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위원 이상현
2025.04.17 14:32트럼프는 노벨평화상을 위해 지구촌의 모든 전쟁을 끝낼 정치인일까. 글쎄다. 그의 가까운 동료 일런 머스크가 보여줬듯, 노벨상은 이들이 언제든 사양할 수 있는 껍데기일 뿐이다. 아마도 트럼프의 다이어리에도 전쟁 일정이 표시돼 있을 것이다. 역사를 보면 관세전쟁이 실제 전쟁으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다.
트럼프는 다만 다른 나라 전쟁에 돈을 쓰지는 않을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트럼프는 미국과 서방의 기득권자들이 틀렸고 자신이 옳았음을 지구촌 인민들에게 입증해야 한다. 또한 자신의 분노가 무엇을 향한 것이었는지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
그의 정책은 단선적으로 나열돼 있지 않다. 하나의 정책 결과가 다른 정책의 원인이 되도록 설계돼 있다. 가장 큰 것은 미국의 ‘암 덩어리’를 떼어내는 것이다. 큰 수술이니만큼 선제적인 작은 수술도 불가피하다. 그게 전쟁일 수도 있다. 트럼프의 공약과 정치적 수사를 통해 드러난 것들을 종합할 때, 트럼프는 중국과 물리적 전쟁을 할 수는 없다. 그간 미국의 기득권자들과 짜고 ‘미국을 위대하지 않도록’ 방치해온 동맹국들을 참교육 시키면서 에너지나 우주, 인공지능(AI) 등 굵직한 분야에서 초격차로 앞서가야 한다. 그 점에서 서아시아, 즉 중동은 트럼프의 목적함수를 충족시키는 중요한 매개변수가 될 전망이다. 거기서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는 딥스테이트를 이길 수 있나
딥스테이트(Deep State)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실체가 있다고 주장하는 ‘미국 위에서 군림하는 권력’이다. 국가적 통제에서 벗어나 미국의 군사・정보・행정망・미디어를 장악, 지구촌을 무대로 배타적인 이익을 탐하는 조직이다. 이 딥스테이트는 러시아와 동유럽, 중앙아시아를 아우르는 유라시아가 계속 전쟁터로 남기를 바란다는 시각이 유력하다. 유럽 재무장을 통해 미국 무기 판매 수익을 극대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딥스테이트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구심으로 서방 국가 공무원과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관세로 중국을 약화시키려는 트럼프의 전략 실패를 기다리고 있다. 자유무역의 복원을 위해서가 아니다. 오랫동안 검증된 미국의 수익 모델, 곧 전쟁을 통한 무기 판매와 전략적 경쟁자 중국을 약화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흉심은 트럼프와 공화당이 장악한 제도정치권에서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민주당을 통해 계속 시도되고 있다. 트럼프가 추구하는 미국의 근본 문제, 곧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라는 쌍둥이 적자 해소 정책이 실패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누가 봐도 국가간 ‘규칙기반의’ 협상이라고 보기 힘든 트럼프 관세 정책의 실패를 위해 지구촌 공무원들의 연대를 촉구하고 있다.
트럼프가 ‘미국의 암’을 완치시키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민주당과 미국 관료 사회에 재앙이다. 트럼피즘은 중국이나 러시아, 유럽, 동아시아 우방국 등 상대방의 이익을 침해할 수밖에 없다. 외교나 통상 관계의 상호성 때문에, 미국의 이익 역시 침해될 수밖에 없다. 미국만을 위한 완벽한 성공은 상상속에서만 가능하다.
트럼프는 ‘딥스테이트 군단’으로부터 파상적인 정치 공세를 받게 된다. 결국 딥스테이트의 요구 조건, 즉 전쟁을 통해 무기 수요를 유지 또는 확대할 수 밖에 없다. 이미 유럽 재무장 계획과 일본의 막대한 방위비 지출 계획서를 통해 잠정적 협약(MOU)에 이른 상황이다. 트럼프 2기의 전장(battle field)은 ▲우크라이나전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동유럽 ▲이란 핵협상 계기 ‘아랍 나토’ 정착지인 서아시아(중동) ▲동아시아 나토가 활약할 한반도와 대만해협 ▲동남아시아 친중국가들을 참교육 시킬 남중국해 등 크게 4곳이다.
트럼프의 실패만 손꼽아 기다리는 딥스테이트
미국 하원 민주당 의원들이 15일(이하 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지원법’을 발의했다. 입법 취지는 트럼프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안보 자금과 재건 지원을 제공하고, 러시아에 엄격한 제재를 가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가뜩이나 전방위 관세전쟁으로 미 국채가격이 폭락, 국채수익률이 급등해 재정적자가 지옥의 유황불로 빠져드는 와중에 우크라이나 재정지원이라니. 게다가 당면한 국가 주도 산업을 위해 필요한 희토류의 무려 72%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트럼프는 러시아와 협력해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자원 안보를 꾀하고 있다. 물론 법안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관련 뉴스도 거의 없다.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한 가운데 이런 법률이 통과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지구촌이 러시아와 30일간 에너지 시설 공격 금지로 시작해 궁극적 평화를 위해 ‘트럼프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만 시선이 머물러 있는 동안, 미국 민주당은 바이든 정부를 장악했던 딥스테이트의 지령을 주도면밀하게 실천에 옮기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법률 역사가 스티븐 B. 프레서 노스웨스턴 대학교 법학 교수는 “민주당의 움직임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갈등을 종식시킬 방안을 찾기 위한 대통령의 노력을 세세하게 관리하려는 시도”라고 논평했다.
