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위원 이상현
2024.12.02 14:35“법무부 소속 변호사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 집단 사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밴스 미국 부통령 당선자가 1일(현지시간) 자신의 <X(옛 트위터)>에서 밝힌 소식이다. 국가 공무원들이 새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든다고, 집단으로 그만두겠다고 공식 발표했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사람들 중 배신자가 많다. 1기 집권기에도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 존.F.켈리 비서실장, 마크 에스퍼 및 제임스 메티스 국방장관 등도 트럼프에 등을 돌린 인사들이다. 공화당 내에서는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배신자가 많다. 트럼프 대통령의 충직한 집사 변호사였다가 대통령을 겨누는 검찰측 증인으로 돌아섰던 마이클 코언의 배신도 유명하다.
트럼프가 배신을 자주 당하는 것을 한국적 인식으로는 그가 덕이 부족한 탓이라고 바라보기 쉽다. 한국에서는 최고 수뇌가 주변의 고초를 겪는다면, 설령 그가 악당일지라도 끝까지 그와 끝까지 함께가는 것이 멋진 정치인의 미덕이라 여기는 탓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는 배신을 자주 당하는 트럼프는 그냥 ‘모자란 괴물’로 비쳐질 뿐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어떻게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을 품으면서도 결국 답을 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트럼프를 배신한 사람들 대부분은 공직자 신분일 때 배신한 경우가 많다. 자신이 공직에 임명한 측근들이 재직 도중 정책적 이견 때문에, 혹은 자신과 관련된 소송을 대리하는 과정에서 배신한다.
이런 행태를 보면, 단순히 ‘트럼프가 덕이 부족해서’라고만 치부하기 힘들다. 대부분 트럼프가 대통령이 아닐 때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밀접하게 협력해온 사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트럼프 사람들의 배신에는 분명 뭔가, 특별히 ‘공직’과 관련한 배신의 단서가 있어 보인다.
노쇠한 미국의 국가직 공무원은 개개인 모두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구조적 기득권자임은 틀림없다. 공무원들은 법령에 따라 입법과 사법, 행정을 구현하는 직업인들이다. 이들에게는 수많은 제도를 행정부령과 유권 해석, 사법기관의 판례 등을 법령화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공무원들은 이런 법령이 있어야 자신들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 집권기 지구촌이 지겹도록 들었던 ‘규칙 기반의 세계 질서’는 바로 전 세계 공무원들의 존재 기반이자 일머리의 핵심 구호다.
하지만 지금의 법령은 과거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반영이다. 각 분야의 과거사를 규제하거나 권장하기 위한 규칙이다. 공무원들은 세상이 바로 이 규칙에 따라 작동될 때 세상의 중심에 선다. 만약 법령이 각 분야의 현상을 수용하고 규율하는 데 적합하지 않게 되면 어떨까. 공무원과 정치인 사이에 갈등의 씨앗이 싹 틀 것이다. 공무원은 기존 법령이 지탱하는 제도를 부분적으로 개선하거나 미세조정하는 데 그치기를 바랄 것이고, 정치인은 해당 제도를 송두리째 없애거나 다른 제도로 대체하려고 할 것이다.
정치인은 공동체를 더 낫게 만들려고 정책을 넘어선 ‘전략’을 세우고 추진한다. 공무원도 드물게 ‘전략’을 고민할 기회가 있지만, 대부분 현재 제도가 갖는 알고리즘들을 이리저리 달리 조합하거나 알고리즘 일부를 고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특별히 이런 과정에 공무원 조직별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특정 공무원들은 개인적으로 그 이해관계를 벗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승진도 하고 승급도 하기 때문에, 가급적 필사적으로 구시대 프레임인 법령에 집착한다.
정치인 눈에는 그러한 제도와 문화는, 비유하자면 '수명을 다한 행주’와 마찬가지다. 아무리 잘 관리해도 올이 다 삭아서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낡은 행주 말이다. 하물며 낡은 행주가 한번도 제대로 살균・소독이 된 적 없이 쓰여왔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빨리 새 걸로 갈아 치워야 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반면 공무원들은 그 낡은 행주가 새 걸로 바뀌면 기존 공급망이 제공하는 유무형의 각종 이익과 빠른 의사 결정의 이익 소멸 등 손해가 막심하다. 그래서 규칙을 만들 때부터 미리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행주를 고르고 처분할 방법을 깨알같이 적시해 법령에 유지한다. 정치인이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하려고 하면, “규칙에 따라야 한다”며 반발하기 일쑤다.
전략이라는 것은 법령이 지탱하는 ‘정책’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개인의 삶처럼, 공동체의 삶도 변화무쌍한 변수로 가득 차 있다. 반찬을 나눠 먹던 옆 집 홍길동이 갑자기 벼락부자가 됐을 수도 있고, 나와 송사 끝에 10년 옥살이를 마친 전우치가 다음 달에 출소할 수도 있다. 이런 큰 변수들은 지금껏 수년, 아니 수십 년 유지해온 일상생활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 이럴 땐 정책이 아니라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공무원들이 가장 약한 그 전략 말이다.
