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위원 이상현
2025.05.30 10:28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분쟁 와중에도 도로와 공항 등 교통 인프라와 주택 등 국토 개발에 멈춤이 없었으며 , 전쟁 4년차를 맞는 2025년 현재 이미 눈부시게 달라진 국토 인프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모스크바 수도권 이외에도 극동과 극북 등 국토의 구석구석까지 공항과 철도, 주택 등 사회 인프라를 빠른 속도로 개선한 점이 눈에 띈다. 2018~2024년까지 고속도로와 공항, 철도, 항만 등 교통 인프라 현대화에만 6.3조 루블(한화 약 112조 3920억원)이 투입됐다. 이와 별도로 러시아 전역을 연결하는 안전하고 고품질의 고속도로 프로젝트에 추가로 4.8조 루블(약 85조 6320억원)이 책정됐다.
러시아 사회간접자본과 주택 건설 붐은 우크라이나 분쟁 이전까지 개발 지연에 따른 지방도시 거주 시민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고 전쟁터에서 돌아온 장병들의 안정적 일자리도 제공한다. 전시 재정 지출로 발생한 소득을 소비와 투자로 연결시킬 명품 거시경제 정책으로 평가받을 만 하다.
전쟁 전부터 주택건설 붐 시작…낙후지역이 신도시로 탈바꿈
러시아에 건설붐이 일고 있다. 올해 들어 반짝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전쟁 이전부터 러시아 전역에서 건설붐이 일었고 현재의 수치는 전쟁으로 다소 누그러진 것으로 관측된다. 올해 러시아 신규주택 분양은 3160만 제곱미터로, 이중 개인주택이 전체의 약 78%를 차지하며 직전년 같은 기간에 견줘 20%나 늘어났다.
러시아 통계청이 집계한 연간 건설 프로젝트 규모는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을 받았던 2020년 6.1% 증가에 그쳤지만 2021년 8.1%, 2022년 19%, 2023년 15.9%, 2024년 10.1%로 고속 성장했다. 물가 인상의 영향을 제거하고 봐도 2021년 10%, 2022년 7.55%, 2023년 9.5%로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비록 2024년 2.1%로 성장률이 주춤했지만, 2025년 시작된 새로운 건설 프로젝트와 함께 다시 반등하고 있다.
건설 통계에는 우크라이나 분쟁으로 파괴된 돈바스 등 새로 러시아로 편입된 지역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2024년 러시아 전국의 건설 수요에서 수도 모스크바가 포함된 중앙연방 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1위이지만, 성장률은 2.5% 수준이다. 비중 2위인 볼가강 연안 볼가연방 관구도 1.8%만, 3위 우랄연방 관구도 1.3% 정도만 건설 수요가 성장했다.
이들 지역의 비중이 높음에도 성장률이 낮다는 건 건설 수요가 전국에 걸쳐 고르게 증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대식 사단법인 유라시아21 회장은 “2024년 건설 수요 비중이 1~3위인 지역들의 건설 수요 성장률은 전년 대비 오히려 하락했다”면서 “반면 비중 면에서 최하위인 북캅카스연방 관구가 전년 대비 17.7%, 물가 요인을 제하더라도 11.3%나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모스크바를 다녀온 이 회장은 “5월 현재 모스크바 시내는 전쟁을 전혀 체감할 수 없을 정도로 새로운 고층 건물과 함께 곳곳에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극북, 극동에 국제공항급 공항 잇따라 신설・새단장
러시아 건설붐은 주택이나 상업용 빌딩 뿐 아니라 교통 인프라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가장 눈에 띄는 게 바로 공항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24년 6월 러시아 연방회의 연설에서 향후 1년 동안 공항 네트워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최고 75개 공항의 인프라 현대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러시아 정부는 2019년부터 지방 공항 발전 프로젝트를 시작, 2023년까지 6년 간 19개 공항에 신규 활주로를 건설하는 한편 14개 공항의 현대화 작업을 완료했다. 덕분에 한산했던 소규모 지방 공항들이 국제공항 수준으로 업그레이드 됐다.
시베리아 노보시비르스크 공항의 경우 현대화 이후인 2023년 여객 수가 900만 명을 넘어서, 전년 대비 약 20%나 늘어났다. 사할린의 유즈노 사할린스크 공항 역시 2023년에 전년 대비 12% 늘어난 140만 명을 기록했다.
