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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O는 리그를 열었지만, 안전은 문을 닫았다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이현솔

    2025.04.02 10:29
    KBO는 리그를 열었지만, 안전은 문을 닫았다

    야구장을 찾은 관중은 쓰러졌고, 책임의 주체는 어디에도 없었다

    창원NC파크 관중 사망 사고가 드러낸 KBO 리그의 구조적 무책임

     

    지난 3월 29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 LG 트윈스의 경기 도중 3루 측 매점 인근에서 구조물이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관람객 3명이 다쳤으며 이 중 머리를 심하게 다친 20대 여성 관람객은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31일 끝내 숨졌다. 17.5m 상공에서 떨어진 약 60kg의 구조물이 야구를 관람하던 시민을 강타한 것이다. KBO 리그 개막 직후 벌어진 이 비극은 관람 문화의 심각한 안전 공백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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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실한 야구장에 ‘KBO 천만 관중’이 몰리고 있다
      사고는 예견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현재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된 국내 KBO 리그 야구장 9곳의 시설물 안전 등급에 따르면, A등급을 받은 곳은 고척스카이돔 단 한 곳뿐이다. 나머지 구장은 ▲서울종합운동장야구장(B) ▲사직야구장(C) ▲수원KT위즈파크(B) ▲인천SSG랜더스필드(B)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C)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B) ▲창원NC파크(B)이며, 대전한화생명볼파크는 등급 자체가 비공개 상태다.여기서 B등급은 ‘보조 부재에 경미한 결함이 발생했으며 내구성 강화를 위해 일부 보수가 필요한 상태’, C등급은 ‘주요 부재에 경미한 결함이 있거나 보조 부재에 광범위한 결함이 발생한 상태’를 의미한다. 즉, 전체 구장의 대다수가 보수가 필요한 상태에서 경기와 관람을 지속하는 셈이다.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별표

     

    실제로 야구장 안전에 대한 현장의 불만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 팬 조 모씨(23)는 “사직야구장은 바닥이 울퉁불퉁하고 중간중간 블록이 파여 있어 여러 차례 넘어질 뻔했다”며 “계단마다 높이가 달라 불편하고 말벌이 하루에도 여러 마리씩 날아다니는 등 벌집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듯하다”고 말했다. KIA 타이거즈 팬 백 모씨(20)도 “고척스카이돔에서 가파른 계단 때문에 발을 헛디뎌 넘어졌고 결국 의무실 치료를 받아야 했다”며 시설 문제로 인한 위험 요소를 지적했다.

    ▲사직야구장 관중석에서 말벌이 출몰했다고 증언한 조 씨

     

    더 심각한 사실은 시설물에 대한 정기 안전 진단이 철저히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9개 구장 중 올해 정밀 안전 진단을 완료한 곳은 한 곳도 없다. 이번 사고가 발생한 창원NC파크의 마지막 안전 점검은 2023년 1월에 이뤄졌다. 1년 넘게 주요 시설에 대한 점검이 없던 상황에서, 60kg 구조물의 추락은 사실상 ‘예고된 인재’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결함의 이면에는 야구장 소유권과 운영권 간의 책임 분산 구조가 존재한다. 대부분의 야구장은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하고 있으며, 창원NC파크 역시 창원시 소유다. 반면, 실제 경기 운영 및 시설 관리는 각 구단이 맡는 방식이다. 지자체는 구단과 위탁 계약을 맺어 운영·관리권을 넘기고, 구단은 이를 토대로 경기장 유지·보수, 안전 점검 등의 책임을 수행한다.

     