전략이 중후장대, 변화무쌍 할수록 공무원들은 참담해진다. 일상이 된 규칙 기반이 와르르 송두리째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미래에 대한 예측도, 방책도 모두 보수적으로 임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중후장대, 변화무쌍한 전략을 들고 나오는 정치인이 있다면 어떨까. 살아남기 위한 공무원들은 그를 드러내 놓고 무시하고 폄훼하며 자신을 지키려 할 수밖에 없다. 이해와 가치를 공유해온 집단인 기성 언론의 도움을 받아 해당 정치인을 인간 말종 즈음으로 내몬다.
지금 바로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트럼프는 미국의 쌍둥이 적자를 해결할 전략을 수십 년 고민해온 전략가다. 비트코인으로 미 국채를 사서 달러 가치를 지키고,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큰 돈 들어가는 우주 경쟁 격차를 해소하겠다고 밝혀온 사람이다. 실제 그런 전략들은 이제 곧 시험대에 올라 집행되게 됐다.
게다가 트럼프는 측근들을 어르고 달래면서 일하는 스타일의 사람이 아니다. 언론인들의 뾰족한 소리에 보란 듯 고개를 끄덕이고 가끔 밥도 후하게 사고 그러면서 공생할 사람도 아니다. 그러니 트럼프 2기 집권 4년은 고스란히 공무원, 언론과의 전쟁이 될 수밖에 없다. 기성의 미국 주류 언론은 트럼프를 있는 그대로 보도하지 않을 것이고, 미국 언론이 세계 언론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믿는 한국 언론과 한국의 일부 지식 집단은 4년 내내 트럼프 성토로 일관할 것이다.
트럼프 1기 집권이 확정된 2016년 11월 하순 대한민국의 1급 고위 공무원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트럼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최악의 정치인, 쓰레기 같은 인간이 어떻게?”라는 반문이었다. 한국의 언론 매체들도 대부분 트럼프를 싫어한다. 그때만 해도 한미 공무원들과 한미 언론들이 왜 트럼프를 이토록 싫어하는 지를 잘 몰랐는데, 4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됐다.
이유는 간단하다. 트럼프가 공무원들과 언론을 극도로 혐오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100% ‘반(anti)공무원’적, ‘반 언론’적이다. 트럼프는 공무원과 언론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권력을 사익화 하고, 스스로 기득권자가 된 세력”으로 본다. 경멸한다.
태생적으로, 그리고 본능적으로, 공무원들은 흔히 규칙 기반, 법치를 금과옥조로 여긴다. 미국은 물론 한국 공무원들도 트럼프가 이런 중요한 법치를 무시한다고 여긴다. 2016년 취임 하자마자 ‘파리협약’을 탈퇴하고 전임 오바마정권 당시 이뤘던 이란과의 핵합의를 물거품으로 만든 게 대표적인 ‘법치 무시’다. 2기 당선 확정 절차가 마무리도 안 된 상황에서 가족과 선거 유공자를 중심으로 공직을 나눠준다. 트럼프가 아니었다면 자신이 차지했을 수 있는 자리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전문성도 없는 측근들에 의해 점령되는 것을 지켜보는 공무원들의 속은 까맣게 탈 것이다. 분노는 적대감으로 쉽게 증폭된다.
미국의 6개 미디어 그룹 중 <폭스뉴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이 속한 ‘뉴스코퍼레이션’을 제외한 5개는 민주당 쪽이고, 특별히 당파성을 띄지 않을 때에도 트럼프에 대해서는 “그냥 쓰레기’로 다루는 논조를 조금도 바꾸지 않아왔다.
그러나 여기에 불편한 진실이 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공무원들은 각각의 공동체와 비슷한 이해관계를 갖지만, 한국과 미국은 단순한 체급 차이를 떠나 이해 관계 및 접근법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군사・외교・안보 전문가인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최근 자신의 저서 <세 개의 전쟁>에서 의미심장하게 지적한다.
그는 “강대국은 패권의 논리, 제국주의적인 발상으로 세상을 보며, 지정학적 관점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데, 이것은 상황에 따라 파트너를 활용해 주적을 견제하고, 그 과정에서 냉혹할 정도로 주고받기식 거래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강대국은 특정 사건에 개별 대응하기보다는 전체의 국면을 보며 바둑알을 놓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친구나 적을 고정시키지 않고, 국제정치를 옳고 그름의 문제로 보거나, 전쟁과 폭력을 규범적 일탈로 해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공무원이 자기 부처 이해관계에만 집착하고 ‘전략’을 고민할 위치에 있지 않으며, 전략 없이 정책에만 집착하는 점에서 미국과 한국 공무원들은 ‘동병상련’이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은 공동체의 유전자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국 민주당이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나라들끼리 힘을 합쳐 “규칙기반의 세계 질서를 위협하는 세력들에 맞서자”고 강변할 때, 무조건 고개만 주억거리고 있을 게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 참에 아예 자국의 이익을 모든 행위 규범의 중심에 놓는, ‘강대국의 유전자’를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긴 하겠다.
(사진=AP 연합) 트럼프 당선자가 지난 14일(현지시간)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갈라쇼에 참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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