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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즉각 휴전 합의…푸틴-트럼프가 두는 바둑의 첫 수

    전문위원 이상현

    2025.03.19 18:05
    즉각 휴전 합의…푸틴-트럼프가 두는 바둑의 첫 수

    “우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이 끔찍한 전쟁을 종식시키고, 완전한 휴전을 위해 신속히 노력한다는 조건 하에 즉각적인 휴전에 합의했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 회담 뒤 18일(이하 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갈등의 종식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냉정한 눈으로 인내심을 갖고 분석해야 한다. 이번 미러 정상 전화 회담의 핵심은 양국이 우크라이나 분쟁을 보는 관점이다. 그저 큰 바둑 대국에서 하나의 집일 뿐이다. 팽팽한 힘겨루기 속 큰 거래를 논의 중이다.

     

    트럼프 특사 “인류의 이익을 도모했다”

    백악관은 “양국 정상이 전화 통화 후 장래 양국 관계 개선의 엄청난 잠재력에 공감했다”고 발표했다. 장래 양국 관계는 큰 경제적 거래와 지정학적 안정을 기초로 발전할 것이라는 발표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러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중단을 요구하지 않았고, 따라서 전혀 그 문제를 논의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러시아 특사인 스티븐 찰스 위트코프는 “두 위대한 지도자가 인류의 이익을 위해 힘을 합쳤다”고 극찬했다. 그는 두 정상이 전쟁 얘기보다는 오히려 러시아 희토류 금속 등 경제 얘기를 많이 했다고 귀띔했다.

    위트코프 특사는 30일간 휴전 문제는 ‘에너지 시설 공격 금지’ 범위를 넘어 모든 국가 인프라에 대한 공격 금지로 합의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양국이 오는 23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휴전 세부 사항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크렘린 “에너지 시설 놔두자고? 좋아!”

    크렘린도 “푸틴 대통령은 분쟁 당사자들이 30일간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공격을 상호 포기한다는 이니셔티브에 긍정적으로 대응했다”고 발표했다. 다만 “일시휴전 상황에서 전투 접촉선(Line of Battle Contact, LBC) 전역에서 실제 휴전 여부와 우크라이나 강제 동원, 군 재무장을 감시하는 문제를 제기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양국 전문가 그룹이 숙의, 이를 해결할 것이라는 점에서 작은  타결이 성사됐음은 부인하지 않았다. 

    러 측은 조만간 러우 양측이 175명의 전쟁포로를 교환하기로 한 점, 특히 러 측이 중상을 입고 치료를 받던 우크라이나 군인 2명을 인계할 것이라는 인도주의적 호의도 소개했다. 크렘린은 이와 함께 “양 정상이 미러 관계 개선을 강조하며 여러 경제 및 에너지 협력 아이디어를 논의했고, 아이스하키 경기의 교차 개최, 계속적인 연락 유지 등을 약속했다”고 덧붙였다.

     

    왜 하필 에너지시설을 콕 집었을까?

    지상전을 중지하자는 합의는 없었다. 에너지 시설과 국가 인프라를 공격하지 말자는 것은 러우가 서로의 영토를 향해 미사일을 쏘지 말자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우크라이나와 유럽도 바라던 바다. 

    우선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지상전 중지는 국경 확정을 의미한다. 재무장 캠페인에 열을 올리고 있는 유럽연합(EU)은 전쟁이 계속돼야 각국 의회와 유럽의회에서 예산을 따낼 수 있기 때문에 완전한 종전은 가급적 늦게 진행돼야 한다. 다만 자기들도 연루될 확전의 불씨를 방지하려면 미사일 발사가 필수적이다. 이번 ‘30일  인프라 공격 금지’ 합의에 앞서 미국과 유럽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차원에서 물밑 합의했을 가능성도 있다. 파죽지세로 쿠르스크를 수복하고 적 영토에 완충지대를 만들려는 러시아 입장에서도 땅 나누기(Land Dividing)를 위해 지상전만 하는 게 여러모로 낫다.

     

    ‘집’만 보지 말고 ‘포석’을 봐라…강대국의 협상법

    미러 양국은 우크라이나 분쟁 자체의 해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분쟁을 계기로 큰 거래를 꾀하고 있다. 이게 중요하다. 러시아가 처음 미우의 '30일 휴전안’을 접한 뒤 단순한 시간 벌기와 정치적 수사를 의심했다면, 처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미러 양국이 만난 개념을 전혀 읽지 못한 것이다. 말하자면 우크라이나 분쟁은 미러를 협상 자리로 안내한 결정적 계기다. 

