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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시간30분 기자회견…푸틴의 러시아, 러시아의 푸틴

    전문위원 이상현

    2024.12.26 10:55
    4시간30분 기자회견…푸틴의 러시아, 러시아의 푸틴

    지난 19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과 함께한 올해의 결과’라는 제목을 내걸고 연례 기자회견을 했다. 짧게 4시간, 길게는 9시간에 이른다는, 바로 그 연례 기자회견이다. 지금은 민영화 됐지만 소련 시절 청년단체 기관지로 이름을 날렸던 <콤소몰 프라브다>의 고참 기자 알렉산더 가모프는 푸틴 집권 이래 총 21번 이런 기자회견을 했다고 이날 소개했다. 기자회견 현장에 참석한 내외신 기자들은 물론, 전화나 소셜미디어로 참여하는 전국의 러시아 국민들이 푸틴 대통령에게 직접 질의하고 답하는 방식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공개방송에서 짧게나마 자신의 가족사를 언급했고, ‘지금 차 한 잔 함께하고 싶은 사람’, 국토 균형 개발 계획, 저출생 극복 정책 등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물론 군사・외교・안보 현안이나 다사다난한 국내정치 관련 질의응답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중후장대한 이슈들 사이에서 슬쩍슬쩍 드러나는 외신기자를 다루는 태도 등은 한국인이 몰랐던 러시아의 진면목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알렉산드라 푸코바라는 러시아 시민은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까?”라고 푸틴 대통령에게 물었다. “단순한 노동자 계급 가정에서 태어났고…(19세기 조상 얘기는 생략)…부모님 양가 모든 친척이 위대한 ‘애국 전쟁’의 전선에서 싸우다가 많이 죽었다. 아버지는 전쟁 중에 장애를 입었다. 해외 정보기관에서 복무했다. 러시아 국민이 국가를 이끄는 일을 맡겼다는 사실 자체가 큰 영광이자 큰 책임이다. 당연히 행복하다.” 푸틴 대통령의 대답이다. 

     

    시민 중 한 명이 문자 메시지로 ‘살아 있든, 유명을 달리했든 푸틴 대통령이 지금 차 한 잔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푸틴 대통령은 작고한 독일의 헬무트 콜 총리를 가장 먼저꼽았다. 콜 총리를 ‘큰 인물’, ‘신념 있는 국제적인 인물’로 칭했다. 또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으로부터 해박한 지식과 매사에 확고한 자신의 의견, 정확함과 용감함을 배웠다고도 했다.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총리에 대해서는 따뜻한 의사 소통과 활동적이고 영리한 면모를 회고했다.

     

    러시아 비수도권 지역 언론사 기자가 저출생 대책을 물었다. 푸틴 대통령의 대답에 한국이 언급되기도 했다. 그는 소련 시절 합계출산율이 2.0명 대를 유지하다가 최근 1.4명까지 떨어진 점을 우려했다. 그런데 “아시아는 더욱 심각한데, 한국은 0.7명으로 ‘참혹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심각하다는 러시아의 저출생 문제보다 훨씬 참혹한 처지에 있는 한국 상황에 대한 언급이었다. 두 달 전 대다수 한국 언론들이 “푸틴이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에 성관계를 하라’고 명령할 정도로 러시아 출산율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도한 가짜 뉴스를 떠올리게 한 답변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러시아 국내 경제 및 사회, 문화 관련 문제도 많이 다뤄졌다. 세계에서 가장 땅이 넓은 게 걱정인 나라인 만큼, 러시아가 극동이나 극북 등 격오지, 신도시 지역에 2%짜리 초저리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를 적용하고 있는 사실도 밝혀졌다. 금융기관들이 모스크바 등 수도권과 대도시의 경우 최소 10%, 최고 30% 안팎의 모기지 금리가 책정되고 있다. 러시아 저출생, 지방소멸이 심각하긴 심각한 것 같다. 한국 역시 지방도시들이 소멸 위기를 겪고 있지만, 주택담보대출금리 혜택 등은 없다. 

     

    기자회견 진행자가 최근 푸틴 대통령이 독일의 주권 문제를 거론한 배경을 묻자 그는 과거 독일에서 근무할 당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생일잔치에 초대받아 참석한 일화를 들려줬다. 연회에 참석한 독일인들이 부른 축하노래들이 러시아 쿠반 지역에 살고 있는 코사크족 합창단 한 팀만 빼고 모두 영어노래였다는 일화였다. 푸틴은 “연회 휴식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 코사크족 합창단만 독일어로 노래를 불렀다는 점이 부끄럽다고 내게 말했다”고 회고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처음 몇 달 간 한국어를 배우려고 노력하다가 바로 중단한다. 한국에서 외국인이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면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곤 하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 출신인지 상관 없이 영어를 잘해야 어디에서나 대접 받는다는 것는 이제 한국 거주 외국인들의 철칙이다. 독일도 사정이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코메르상트> 기자가 바이든 대통령이 자신의 아들 헌터 바이든을 사면한 일에 대한 푸틴 대통령의 생각을 물었다. 그는 스탈린이 포로로 잡힌 자신의 아들을 다른 소련 군인과 바꿔 구할 수 있었던 기회를 버리고 결국 아들이 적국 수용소에서 처형 당하도록 한 사례를 들었다. 푸틴 대통령은 “당시는 항복도 배신으로 간주됐던 시기였고, 지도자는 승리를 위해 가혹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에 대해서는 “바이든이 아들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용서했다는 사실은 정말 미묘한 일”이라고 전제, “그가 정치인이라면 정치가 더 중요했어야 했을 것”이라면서도 “바이든의 내면에 인간이 더 많은것으로 밝혀진 것이고, 나는 그를 비난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이 미국 <NBC> 방송기자에게 발언권을 주자, <NBC> 기자는 푸틴이 수도 모스크바에서 암살된 러시아군 장군 등 수많은 사상자만 낸 채 특별군사작전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날 선 질문을 했다. 기자는 또 시리아에서 12년 전 실종된 미국인 언론인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 기자에게 특별히 예를 갖추고 현재 전선 상황과 그간의 자초지종 등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시리아에서 실종된 미국 기자에 대해서는 “아직 아사드(전 시리아 대통령)를 못만났고, 곧 만나면 그 질문을 반드시 하겠다”고 약속했다. 

     

    영국 <BBC> 기자에게 질문권을 줄 것으로 예고했다가 진행자가 “벌써 4시간이 넘었다”며 끝마치려 하자 푸틴이 “나는 그에게 약속했다”면서 제동을 걸었다. 사회자가 “그들은 (날카로운 질문으로)공격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하자 푸틴 대통령은 “맞다, 공격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들은 약속 없이도 즐겁게 일한다. 이것이 그의 직업이고 그들은 그 대가로 돈을 받는다”고 답했다. 이에 앞서 <BBC> 기자에게 “이제 당신은 우리를 공격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공격 하라.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방어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외신기자는 총 4명이 질문했다. “미국 기자 얘기도 들었으니 타타르스탄 기자 얘기도 들어보자”는 푸틴 대통령의 말에서 러시아 연방 내 공화국의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뉘앙스도 풍겼다.

     

    (사진=타스 연합)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9일 고스티니 드보르에서 열린 연례 전국 생중계 질의응답에서 질의할 기자를 지정하고 있다. 

    전문위원 이상현

    스푸트니크 한국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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