대다수가 민주당 편인 미국의 언론들은 우크라이나 평화 정착이 지지부진한 틈을 타서 트럼프의 실패를 부각시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루비오 국무장관과 켈로그 대통령 특사가 푸틴과의 평화 정착 협상 때 조심하라고 트럼프에 조언했다”는 기사를 내보내자 <NBC>는 기다렸다는듯 “트럼프 팀 쪼개졌나?”라는 제목을 달아 기사를 내보냈다. 한국 매체들은 당연히 <NBC>를 인용했다. <WSJ>와 <폭스뉴스>를 운영하는 뉴스코퍼레이션을 제외한 미국의 5개 미디어그룹은 노골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관세 정책 실패하면 딥스트이트에 주도권 넘겨야
트럼프주의자들에 따르면, 미국 민주당은 딥스테이트가 제도 정치권을 활용하기 위해 이용하는 하부 조직에 가깝다. 반면 공화당 일부, 특히 트럼프는 딥스테이트가 통제할 수 없는 정치인이다. 트럼프는 딥스테이트와 그 방계의 이해관계자들이 미국을 사익에 악용해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2기 내각은 그동안 관료 기득권이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고착화 시켜왔다고 본다. 무역적자는 관세 정책으로 개별 국가들과 쌍무협상을 통해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 하는 방향이다. 재정적자는 정부 구조조정과 불필요한 예산 삭감, 가상화폐비축을 통한 미국 국채안정 등 3가지 방향으로 해결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재정적자 해소책에는 이른 바 재래식 군사력에 대한 정부 지출을 크게 줄이는 방안도 포함된다. 재래식 전력 조달・유지 보수 비용을 동맹국에 떠넘기는 등 동맹국의 방위비를 대폭 인상할 방침이다.
반면 트럼프가 딥스테이트에 포섭된 것으로 보는 우르줄라 폰데어 라이옌 EU 집행위원장 등 유럽 정치엘리트들은 동서아시아까지 전부 나토에 통합, 그동안 미사일방어계획(MD)와 같이 프로젝트화 된 세계화 군사전략의 물질적 토대 완성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 이는 트럼프가 구상하는 우주 기반 핵전력 고도화 계획과 상충된다.
관세 정책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우크라이나 전쟁도 주도적으로 빨리 끝내지 못하면, 트럼프는 곤경에 처할 게 자명하다. 미국 민주당은 관세 국면에서 이미 원심력이 커진 아시아 동맹국 관료들을 규합, 서둘러 플랜B(전쟁) 시나리오로 몰아갈 수 있다. 딥스테이트의 의도는 트럼프의 일방주의를 ‘가치동맹’으로 재규합하고, 각국 관료들의 전쟁 협약을 “불확실성을 해소했다”고 포장할 것이다. 트럼프가 이 전쟁을 막을 수 없다. 미국의 군사안보정책은 초당적이며, 실제 트럼프 1기 때 우크라이나 전쟁을 위해 우크라이나에 스타링크 설치, 재블린 미사일 수출 등을 허가했다. 트럼프 정책이 동력을 잃으면 공화당, 민주당 공히 포진된 딥스테이트 전사들이 트럼프를 본격 흔들 것이다. 트럼프도 어쩔 수 없이 플랜B로 활로를 모색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설계도에 서아시아 전쟁이 있다
이스라엘과의 돈독한 군사 동맹을 과시해온 트럼프 자신도 전쟁 생각이 없지는 않다. 트럼프 2기 내각이 이란에 대한 ‘최대 압박’ 카드를 구사하는 것은 이란 자체를 억제하는 효과는 물론이거니와 이란산 석유의 주된 고객인 중국을 괴롭히려는 의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주요 에너지 파트너를 약화시키고, 일대일로의 핵심 지역에서 베이징의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것이다.
걸프 아랍국들과 중국 전문가인 영국의 정치경제학자 나세르 알타미미 박사는 <더 크레들(The Cradle)>과의 인터뷰에서 “워싱턴이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에 중국과의 거리를 두도록 압박할 것이며, 이를 위해 직설적이고 거래적인 수단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미국은 아직은 씨앗 단계이지만, ‘아랍-이스라엘 나토’ 구상을 조금씩 개발하고 있다.