    사고 현장에 있었지만 수수방관한 KBO 총재

    그러나 실상은 복잡하다. 시설의 법적 소유주인 지자체가 예산 문제나 행정 절차를 이유로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으면, 시설 보수가 지연되거나 무산되기 일쑤다. 반대로 사고가 발생하면 지자체는 위탁 운영 계약을 근거로 구단에 책임을 전가한다. 이처럼 명확하지 않은 책임 구조 속에서 팬의 안전은 양쪽 모두의 ‘회피 전략’ 속에 방치되기 쉽다. 이번 창원NC파크 사고 이후 창원시는 사건 책임을 NC 다이노스 구단 측에 묻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실질적 권한과 예산을 쥔 주체는 지자체다. 소유와 운영의 분리 구조 속에서 안전 관리가 사각지대에 놓이는 구조 자체를 손보지 않는다면, 사고는 언제든 다시 반복될 수 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KBO 리그의 수장인 허구연 총재가 사고 발생 당시 창원NC파크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는 점이다. 허 총재는 사고가 발생한 직후 현장에서 박종훈 KBO 경기운영위원으로부터 보고를 받았지만, 경기 중단이나 관중에게 공지하는 등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리그 총재가 눈앞에서 벌어진 중대한 사고 앞에서 무대응으로 자리를 떠났다는 사실은, KBO가 팬의 생명과 안전을 얼마나 가볍게 여기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시청률 위해 땡볕 더위에 경기를 진행하기도
    한편, 여름철 경기 시간 운영 방식 역시 관람객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KBO의 경기 취소 규정에 따르면 일 최고기온이 섭씨 33도 또는 35도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만 경기가 취소된다. 이에 따라 체감온도가 30도를 훌쩍 넘는 폭염 상황에서도 경기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일부 일요일 경기는 중계 편성이나 시청률 등을 이유로 오후 2시에 고정되는 일이 잦다.

     

    문제는 대부분의 관중석이 직사광선에 그대로 노출되는 구조라는 점이다. 야외 좌석에서 장시간 경기를 관람하는 관중은 열사병과 탈수 위험에 노출되며 실제로 의무실을 찾는 사례도 매년 반복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O는 경기 시간 조정이나 관중 보호를 위한 냉방·차양 시설 확대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롯데 자이언츠 팬 A 씨(24)는 “주말 오후 2시에 서울종합운동장야구장에서 구토 증세와 어지럼증으로 쓰러진 적이 있다”며 “의무실을 찾았지만 온열 질환 환자가 이미 많아 이용할 수 없다는 안내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야구 팬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컨디션과 안전까지 고려하지 않은 경기 운영은 더 이상 용납돼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발전하는 해외 야구 안전 보호 기준, 그러나 KBO는

    해외 주요 리그의 사례는 KBO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미국 메이저리그(MLB)는 2015년부터 파울볼로 인한 부상을 줄이기 위해 안전망 설치를 각 구단에 권고했고, 2017년부터는 이를 더그아웃 양 끝까지 확대하도록 규정을 강화했다. 2019년에는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리그 최초로 파울라인 끝까지 안전망을 설치했으며 이후 대부분의 구단이 이를 따랐다. 리그 차원에서 안전 규정과 시설 보수 기준이 명문화돼 있고, 사고 발생 시 책임도 구단과 리그가 공동으로 진다. 정기적인 시설 점검과 사고 대응 매뉴얼은 기본이며 관중 보호 조치는 더욱 강화됐다.

     

    ▲KBO와 MLB의 안전 관리 시스템 비교 

     

    반면, KBO 리그에서는 파울볼로 인한 부상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안전망 설치 기준은 구단마다 다르고 강제력도 사실상 없다. 리그 차원의 통일된 안전 규정이나 점검 체계도 거의 마련되지 않았다. 사고가 발생해도 책임은 구단과 지자체 사이에 흩어져 있다. 관중 보호 조치와 사후 대응은 여전히 임시방편에 그친다. 무엇보다 팬의 안전이 리그 운영의 핵심 과제로 인식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이제 KBO는 관중의 생명과 직결된 안전 문제를 자율이 아닌 제도의 영역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안전망 설치 기준은 표준화돼야 하고, 구장 시설에 대한 정기 점검과 비상 대응 계획 수립도 의무화해야 한다. 또한 각 구단과 지자체는 시설 보수 계획과 예산 집행 상황을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할 것이다. KBO는 이 모든 과정을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감독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폭염 등 기후 위협에 대응하는 경기 운영 기준도 필요하다. 경기 시간 조정뿐만 아니라 관중석 구조 개선과 차양 설치 및 냉방 장비 확충 같은 실질적인 조치도 병행돼야 한다. 팬의 안전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리그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 기본 조건이다. 국민 스포츠라는 이름은, 국민이 신뢰할 수 있을 때에만 성립한다.

     

    야구는 국민 스포츠라 불린다. 하지만 경기장을 찾은 팬이 생명을 위협받는 현실에서 그 이름은 더 이상 명예로울 수 없다. 지금 KBO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한 사고 수습이 아니라 리그 운영의 철학을 바꾸는 일이다. 안전 없는 흥행은 공허하고, 책임 없는 인기에는 미래가 없다. 팬의 생명과 권리를 지키는 리그만이 진정으로 오래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3월 29일에 발생한 창원NC파크의 안전 사고 현장이다.

    청년학생 칼럼니스트 이현솔

    前 성신여자대학교 성신학보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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