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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 자유의 고갱이, 한국 아닌 러시아에서 맛보다

    전문위원 이상현

    2024.11.21 15:14
    언론 자유의 고갱이, 한국 아닌 러시아에서 맛보다

     한국 언론의 출입기자단 제도는 고질적인 문제로 오랫동안 지적돼왔다. 그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운용에 대한 비판이 지속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기득권화 한 현장의 기자들도, 기자실을 제공하는 해당 부처와 기관 역시 기자단에 책임을 떠밀며 모르쇠로 일관해왔다. 

     취재를 위해 찾은 러시아에서 지난 20일(현지시간) 오전 외무부 출입기자 브리핑 과정 동안 한국과 다르지 않을 법한 상황이 벌어졌다. 자국 언론 제재를 이유로 외무부가 출입을 정지한 영국 <스카이뉴스> 기자가 몰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부 장관 기자회견 현장에 잠입했다가 적발됐다. 

     러시아 역시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거나 더 심하다고 여길 수 있으니 결과는 충분히 예상할만했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러시아 기자단의 대처법은 더욱 지혜롭고 민주적이었다. 당연히 기자회견장에서 쫓겨나겠거니 했지만, 과정도 결과도 달랐다. 러시아 외무부 출입기자들이 모두 참여해 기자회견 참여를 보장할 것이냐는 논의와 투표를 거친 끝에 취재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해당 기자를 현장에 남아 있도록 결정했다.

     소위 주요 언론사를 중심으로 독점적인 기자단을 운영하면서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다른 나라 기자단 운영 방식과 사뭇 다른 모습인 데다, 국가 차원의 갈등이 있더라도 차별 없는 취재 접근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을 구현한 눈길을 끌 만한 사례였다. 

     러시아 방송<RT>와 <스푸트니크> 공동 편집장인 마르가리타 시모니얀 피디는 지난 20일 자신의 텔레그램에 “출입정지 당한 기자가 몰래 외무부 기자회견 현장에 잠입한 게 발각됐는데, 외무부 출입 기자들이 투표로 그를 남아있게 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출입정지 상태에서 몰래 잠입한 <스카이뉴스> 기자를 기자회견장에서 쫓아낼 지 여부를 스스로 결정하는 대신 정상적인 절차로 참석한 다른 기자들이 투표로 결정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현장에 있던 러시아 외무부 출입 기자들은 만장일치로 <스카이뉴스> 기자가 기자회견중에 남아 있게 하자고 결정했다. 시모니얀 편집장은 “기자단 투표 결과가 나오자 자하로바 대변인의 얼굴이 붉어졌는데, 갑자기 진정한 민주주의가 구현된 현장을 바라보니 그런 것 같다”고 뼈 있는 농담을 했다.

     

     러시아 크렘린과 외무부 등 주요 정부 부처들은 사전 등록 절차에 따라 출입 등을 제한하고는 있지만, 특별히 한국처럼 배타적인 출입기자 제도를 두고 있지 않다. 특히 푸틴 대통령 기자회견이나 외무부 브리핑 등 외신기자들이 많이 찾는 행사 때는 매체의 성격과 국적을 가리지 않고 사전 질문을 포함한 현장 참여 신청을 받는다. 해당 언론인의 사전 질문은 구체적일 필요는 없으며, 특별히 <스카이뉴스>와 같은 외교적 조치에 따른 제한이 있거나 다른 질문과 중복이 되지 않으면 가급적 현장 참여가 보장된다.

     푸틴 대통령은 연말연시나 중요 국가행사 전후 기자회견을 하는데, 보통 6시간 정도를 대리 답변 없이 직접 모든 언론인 질문에 응한다. 가장 길게 한 기자회견은 9시간을 넘긴 적도 있다고 러시아 언론인들은 귀띔했다.

     

     정부가 언론을 대하는 태도와 방법은 민주적이고 공정해야 함은 당연하다. 헌법상 권리인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구현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보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정부와 권력을 대상으로 취재에 임하는 기자 당사자들이 기자 집단 내부에서 출입기자 여부로 기자의 역할과 책임을 구분 지으려는 행태를 여러 차례 목격해왔던 만큼 이번 러시아 현지 취재 과정에서 본 사례는 신선한 충격을 줬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본질로 하는 민주주의의 정수를 한국이 아닌, 러시아에서 직접 겪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랄 따름이다.  

     

    (사진=모스크바 이상현 전문위원) 러시아 비정부기구 ‘지역 대화’가 20일(현지시간) 주최한 ‘거짓에 대한 대화 2.0’ 국제포럼에서 각국 언론 종사자들이 최근 국제뉴스에 등장한 가짜뉴스에 대한 경험과 통찰을 공유했다. 

    전문위원 이상현

    스푸트니크 한국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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