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학생 칼럼니스트 이현솔
2025.01.08 10:08최근 아이돌이 팬들에게 끼니나 선물 등을 주는 행위인 ‘역조공’에 대해 설왕설래가 오간다. 1월 중 방송 예정인 MBC <가요대제전>에서 에스파, 데이식스, 라이즈, 엔시티위시 등이 팬들에게 역조공을 하지 않아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아이돌이 팬들에게 ‘팬사랑을 표하는’ 행위로 알려진 역조공은 팬과 스타 간의 관계를 돈독히 만드는 긍정적인 행위로 보일 수 있지만, 이번 논란은 역조공이 근본적으로 음악방송 시스템 내의 문제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주목 받고 있다.
▲지난달 30일 아이돌 그룹들의 역조공 구성을 비교하는 X(구 트위터)의 글이 큰 화제가 됐다.
방청객인 아이돌 팬들, 왜 ‘역조공’에 기댈 수밖에 없나?
음악방송의 방청객으로 참여하는 아이돌 팬들은 종종 일반적인 방청객 대우와 비교해 극도로 열악한 환경에 놓인다. 대기 시간이 길고, 추위나 더위 속에서도 제대로 된 쉼터나 음료 제공 없이 장시간 서 있는 것이 당연시된다.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지지하기 위해 이런 불편을 감수하지만, 이는 방송사의 방청객 관리 소홀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다른 프로그램, 예컨대 예능이나 시사 프로그램 등에서는 방청객들에게 음료나 좌석을 제공하는 등 기본적인 배려가 이루어진다. 지난해 방영된 MBC <손석희의 질문들>에 방청객으로 참여한 강 모 씨(28)는 “구내식당에서 식사할 수 있었을 뿐더러 출연료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음악방송은 아이돌 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최소한의 환경조차 제공하지 않는다. 방청객의 안전과 편의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오랜 대기 시간은 기본이며 폭염과 추위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야외 대기를 해야만 하는 처지다. MBC <음악중심>에서 아이돌을 보려던 정 모 씨(27)는 “더운 여름에 팬들 모두 야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면서도 “팬들이 그늘로 피하자, 줄을 제대로 서라며 직원이 고함쳤다”고 토로했다. 마찬가지로 Mnet의 <엠카운트다운> 방청 시 “오후 9시 시작이라고 안내한 사전 녹화가 자정을 넘겨서도 시작하지 않았으며 방송은 새벽 1시를 넘어서야 시작할 수 있었다”며 “기다리는 과정에서 방송사 측은 언제 시작할 건지 정확한 시간대를 알려주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결국, 이러한 환경 속에서 아이돌은 팬들을 위해 역조공이라는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팬들에게 음료, 간식, 소소한 선물을 제공함으로써 최소한의 감사와 배려를 표시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역조공이 아이돌의 선의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는 방청 환경의 부조리를 감추는 도구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남긴다.
역조공하기도 어려운, 남는 게 없는 아이돌들
아이돌 역시 방송사 갑질의 피해자다. 한국 음악방송 시스템은 특이하게도 출연자가 방송사에 출연료를 받는 대신, 오히려 소속사가 방송사에 출연료를 제공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아이돌과 그들의 소속사가 음악방송 출연을 일종의 홍보 수단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즉, 음악방송은 아이돌에게 더 큰 무대와 대중 노출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무상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
▲슈퍼주니어 은혁이 음악방송 출연료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출처=유튜브 채널 ‘무신사TV’)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아이돌이 받는 대우다. 출연료는커녕 이동비와 의상비 같은 필수 비용조차 아이돌 소속사가 부담한다. 결국 소속사는 적자를 감수하면서 아이돌을 방송에 출연시키며, 이러한 비용은 역으로 아이돌 본인에게까지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슈퍼주니어 은혁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음악방송은 출연료가 거의 없고 오히려 의상비, 스태프 인건비 등 사실 적자인 구조다”라며 출연료 인상을 요구한 바 있다. 아이돌이 쉽사리 역조공을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아이돌들은 어려운 형편에서 역조공을 해야만 열악한 환경에 있는 팬들을 보호하고, 팬덤을 유지할 수 있다.
음악방송이 아이돌에게 주는 혜택은 이제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다. 유튜브나 다른 디지털 플랫폼에서 직접 팬들과 소통하고 인기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송사들은 여전히 오래된 시스템을 유지하며 아이돌과 팬 모두를 착취하는 구조를 고집하고 있다.
역조공이 필요 없는 방송산업을 위해
이제는 방송사 문화 자체가 변화해야 한다. 팬들은 단순히 방청객으로서 소모되지 않고 존중받아야 한다. 아이돌 팬들이 역조공에 의존하지 않고, 음악방송 방청객으로서 최소한의 대우를 받는 환경이 정착되어야 한다. 이에 방송사는 방청객이 기본적으로 앉아서 대기할 수 있는 실내 좌석과 간단한 음료 제공 등 기본적인 편의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방청 대기를 책임지는 스태프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방청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방청 환경 개선은 단순한 편의 제공이 아니라, 팬들의 노력을 인정하고 그들을 동등한 참여자로 대우하는 첫걸음이다. 아이돌 역시 출연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출연료 지급을 포함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우가 이루어져야 하며, 소속사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방송사에 종속되는 악순환은 이제 멈춰야 한다.
음악방송은 팬과 아이돌 모두에게 꿈을 실현하는 무대이자 즐거움을 주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방송사 구조는 이들의 희생을 담보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 팬덤과 대중이 함께 방송사의 갑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새로운 기준을 요구해야 할 때다. 더 이상 역조공에 의존하지 않고도 팬과 아이돌이 서로 감사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환경, 그리고 그 안에서 아이돌이 자신의 노동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가야 한다.
팬과 아이돌은 그 자체로 음악방송의 가장 중요한 주체다. 그들을 착취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존중과 공정의 원칙이 자리 잡을 때, 진정으로 건강한 방송 문화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역조공 논란이 단순한 화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를 바꾸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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