    이런 거래는 강대국 협상 과정의 진풍경이다. 당장 ‘실질적 효과’가 없더라도 협상장을 떠나지 않는 것도 강대국 협상의 특징이다. 큰 거래가 성사될 때까지 부차적인 사안의 성격이 변하면 안 된다. 따라서 양쪽 다 전쟁 확대를 막는 데 동의한다. 발표된 정상 대화 의제에 핵 비확산과 중동 정세 등이 언급된 것은 러시아가 전쟁 당사자 자격이 아니라 미국과 함께 지구촌 현안을 두루 논의할 파트너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G2의 재발견… 최강 맞수가 새 문법으로 두는 포석

    강대국 간 협상에서 먼저 믿고 조치하는 법은 절대 없다. 말이나 문서상 약속을 믿고 실행에 옮기는 것은 약소국들의 방식이다. 강대국들은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 하기 위해 여러 아이템 목록을 작성, 목록상 아이템들의 개별적 잠재 이익 크기와 아이템끼리의 인과 관계・선후 관계・의존 관계를 실시간 판단한다. 아이템의 가치가 실시간 변하기 때문에 이익 함수도 실시간 변한다. 최종 결정을 위해 여러 아이템을 버리거나 양보하고 자기 관점에서 최고・최대・최다의 이익을 보장하는 아이템에 집중하기도 한다. 

    정상 간 전화회담이 포함된 미러 양국의 이번 협상은 지구촌의 과점 사업자들이 과점을 유지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인구 강국과 엄청난 속도의 경제 성장세에 탄력 받아 우주와 해양, 인공지능(AI), 양자, 로봇 분야에서 무서운 속도로 지구촌 정상을 향하고 있는 인도와 중국의 추격이 미러가 맞닥뜨린 현실이다.  미러 양국이 이 속에서 어떻게 과점의 지위를 유지할 것인가를 논하는 전략회의가 시작된 것이다. 군사력을 기반으로 에너지 주도권을, 축적된 우주 기술을 꾸준히 교류해온 미러 양국은 오랜만에 경쟁 맞수로 만났다. 기존 정치학, 경제학 교과서의 대폭 수정이 불가피한 시점에 말이다.

     

    엇갈리는 논조의 지구촌 언론 매체들

    미러 전화 정상회담을 지켜봐온 각국 언론은 저마다 입장으로 분석하고 평가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대화 결과가 트럼프가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고 일축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도 “미우가 지난 3월11일 합의한 ‘30일간의 즉각 정전안’에 대해 미러 간 합의에 이르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에코스>는 “전화통화 후 산에서 쥐 한 마리가 태어났다”고 비꼬았다.

    하지만 프랑스 일간 <피가로>는 “이번 통화는 한 달 만”이라며 “미국이 우크라이나 동맹대신 모스크바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고 짚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는 이제 러시아를 신뢰하고 평화를 이룰 것인가, 아니면 관계 재건을 위한 더 큰 목표를 좌절시킬 수 있는 거래를 하도록 크렘린에 압력을 가할 것인가 딜레마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가디언>은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공격이 끝나 3년 만에 처음으로 부분적 휴전이 될 것”이라고 논평했다. 프랑스 <리베라시옹>은 “양국 지도자들이 공통점을 찾았다”고 강조했다.

    미국 <폴리티코>가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것으로 평가된다. “전화 통화가 러우 간 휴전 협상에서 결정적인 순간으로 묘사됐지만, 사실 트럼프와 푸틴은 다른 문제를 논의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고 적었다.

     

    “흥행은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거야!”…레토릭과 에피소드들

    유난히 촉이 밝은 영국은 러시아가 휴전 감시 문제를 협상 조건으로 꺼낼 것을 미리 알고 선제적으로 무인기 감시 얘기를 꺼냈다. 유럽 재무장의 와중에 영국 MI6의 정보력을 EU국가들에 팔아 볼 심산으로 읽힌다. 미국과의 물밑 접촉은 당연히 의심해 볼만하다.

    평소 말을 차분하게 하는 러시아도 가끔 허장성세를 보여준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안전보장이사회 부의장(전 대통령)은 미러 양국 정상의 전화 회담 뒤 “식당에 러시아와 미국만 있다. 메뉴에 브뤼셀 콩나물, 영국식 생선 앤 칩스, 파리 수탉요리, 키예프 치킨요리 등이 있다. 맛있게 드세요!”라고 자신의 SNS에 올렸다. 지구촌 과점사업자가 누군지 똑똑히 보라는 큰소리로 풀이된다.

    사실 각 나라의 입장을 음식에 빗댄 표현은 젤렌스키가 시작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 대화 직전 “우리는 샐러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러가 자신을 메인 요리 전에 먹는 샐러드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항변이었다. 젤렌스키의 러시아 측 대항마로 나선 마리아 자하로바 외무부 대변인은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에서 젤렌스키의 말을 배설물 비유로 받았다. 자하로바는 “오랜만에 맞는 소리네요. 키예프 정권은 샐러드나 콤포트(과일을 끓여 만든 슬라브 지역의 무알콜 음료)가 아니라, 메뉴에 담긴 내용물이 소화된 후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한 것”이라고 비꼬았다.

     

    (사진=AFP 연합뉴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 오후 2시간 가까이 전화 정상회담을 가졌다.  

    전문위원 이상현

    스푸트니크 한국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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