은 크게 하락했고, APEC 내 앵글로색슨 동료들은 여전히 존재감이 없다. 거칠고 부박해보였던 중국은 미국이 전략 경쟁 상대로 여길 정도의 맞수로 급부상했다. 승자의 자애로움을 한껏 발산해 어깨를 두드려주던 러시아도 구매력평가지수(ppp)를 고려한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4위로 부상, 독일(5위)을 제친 경제 강국으로 부상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올해 G20 의장국인 브라질과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아울러 회원국을 10개로 늘린 브릭스를 주도하고 있다. 브릭스가 세계 인구와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하루가 다르게 급성장 하고 있다. APEC과 G20 명단에 없던 아랍에미리트(UAE) 등 주요 산유국들은 달러 기축 시대의 페트로 달러를 거부하며 브릭스 회원국과의 무역 거래에서 자국 통화롤 결제하고 있다. 이는 달러 수요 감소로 이어져 미국 국채 금리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러시아는 단순히 경제력 뿐 아니라 외교・안보 분야에서 소련 시절 미국의 맞수 지위를 가진 나라로 복귀했다. 국제사회의 지정학과 관련 군사안보, 과학・기술, 화폐경제, 무역 등 경제와 정치를 아우르는 거버넌스 문제를 본격 제기하는 ‘반서방 리더십’의 한 축으로 분명히 자리매김했다. 

     마라트 베르디예프 러시아 외무부 APEC 특임대사는 14일(현지시간) 러시아 매체 <리아노보스티>와 가진 인터뷰에서 “공동선언문 내용에 대한 협상 과정이 잘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베르디예프 대사는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정치적 평가 측면에서 입장이 극명히 대조된다"면서 "이와 함께 개별 국가들이 (에너지 수급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에너지 전환, 기후 변화 대응과 관련한 다른 의견들도 감지된다”고 회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아울러 “디지털 경제의 발전에 대한 접근 방식 역시 자주 의견이 충돌하는 지점”이라며 “이밖에 무역 자유화를 선호하는 세력과 무역 장벽을 강화하려는 세력의 충돌도 목도된다”고 덧붙였다.

     

     러시아는 2010년대 초부터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자원을 유엔 주도로 국제적인 관리를 보장하는 프로토콜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국제사회의 합의를 모아왔다. 그러나 미국은 자국 주도로 집단서방(Collective Western)이 중심이 돼 디지털 협력 프로토콜을 주도해야 한다며 독자 행보를 보여왔다. 

     최근에도 미국은 우주에 모든 무기 배치를 금지하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거부하고, 다수결로 관철시킬 수 있는 유엔총회에 ‘핵무기만 배치 금지 결의안’을 제출해 표결을 꾀하고 있다. 미국 마음대로 무역 질서를 주무를 수 없게 되자 세계무역기구(WTO)를 무시하기 시작했고,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파리협약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가입과 탈퇴를 반복하고 있다.

     

     지구촌 금융 질서는 유엔 제재보다 미국 제재의 영향을 더 많이 의식해야 하는 시대를 맞았다. 미국 국내법과 금융 규정에 어긋나면 국제법과 무관하게 2차 금융 제재를 가해 이를 지켜보는 나라들이 아연실색 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신나치 세력의 친러 주민 학살을 종결시키려 시작한 러시아의 특별군사작전을 계기로 러시아의 해외자산 계좌들을 동결했다. 그로부터 나오는 자산 수익으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자고 했다. 미국의 일방적이고 반자본주의적 행위를 지켜본 지구촌 남반구 국가들이 미국과 점차 거리를 둘 수밖에 없도록 자초한 셈이다.  

     

     미국의 얼굴에서 승자의 여유가 실종된 지 오래다. 군사동맹국인 일본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아시아를 잇는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전략이 아닌 독자적인 인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군사동맹국 한국은 미국의 엄청난 압력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할 때까지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 무기 지원을 늦춰왔다.

     중국은 국제사회의 사안들에 대해 똑 부러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우방이던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류 달러 결제 약정을 75년 만에 해지했다. G20 의장국 브라질은 브릭스의 금융허브인 신개발은행(NDB) 총재를 이번 정상회의에 초대했다. 인도는 여전히 러시아 무기와 화석 연료를 대거 구입하고 있고, 10월 러시아 카잔 브릭스 정상회의를 계기로 중국과 큰 화해의 제스처를 보여줬다.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35년을 꼼꼼히 복기했다. 관료사회가 망쳐놓은 것은 미국 경제만이 아니었다고 본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위상은 쪼그라들었다. 리더십은커녕 괴팍한 술주정꾼의 이미지로 전락했다. 트럼프는 자본주의의 힘으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만들겠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안팎의 환경은 녹록지 않다. 미국 언론과 공직사회는 트럼프 시대를 저주에 가깝게 비난한다. 자신들이 말과 논리, 규칙을 만들어 예산과 자본의 흐름을 주무를 수 있는 이른 바 ‘규칙 기반의 세계 질서’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관료주의와 전쟁을 선포한 트럼프 때문에 지구촌 도처의 재래식 병력을 기반으로 지정학 위험을 미국 이익의 근간으로 삼는 것도 어려워진다. 

     미국 관료 사회와 집단서방 미디어는트럼프 집권 2기, 최대 4년만 버텨가면서 ‘트럼프와 전쟁’에 나설 것이다. 그들의 목표는 트럼프식 MAGA가 아니라 아마도 ‘MEGA’(Make the Establishment Great Again, 기득권자들을 다시 위대하게!)임이 분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타스 연합) 알렉세이 오버치크 러시아 부총리(가운데)가 APEC 지도자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14일(현지시간) 페루 수도 리마에 도착해 도시공항에서 환영을 받고 있다.

    전문위원 이상현

    스푸트니크 한국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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