지방 공항 현대화로 가장 큰 수혜를 받는 지역은 사하(야쿠티야)공화국이다. 한반도의 14배쯤 되는 면적으로 러시아 행정구역에서 최북단인 사하공화국은 교통 인프라가 가장 낙후됐던 지역이다. 그런 사하공화국내 33개 공항 중 10개는 이미 개보수가 완료됐다. 현재 진행 중인 4개 등 나머지 공항들도 하나씩 현대화 될 예정이다.
지방 공항들이 살아나면서 다른 지방으로 이동할 때 반드시 모스크바를 경유해서 가는 불편함이 빠르게 해소되고 있다. 2022년 기준 지방의 항공기 여행 노선의 절반 이상 모스크바를 거치지 않고 상호 직항으로 전환됐다. 이대식 회장은 “항공 인프라 개선 덕분에 지난 2024년 러시아 국내 여행 건수가 사상 최대치인 9600만 건을 기록하며 내수 경기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30년까지 1만 100km 철도망 구축…비행기보다 가성비 좋은 고속철도 추진
철도교통 인프라 역시 러시아에서 크게 확대되고 있다. 러시아 철도공사는 지난 2020년부터 2만km에 이르는 신규 철도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정부는 추가로 2030년까지 1만100km의 철도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특히 수도권에서 주요 지역의 도시까지 닿는 고속철도는 항공편에 견줘 가성비가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다. 러시아는 오는 2028년까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잇는 고속철도 노선을 신설한다. 총길이 680km를 평균시속 250~360km(최대 시속 400km)로 달려 2시간15분만에 주행하는 고속철도의 약 40km는 수도권 안에 설치된다. 고속전철은 2022년 최초로 착수됐다. 시나라 교통기계(Sinara-Transport Machines)가 고속철도 차량을 공급한다. 고속열차 생산공장은 젤레노그라드에 건설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러시아 일간 <베도모스티>가 최근 보도했다.
러시아에서 고속열차는 최대 1000~1200km의 거리를 운행할 유망한 미래교통수단으로 여겨진다. 여행 시간이 4.5~5시간 미만인 경우, 비행 전 절차에 필요한 시간을 고려하면 비행기보다 수요가 더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북한과 러시아 연해주를 잇는 육로는 철로를 따라 첫 삽을 펐다. 지난 4월30일 두만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도로 착공식이 열렸다. 러시아는 북한산 사과를 수입하고 여행자들이 이 길을 이용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양국 학생들이 상호방문 해서 교류를 이어갈 예정이다.
전시특수를 뉴딜정책으로 증폭…균형개발과 보훈사업까지 품어
전시 재정수요가 크게 높아진 러시아에서 건설 부문이 크게 상승하는 것은 몇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분쟁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본토가 적으로부터 공습을 받을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만일 우크라이나 미사일이 러시아 본토 깊숙이 공격할 수 있다면 짓고 있던 주택이나 사회 인프라들도 모두 중단해야 할 것이다.
러시아 정부가 건설산업을 거시경제 수단으로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에 참여한 군인들을 위해 금전적 보상과 함께 좋은 새 주택을 제공하고 있다. 또 주택 건설과 더불어 각종 대형 토목사업들은 군복무를 마친 예비역 군인들에게 안정적이고 괜찮은 일자리를 제공한다.
이밖에 무기와 생산과 에너지 지출, 징병된 군인에게 지급되는 보수 등 전시 특수 재정지출이 각 분야 종사자들에게 소득으로 지급돼 소비와 저축으로 이어지는 거시경제 상장의 선순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높아진 소득으로 집과 자동차 등 내구 소비재 구입, 여행 등을 위해 더 많이 소비하고 자산 형성을 위해 더 많이 저축한다면, 러시아 거시경제의 총수요는 승수효과(multiplier effect)를 통해 더욱 성장한다.
이대식 회장은 “러시아는 전쟁 장기화 속에서도 예상보다 견고한 경제 흐름을 이어가고 있으며, 이 때문에 종전을 서두르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기업들에게 종전 후 회복될 한러 경제협력의 새로운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상할 수 있는 실마리를 던졌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토목기술과 건설 경쟁력은 높기 때문에 전후 복구 사업은 물론 러시아의 인프라 강화 정책에서 큰 사업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지적으로 풀이됐다.
(사진=타스 연합뉴스) 러시아 북캅카스 지역의 미네랄니예 보디 공항에 개장한 새 터미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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