빅토리아 눌런드(국무부)의 지휘아래 우크라이나 전쟁의 프로젝트 매니저 역할을 해온 크리스토퍼 제라드 카볼리 장군은 나토 통합과 유럽, 동아시아 동맹국들의 군사 예산 증액, 미국의 군수산업 단지 부양 정책을 노골적으로 강조한다. 동맹국들에게 방위비를 더 부담시키는 군사안보 정책 방향은 미국의 초당적 방향이다. 달러의 힘이 급격히 약화되고, 가성비가 최악인 군사력 유지를 위해 재정적자가 심화되기 때문이다. 집권 트럼프 내각이 동맹국들의 불만을 다독여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좌충우돌 하는 사이, 민주당은 딥스테이트와 더불어 전쟁 수요 현실화 공작에 집중할 수 있다.
제 1 산유국 미국, “경기침체기, 고유가만 보장되면 오케이”
딥스테이트는 미국의 최고경영자를 자처하는 트럼프가 수치로 성과를 만들어야 하는 처지를 잘 알고 있다. 장기 계획을 포함한 다른 정책들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결국 무기 수출 성과에도 관심을 돌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내 트럼프파와 반트럼프파 모두 서아시아의 불안을 반긴다. 트럼프는 우선 한계생산비(marginal cost of production)가 높은 셰일에너지를 단기적으로 동맹국들에게 강매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제 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가뜩이나 지구촌 침체기로 접어드는 시점이므로, 국제 유가를 떠받쳐줄 동력은 오로지 전쟁 뿐이다. 서아시아(중동)에서 전쟁 수요는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뉴욕타임즈(NYT)>는 지난 8일 “시리아의 화학무기 재고가 우려를 낳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1면 머리에 실었다. 존재하지도 않았던 대량살상무기를 명분으로 일으켰던 이라크 전쟁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공동 주연 이스라엘과 함께 악역 이란, 75년 만에 석유 대금 달러결제 협약 재협상을 거부한 조연 사우디아라비아, 기타 조역으로 출연하는 오만 등 서아시아 석유 부자들을 참교육 시킬 기회이기도 하다. 이란의 위협을 이유로 하이마스(HIMARS) 같이 우크라이나 실전 무기 엑스포에서 선보인 비싼 무기들을 대거 팔아먹을 수도 있다. 친러 아사드를 내쫓은 시리아 국민들이 몰살 되는 것은 큰 걱정거리가 아니다. 지난해 말 현재 시리아 주둔 미군은 200명 규모다. 다만, 트럼프 정부 국방부는 15일 시리아 주둔 미군의 점진적 철수 방침을 발표했다. 트럼프와 군부(및 NYT) 사이에 이견이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서아시아 지역은 건조한 날씨만큼, 조그만 불씨도 금세 화염으로 뒤덮을 충분한 인화물질들(지정학과 종교, 석유, 해적 등등)로 가득하다.
중동 빼고는 전쟁 가능성 높지 않아
미중의 지정학적 전략 경쟁은 인프라 프로젝트에서도 두드러진다.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중동(서아시아)-유럽 경제 회랑(IMEC)’은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한 대응책으로 떠오른다. 자아가 너무나 강한 인도와 미국 주류의 선조격인 유럽이 충돌의 중심 무대가 될 리 없다. 전쟁의 화염이 뒤덮는 지역은 당연히 서아시아(중동)다.
다만 미중 어느 한쪽 편을 들 가능성이 낮은 걸프 지역 국가들이 미국의 의도를 잘 읽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실용적 공존을 성사시킨다면, 전쟁을 막을 수도 있다.
서아시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단연 중국을 직접 겨냥한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쪽으로 시선이 쏠린다. 최근 펜타곤(미 국방부)에서 유출된 기밀문서 ‘임시국가전략방위지침(Interim National Strategic Defense Guidance)’에 따르면,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중국과의 대만 문제를 최우선 우려사항으로 지목한다. 러시아 견제는 유럽 동맹국에 맡긴다는 방침이다. 미국 법령에 전통적인 불량국가들로 명시된 ‘해외우려실체(FEOC, 북한・이란・러시아・중국)’의 포괄적 위협을 언급하지만 전략적 초점은 분명히 중국에 맞춰져 있다.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유럽과 서아시아(중동), 동아시아에서 국방 지출을 늘릴 것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대만해협 충돌이나 한반도 시나리오, 남중국해 충돌 시나리오는 미국에게 많은 부담이 된다. 바이든 집권기 우크라이나 대리 전쟁은 ‘새 발의 피’다.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에 깊숙이 편입된 TSMC 본사와 공장들이 대만과 중국 본토, 미국에 산재한다. 한국에는 2만8500여 미군이 상주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추진하는 핵고도화 전략에 따라 달라질 무기 체계와 작전 계획에 따라 적잖은 주한미군 병력 감소가 예상되지만, 한반도를 전쟁터로 삼는 것은 중러의 확전을 부르고 3차 대전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남중국해에서 필리핀의 대중국 도발도 예상할 수 있지만, 쏠림 방지를 외교의 기본교리로 삼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이 필리핀만 콕 집어 전쟁의 화염 속으로 내몰 수 있는 물리적, 정치적 지형이 아니다.
결국 트럼프 2기 내각이 예멘 후티와 이란 본토, 혹은 시리아에서 적잖은 규모의 전쟁을 감행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일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7일(워싱턴 현지시간) 백악관 타원형 사무실에서 열린 회의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말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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