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학생 칼럼니스트 신지우
2025.04.17 15:10‘연 9% 수익, 원금 보장, 유명 배우 광고, 대기업 협업’—한때 수많은 투자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던 문구다. 2017년 설립된 갤러리K는 미술작품을 병원이나 기업에 임대하고 그 수익을 투자자에게 나눠주는 '미술품 렌털 투자' 상품을 내세우며 투자자들을 끌어모았다. 이 모델은 연 7~9%에 달하는 높은 수익과 계약 종료 후 원금을 재매입하겠다는 안정성을 강조하며 빠르게 시장을 장악했다.
그러나 2024년, 갤러리K의 수익 지급이 중단되며 투자자들 사이에서 폰지 사기(실제 이윤 창출 없이 나중에 들어온 투자자의 돈을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금으로 나누어 주는 방식의 다단계 금융 사기)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두 달여가 지난 시점, 갤러리K의 대표라는 김정필씨가 해외로 도피하며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게 되었다. 현재까지 밝혀진 피해 금액은 수백 억 원에 달하며, 갤러리K를 상대로 고소를 의뢰한 피해자는 100명이 넘는 것으로 전해진다. 피해자들의 고발과 소송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갤러리K로부터 수수료를 지급받지 못한 작가들이 입은 피해액도 약 3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갤러리K는 한국미술협회와 협약을 맺은 후 한국미술협회에서 발행하는 '호당 가격 증명서'를 발급받아 투자자들에게 홍보하며 신뢰를 쌓았다. 한국미술협회가 발급한 ‘호당 가격 확인서’와 ‘진품 보증서’, 유명 배우가 출연한 광고, 대기업과의 제휴, 심지어 홈쇼핑 방송까지, 갤러리K는 철저하게 신뢰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구조는 허술했다. 렌털 수익은 대부분 실체가 없었고, 후속 투자자의 자금으로 선투자자의 이익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투자자에게 약속된 원금 보장과 수익률은 결국 새로운 투자자의 희생 위에 만들어진 허상이었다.
갤러리K는 미술 시장의 구조적 특수성을 악용했다. 미술품은 본질적으로 가치 평가가 주관적이고 유동성이 낮다. 무명 작가의 작품이라면 그 가치는 더욱 모호하다. 갤러리K는 바로 이 점을 파고들었다.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대량 확보하고, 마치 객관적인 시장 가치가 있는 것처럼 가격을 부풀린 뒤 투자자에게 판매했다. 실제로 1억 원을 주고 그림을 산 투자자가 인사동 화랑에서 “구매 희망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작품의 시장 가치는 왜곡돼 있었다.
그 피해는 투자자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갤러리K와 계약한 수많은 작가들은 작품 대금을 받지 못했거나 일부만 지급 받은 채 방치됐다. 일부 작가는 창작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헐값에 작품을 넘겼고, 그 대가도 끝내 받지 못했다. 갤러리K는 신진 작가의 절박함을 이용해 작품을 단지 투자 수단으로 전락시켰다. 이처럼 예술의 순수성과 시장의 탐욕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가장 큰 희생자는 결국 작가와 대중이었다.
‘아트테크’라는 이름 아래 벌어진 이 사건은 한국 미술 시장의 구조적 허약함과 제도적 공백을 드러낸 상징적 사례다. 국내 미술 시장은 규모가 작고 유통 구조도 투명하지 않다. 투자자 보호 장치는 미비하고, 작품 가격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 체계는 없다시피 하다. ‘호당 가격’이라는 모호한 기준이 투자 판단의 근거가 되고, ‘공식 협회 인증’이라는 말만으로 수억 원이 오가는 구조는 너무도 위험하다. 갤러리K는 이를 악용해 ‘예술 투자’라는 이름으로 사기를 정당화했다. 미술품의 객관적 가치 평가가 어려운 가운데, 투자자는 작품의 실물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확인서와 보증서에 의존해야 했다. 여기에 고급 투자라는 이미지가 겹치며 경계심마저 흐려지게 했다.
반면 해외 미술 시장은 보다 체계적인 시스템과 제도적 장치를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영국은 ‘아트펀드(Art Fund)’와 같은 공공기관이 작품 구매를 지원하고, 공신력 있는 갤러리와 옥션 하우스가 시장을 주도한다. 미국 역시 IRS(국세청) 차원에서 미술품의 기부나 상속 시 감정 절차를 철저히 규정하고 있으며, 미술품 거래가 자산 거래의 일환으로 인정되면서 금융 당국의 감시 대상이 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유럽은 ‘재판매권(Resale Right)’ 제도를 통해 2차 거래 시 작가에게 일정 수익을 보장하고, 아트페어와 갤러리 간의 정보 공유를 통해 유통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
국내 미술 시장은 작품 감정 및 가격 산정을 위한 독립적이고 공신력 있는 기관의 설립, 작가 권리 보호에 대한 계약 표준화, 그리고 투자자를 위한 리스크 공시 시스템이 시급하다. 특히 호당 가격과 같은 자의적 기준이 아니라, 유통 이력과 수요 기반의 투명한 거래 기록이 축적돼야 시장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갤러리k 사건 이후, 많은 이들은 “왜 속았을까”를 자문한다. 하지만 그럴듯한 외피에 감춰진 허위 정보들, 유명인 마케팅, 제도권과 연계된 듯한 홍보가 투자자들을 혼란에 빠뜨린 것이다. 그 경계심을 무너뜨린 건 미술이라는 문화적 권위와 신뢰를 포장지로 내세운 교묘한 전략이었다.
이제 우리는 이 사건을 계기로 질문해야 한다. 예술은 투자 대상이 될 수 있는가? 될 수 있다면, 어떻게 그 가치를 평가하고, 누구로부터 검증받아야 하는가? 지금처럼 예술 시장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트테크’라는 이름으로 투자 상품이 유통된다면, 제2, 제3의 갤러리K는 언제든 등장할 수 있다.
미술품 투자의 본질은 ‘아름다움에 대한 공감’과 ‘가치에 대한 장기적 믿음’에 있다. 이를 망각한 채 단기 수익에만 집착하면, 아트테크는 혁신이 아닌 또 다른 사기의 도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갤러리K 사건은 우리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남긴다. 미술 투자에 앞서 필요한 건 화려한 마케팅이 아니라, 투명한 구조와 합리적인 의심이다. 예술이 돈이 되는 세상이 아니라, 돈이 예술을 삼키는 세상을 경계해야 할 때다.
(사진=연합뉴스) 미술 유통 플랫폼 '갤러리K'가 미국 시애틀에 오픈한 'KART 센터' 전경.
소통 커뮤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